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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Feb 07. 2024

영화 "조커"를 보고

미국판 난쏘공

영화 "조커"는 미국판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다. 

영화는 분노에 찬 슬픔이 가득하다. 

존중해주지 않는 타인에 대한 분노는 총구를 겨눈다. 탕, 발사한다. 


행복은 무엇일까? 의식주가 해결이 되어도 부당한 환경이 지속된다면 결코 만족할 수 없다. 게다가 의식주조차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희망을 꿈꿀 수 없다.  부조리한 세상을 혼자 힘으로 바꿀 수 없음을 알기에 그냥 모른 척하거나 나도 똑같은 부조리한 인간이 되는 수밖에 없다. 거대한 악순환은 자연스레 흐른다. 그러다가 영웅이 나타난다. 피에로 분장을 한 조커는 자신을 희롱하는 증권맨 세 명을 향해 총을 발사한다. 맞다. 영웅이다. 대중은 열광한다. 잘난 체하고 부자여서 걱정 없는 그들에게 마땅한 응징이라 생각하며 모두 피에로 마스크를 쓴다. 군중은 광장에 모였다. 그러나 여전히 권력자들은 귀 기울이지 않고 호화로운 파티를 즐긴다. 


조커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사람들은 내가 우습냐고 화를 낸다. 모두 존중받고 싶어 한다. 누구나 자신을 업신여기거나 무례하게 대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조커는 조절할 수 없다. 왜 조커는 이런 병에 걸린 것인가. 왜 그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것일까. 자신의 삶은 불행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런 순수한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무시하고 경청하지 않고 때리고 학대한다. 


소설처럼 침울하고 낯설고 우울한 분노가 그의 춤추는 모습과 어울려 슬프다. 그의 죄를 동정하면 안 되는 것인가. 나의 동정은 쓸데없고 무례한 것인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부조리에 머리가 어지럽다. 과하고 모순되고 억지스러운 웃음과 슬픔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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