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의 머그잔 이야기
스쳐가는 공간 속에 촘촘히 박힌 세월의 흔적들은 지나가는 풍경을 뒤로 한 채 창가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새겨진 시간의 조각들이 잠시나마 새겨 들며 깊은 상상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덜커덩 거리는 기차 바퀴 소리는 어느새 도시를 벗어나 구름 한 점 없이 끝이 안보이는 대 평원을 달리기 시작합니다. 기쁨과 슬픔, 환상과 기대, 그리고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속에 나와 동행하는 일행의 서로 돕고 의지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어느새 저 들녘 너머로 우리의 삶이 저녁 노을처럼 채색된 채 서서히 넘어가고 있습니다. 저녁 노을처럼 삶이 은은해 질 때 비로소 지나온 날에 대한 시간에 잠긴 듯 긴 숨소리와 함께 살며시 눈을 감고 흔들리는 어깨를 비집고 잠시나마 깊은 평안에 사로잡혀 봅니다.
오늘은 문화원 식구들과 암트랙(Amtrak)을 타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모처럼 떠나는 기차여행이기에 흘러가는 시간의 초침에 낚기 듯 모두를 서둘러 포트 워스(Fort Worth) 다운타운에 있는 암트랙 스테이션에 모여 들고 갈 짐들을 다시 한 번 조이고 챙겨봅니다. 그리고는 플랫포옴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떠나는 암트랙을 기다리며 지난날 한국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떠났던 긴 기차 여행의 추억을 새기며 오클라호마 시티(Oklahoma City)로 향하는 암트랙 위에 몸을 싣고 4시간의 긴 기차여행의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세계 제일의 철도 왕국인 미국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기차이지만 고속도로와 항공기에 여객 수송을 내어준 미국의 기차는 매년 적자운영으로 간간이 운영을 하다가 정부와 각 철도회사의 출자로 1971년에 암트랙이 설립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정부의 보조를 받으면서 운행을 하고 있으며 아직도 기차 매니아나 가족단위의 여행객에는 아주 유용한 여행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로키산맥을 지나는 California Zephyr, 시카고를 출발하여 그레이셔 국립공원을 지나 시애틀까지 운행하는 대륙 횡단의 Empire Builder 등 30개의 특성 있는 노선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오클라호마의 주도인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매일 아침 8시25분에 출발하여 텍사스의 포트워스에 왔다가 그날 저녁 5시25분에 돌아가는 하트랜드 플라이어(Heartland Flyer)는 달라스에 사는 우리가 가장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암트랙입니다.
우리는 2박3일의 일정으로 포트워스에서 저녁 5시25분에 출발하여 오클라호마 시티로 돌아가는 암트랙을 이용하기로 하였습니다. 티켓을 www.amtrak.com에서 구입을 하거나 암트랙 스테이션에 가서 구입하면 되는데 가격은 편도 31불에서 51불 정도 합니다. 기본 적으로 장거리 노선은 일반석이 코치, 카페차, 식당차, 침대차 등 다양하게 운행이 되는데 Heartland Flyer는 단거리 노선이기에 코치와 카페차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안락한 객석과 끝없이 펼쳐진 대 평원을 달리며 창가를 스쳐 지나가는 싱그런 계절의 봄 내음은 Washita River를 지나며 마치 철쭉꽃으로 착각할 만큼 아름다운 오크라호마 레드버드(Oklahoma Redbud)의 분홍빛 자태를 바라볼 쯤이면 이미 오클라호마 깊숙이 들어왔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는 대지에 내려앉은 어둠은 썸머타임이라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제도 속에 조금이나마 빛을 연장하여 8시가 되었는데도 환한 풍경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기차는 간이역 몇 곳에 정차를 한 후 쉬지않고 달려갑니다. 어둠이 내려앉고 저 멀리 빌딩 숲 사이에 촘촘하게 내려진 불빛이 시야에 들어 오고 Oklahoma River의 철교를 건너면 목적지인 오클라호마 시티에 도착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클라호마 시티에 머무는 동안 오클라호마 시티 비극의 상징인 ‘Oklahoma City National Memorial & Museum’, 다운타운의 아름다운 식물원인 ‘Myriad Botanical Gardens’ 그리고 샌 안토니오의 리버워크처럼 잘 단장되어 있는 브릭타운(Bricktown)의 리버워크에서 워터택시도 탈 예정입니다. 그리고는 그리 크지않은 조그만 도시인 오클라호마 시티 곳곳을 누비는 스트리트카(Streetcar)를 타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도 찾아가 기차 여행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만들 것입니다.
누군가가 ‘인생은 보이진 않는 승차권 하나를 손에 쥐고 떠나는 기차여행’ 같다고 이야기 합니다. 되새길 시간조차 없이 한 번 승차하면 거침없이 흘러버리는 시간의 노예처럼 중도 하차 할 수 없는 길을 떠나게 되는 거지요. 때로는 막막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험한 길을 지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 속에 밝게 비칠 새벽빛의 신선함을 맞이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이번 기차 여행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주말이라 분주한 브릭타운을 걸으며 스쳐가는 낯선 이들의 흔들리는 어깨를 바라보면서 그들 또한 나처럼 때로는 무거운 인생의 무게를 이고 살고 있으리라. 그렇지만 그들 또한 나처럼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보이지 않은 인생의 승차권 하나를 들고 인생 기차여행 속에 들어와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