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까마구의 까망책방 Mar 03. 2019

[영화 리뷰] 증인

창작자들의 고통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이 더 힘들다."


많은 작가, 감독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덜어내지 않으면 안 될까?

창작자들이 말하고 싶은 것을 가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 들어낸다면 독자들은 창작자의 의도를 좀 더 잘 알고 즐거워하지 않을까?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하면 더 많은 감동과 다양한 풍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양이 많다면 독자들이 그 작품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고 좋지 않을까?


 그러나 더 많은 영상과 더 많은 페이지를 원하는 독자들과 달리 창작자들은 본인이 만든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 예리한 칼을 들어 난도질한다.

 가슴이 아프지만 창작자들은 귀한 자식 같은 작품을 계속 덜어낸다. 이유는 단 한가지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것을 위해 창작자들은 조각가처럼 작품을 깎고 깎아 뭉뚱그려진 형상을 정교한 조각품으로 만들어 낸다. 이쯤이면 충분하겠지?라고 생각이 들어도 한 번 더 깎아낸 후에야 작품을 독자들에게 내보인다. 물론 이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더라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오히려 뭉뚱그린 형상으로 내보인 작품을 사랑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나 뭉뚱그린 형상의 작품은 독자들의 시간은 훔칠 수 있지만 마음은 훔치지 못한다. 기억 속에서 잊힐 뿐이다.


지루함을 없애고 불필요한 부분을 걷어내고 자신의 오류를 계속 검증하는 아주 고되고 고된 시간이 흐른 끝에서야 탄생하는 단 하나의 작품만이 독자들의 시간과 마음을 훔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증인' 은 흔히 요새 말하는 투 머치 토커라는 말이 어울리는 작품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변호사 정우성이 자신이 맡은 살인사건의 목격자인 자폐아와 소통을 통해 일련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흥미로우나 이것을 풀어나가며 던지는 메시지들이 너무나 많다. 감독은 '소통', '누가 정상인가?' , '거짓말' , '편견' ,'인간의 변화' ,'양심', '돈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 '행복의 가치 ' 등의 이야기를 누군가의 입을 통해 혹은 상황을 통해 독자들에게 던진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일까? 아니면 작가 혹은 투자자들의 의견이 들어가서 인지 모르겠지만 영화의 흐름과 다소 맞지 않는 억지스러운 장면들도 있다. 아픈 아버지가 등장하여 중간중간 계속 메시지를 던지는 모습이나 비중이 없어 보이는 여자친구와의 갈등 장면, 보이지 않는 권력이 압력을 가하는 어색한 장면들이다. 이 모든 장면들이 모두 감독이 의도한 것이라면 감독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이고,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다면 사공이 너무 많아 배가 산으로 간 격이다.


 그래도 영화가 계속해서 밀고 있는 메시지가 하나 있다면 정의 구현(정우성의 원래 신념) 혹은 도덕적 가치를 따르라는 것이다. 영화는 정우성이 무언가 깨닫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며 때묻었던 모습에서 원래 순수했던 모습. 자신의 신념(정의 구현)을 밀고 나가던 때로 다시 돌아가는 과정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를 위해 감독은 변화의 포인트를 영화 초반, 중반, 후반 총 세 번에 걸쳐 보여준다.


 첫 번째는 정우성의 법무법인 대표가 정우성에게 때를 묻힌다며 난잡한 파티를 할 때, 두 번째는 자폐아인 김향기가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고 물을 때다. 마지막 세 번째는 영화의 후반부 재판 과정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뒤엎기 전이다. 총 세 번에 걸쳐 영화는 정우성의 얼굴을 화면에 꽉 차게 타이트하게 잡아 관객들을 쳐다보게 한다. 이때 정우성의 표정은 "이게 맞나?" 혹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 "그래 이게 맞는 거야" 와 같은 깨달음과 고민을 보여준다. 총 세 번에 걸친 정우성의 표정. 즉 이 세 번의 포인트가 바로 관객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다. 정우성의 표정을 통해 감독은 관객에게 묻는다. 


정우성이 신념과 정의보다는 실리를 추구해나가기 위해 난잡한 파티를 하기 직전 감독은 정우성을 통해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그리고 이미 때가 묻어 실리와 돈만을 추구하던 정우성에게 김향기 던진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으로 또다시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세 번째로 재판 과정에서 이 모든 것을 뒤엎기 직전 정우성을 통해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영화에서 당신은? 이라고 묻는 것은 사회통념상 이것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가치가 부딪치는 순간에 관한 것이다. 개인의 가치가 부딪칠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 묻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가치가 부딪치는 순간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때 인간은 선택을 해야 한다. 개인의 선택이 도덕적이다 도덕적이지 못하느냐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 어렵다. 개인의 가치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이지 못하더라도 개인에게 이익을 주거나 좋은 방향이라면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매우 성공적인 선택인 것이다. 

 감독은 가치관이 부딪칠 때 관객들에게 어떠한 선택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정우성의 모습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에 정우성은 개인의 이익에 대한 가치와 정의 구현(도덕적으로 옳은)의 가치가 부딪치는 순간에서 정의 구현의 선택을 한 것이다. 정우성의 얼굴을 세 번이나 클로즈업해주며 관객들에게 계속해서 묻고 결국 도덕적인 가치(정의 구현의 가치)를 선택하는 정우성을 통해 "개인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가 좀 더 따듯해지기 위해 도덕적인 선택. 어려운 사람을 돕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라고 감독은 호소한다.


 영화에서 감독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분명하나. 그 메시지 외에도 감독이 전달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너무나 많기에 관객들이 이를 찾기는 매우 어렵고 곱씹기도 어렵다. 맛은 맛있는데 무엇이 들어가 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잡탕찌개처럼 영화에서는 너무나 많은 메시지를 던지고 보편화라는 이름으로 넣은 클리셰들이 관객들을 아리송하게 만든다. 한국의 영화시장은 많은 발전을 해왔고 관객들도 이에 맞게 많은 발전을 했다. 이제 더 이상 보편화라는 이름과 다양한 메시지라는 명목 아래 만들어진 잡탕찌개 같은 영화를 대중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관객들은 이제 영화시장에 말하고 있다. "재미면 재미. 감동이면 감동.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면 단 하나만.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지 말고 한 마리만 제대로 잡아라."


이제 와 보니 더 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한다. 덜어내야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또다시 언급하는 말이지만 다시 한 번 더 말해야겠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아마추어는 자신이 이만큼 알고 있다고 설명하려 하고 프로는 메시지만 전달하려 한다.






추가) 배우들의 연기는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2월 책 서평]설득 - 제인 오스틴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