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마음먹은 건 다 해. 알잖아?"
미르는 잔뜩 상처받은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이어 말했다.
“차라리 아예 끔찍해지는 건 어때? 내가 애매한 건 딱 질색이라.”
더 잔인하게, 더 무감하게.
“네가 날 사랑해 봤자 또 얼마나 사랑했겠니.”
가장 아프고 아픈 말을 골라, 가장 잘 벼린 칼을 꺼내 그대로 심장에 쑤셔 박는다. 상처주기는 항상 쉬웠다. 그 말의 무게가 얼마나 큰 지 알아 쉬이 내뱉지 않았을 뿐. 그러나 미르는 이미 그를 상처주기로 마음을 먹은 뒤였다. 미르는 정말이지, 마음먹은 것은 다 했다.
“내가 나쁜 사람보다 더 싫어하는 게 뭔 줄 알아?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이야. 진절머리 나게 짜증 나고 거슬리고 역겨워. 차라리 널 미워하게 만들란 말이야, 날 미워하게 만들지 말고. 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드는 거, 그건 정말이지 못 참겠으니까.”
제가 뱉은 말에 찔려 그가 흘리던 핏물의 끝을 따라가다가 미르는 꿈에서 깨듯이 상념에서 깨어나 진을 바라보았다. 이미 오래 전의, 다 지난 시시한 일이었다. 그뿐이었다.
“진, 방금 뭐라고 했어? 못 들었어.”
“너 지금 남자친구 말이야, 왜 만났냐고. 어디가 좋았어?”
“음… 나랑 한결같이 정반대여서? 그 사람, 꿈을 안 꾼대. 순수하잖아. 내 머릿속은 매초 매 순간 꿈속에서도 쉬게 놔두질 않고 여기저기 꼬여 엉망진창인데. 사실 나도 예전에는 나랑 비슷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길 원했거든? 근데 그게 참 어렵더라. 둘 다 서로를 너무 쉽게 내다 버릴 것 같아서. 닮아 있는 만큼 두렵더라. 있지, 난 역시 내가 싫은 가봐. 나랑 반대인 사람만 곁에 두는 걸 보면. 아니지, 반대인 사람만 곁에 남는 건가.”
“그러고 보니 나도 너랑 반대인 것 같네. 그럼 넌 이상형이 뭐야? 너랑 반대인 사람?”
“이상형? 글쎄… 난 생각보다 불안정한 사람이야. 변덕도 심하고, 감정기복도 심해. 가끔 혼자 도망쳐 숨고 발톱을 세우기도 하지. 그래서 이런 나를 꽉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해. 애초에 이상형이니 뭐니 하는 건 내게 별 의미가 없어. 날 견딜 수 있는 사람 자체가 몇 없거든.”
이 말을 끝으로 미르는 다시 눈을 감았다. 곧 이를 혼자 있고 싶다는 표현으로 여긴 진은 자리를 피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암흑 속에서 다시금 하나둘씩 떠오르는 기억들을 애써 지우며 미르는 생각했다.
'... 난 역시 내가 참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