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 보이는 당장의 결과는 그저 점일 뿐이야.
진은 힘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미르에게 말했다.
“나 이번에 졸업 못할지도 몰라.”
“왜?”
“그냥 그렇게 됐어…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안 그래도 남보다 늦게 입학해서 뒤처져 있는데 졸업마저 바로 못하면 난… 정말 실패할지 몰라.”
“모든 일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어. 아무 이유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지. 그러니 당장 기회를 잃었다고, 실패했다고 여길지라도 나중에 이 일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러니 넘어졌을 때는 이렇게 생각해. ‘내가 넘어진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거야. 아무 이유 없을 리 없어. 모든 세상은 필연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진은 미르의 말에 반쯤 희망이 찬 표정으로 되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진짜 그럴까?”
“음… 네가 원하는 게 진실이야 아님 위로야?”
“…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언제나 그렇듯 진실이야.”
”그럼 진, 네가 원하는 진실을 말해줄까? 사실 우리는 훗날 이미 일어난 모든 일에 저마다의 이유를 붙이고 만드는 거야. 모든건 결국 다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고. 그럴 운명이었다고. 자 어때, 그럼 완벽하지. 실상은 시시하고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그게 위로를 주잖아. 다시 일어날 힘을 주잖아. 그거면 된 거 아냐?“
“… 네 말대로 확실히 힘이 되긴 한 것 같네. 5초 전까지만 해도 말이야.”
미르는 웃었다.
진은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
“만약 내가 진실 말고 위로를 원했다면 뭐라고 했을 건데?”
“그랬다면… ‘그럼 당연하지, 나를 한번 믿어봐.’라고 했겠지?”
“흠, 그냥 위로를 택할 걸 그랬나…”
미르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번엔 진짜 위로가 되는 말을 해 줄게.”
진은 내심 기대하면서도 의심하는 투로 물었다.
“그게 뭔데?”
“사실 실패인지 성공인지는 결과가 말해주지 않아, 시간이 말해주지. 지금 네 눈에 보이는 당장의 결과는 그저 점일 뿐이야.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하나의 그림을 만들 때까지 우리는 짐짓 한걸음 비껴 서서 기다려야 해. 그러니 지금 당장의 결과로 성공인지 실패인지를 네 멋대로 판단하지 마. 또 세상이 판단하게 두지도 마. 과연 어떤 그림이 나올지, 그들은 아무것도 몰라. 아는 척 떠들어댈 뿐이지. 그건 오직 시간만의 영역이란 걸 잊으면 안 돼.”
“… 이번 건 좀 위로가 되네.”
“참고로 이번 건 진실이야. 진심이고.”
미르는 이렇듯 종종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네곤 했다. 그녀는 항상 자신이 받고 싶었지만 받지 못했던 배려의 방식으로 상대를 살폈기에 진은 이토록 단단하면서도 섬세한,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녀만의 위로를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