울릉도는 ‘언젠가 한 번쯤은 가야 할’ 섬이었다.
꼭 가고 싶었다기보다는, 언젠가는 한 번쯤 다녀와야 할 것만 같은 장소.
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분명했다.
뱃멀미.
선상 낚시를 나갔다가 네 시간 동안 바다에 거의 모든 것을 토해냈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 뒤로 나는 배를 타는 여행을 가능한 한 피했다.
그리고 지도 위 조그맣게 점 하나로 표시되는 그 섬이
굳이 내가 그 고생을 해서까지 가야 할 곳인가라는 생각이 컸다.
그런데도 가야겠다는 마음이 남아 있었던 건 어머니 때문이었다.
신혼이던 시절, 아버지의 첫 발령지였던 울릉도에서
어머니는 3년을 사셨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가 그 섬으로 자원하셨고,
아마도 승진 점수를 염두에 둔 결정이었겠지만
그로 인해 졸지에 시작된 섬 생활은 어머니에게도 꽤 선명한 시간으로 남은 듯했다.
어릴 적 우리 집 밥상에는 종종 울릉도 나물 반찬이 올라왔다.
울릉도에서 맺은 인연 덕분에, 계절이 되면 육지로 나물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명이 나물, 고비나물, 부지깽이처럼 이름도 낯설고 관심도 없던 나물이었지만
어머니는 그 나물들의 이름과 사연을 꼭 설명하셨고,
반복 학습처럼 듣다 보니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오십 년 넘게 지나버린 시간,
그 시절의 기억을 어머니와 다시 꺼내보는 건 내 마음속 작은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이번에 휴가 때 울릉도 갈까 해요. 같이 가요.”
“아이고, 너네끼리 다녀와라. 울릉도, 뭐 그리 볼 게 있다고.”
어머니의 거절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나는 안다.
어머니는 단지 조심스러우신 거라는 걸.
그래서 ‘울릉도 전문가가 꼭 필요하다’며
슬쩍 역할을 하나 맡겨드렸다.
“가이드가 필요해요. 어머니 없으면 우리 아무것도 몰라요.”
그러자 잠시 망설이던 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울릉도 떠난 게 50년도 더 됐는데, 뭘 안다고…”
울진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로 향하는 길.
어머니는 몇 번이고 “몇 시간이나 걸리냐”라고 물으셨다.
“4시간 정도요. 예전보다 훨씬 빨라졌죠.”
그러자 어머니가 창밖 파도를 가만히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그땐 11시간씩 걸렸어.
한 번은 다 도착했는데, 파도가 심해서 다시 포항으로 돌아간 적도 있었지.”
말씀에 웃음이 섞였고, 눈빛에는 오래된 기억이 내려앉았다.
울릉도는 점 하나로 표현되기엔 아까운 풍경이었다.
푸르다 못해 짙은 청색을 띠는 바다,
신이 일부러 조형한 것 같은 기암괴석들,
그 풍경 위를 맴도는 갈매기와 바다새들.
2주 전에 쥬라기 월드를 본 아들들은
“여기 진짜 영화에 나오는 섬 같다”며 연신 흥분했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며 마주한 풍경은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압도적이었다.
사람 손이 덜 탄 듯한 자연이 반가웠고,
동시에 앞으로 생길 울릉도 공항이
이 아름다움을 해치지는 않을까 걱정도 들었다.
아이들은 중간중간 차를 세우고
스노클링 장비를 꺼내 바다로 뛰어들었고,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이런 곳에서 한 달만 살아볼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조금은 느슨하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시간.
괜스레 '여유'란 단어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많이 변했다고 하면서도 50년 전의 흔적을 찾으려 애쓰셨다.
저만치 앞서 혼자 골목길을 걷는 경우가 많았고,
남양 초등학교 앞에 섰을 땐 한참을 가만히 운동장을 바라보셨다.
어머니의 신혼집이 있던 자리엔 이제 다른 건물이 들어섰지만
그 앞에 멈춰 선 어머니는
기억 속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놓으셨다.
“예전엔 여기가 우체국이었는데. 앞에 개울이 흐르지 않았나요?”
식당이나 마트에서 현지인을 만나면 궁금하던 질문을 마구 쏟아내셨다.
그 모습을 처음 본 손주는
“할머니가 이렇게 적극적인 분이셨어요?” 하고 내게 귓속말로 물었다.
지역 식당에서 나온 나물 반찬은
어릴 적 우리 집 밥상 위 맛과 똑같았다.
“이건 부지깽이 무친 거고, 저건 명이나물로 장아찌 담은 거야.”
옆에서 나물 하나하나 설명하시는 어머니의 모습도 그 시절 그대로였다.
‘너네끼리 다녀오라’는 어머니의 말대로 했더라면
큰 후회를 할 뻔했다는 생각을 여행 내내 했다.
남양에서 도동, 저동, 천부로 이동하며
어머니는 각 지역의 초등학교를 관광 명소처럼 둘러보셨다.
조용히 학교 앞에 서서 지난 세월을 되짚으셨다.
다시 찾은 그 장소들 앞에서
어머니는 아주 오래된 친구를 만난 사람처럼
감사한 표정으로 머물러 계셨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담긴 ‘동네’가 있다.
고3 수능 전날,
나는 김현철의 '동네'라는 노래가 듣고 싶어 음반 가게에서 테이프를 샀던 기억이 있다.
그날 밤,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짧지 않은 스무 해를 넘도록 소중했던 기억들이 감춰진 나의 동네에…’
그 노래 속 ‘동네’는
내가 자라난 골목과, 그 안의 냄새, 빛,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지금은 재개발로 모두 사라져 버렸지만,
그 동네는 여전히 내 기억 어딘가에 남아 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고생했다. 그리고… 너무 고맙다.”
그 말은 단순한 인사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래도록 꺼내지 못했던 기억을 다시 꺼낼 수 있게 해 줘서,
그리고 그 기억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들렸다.
내 마음도 조용히 따뜻해졌다.
그리고 그 말을 어머니께 꼭 전하고 싶었다.
“같이 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