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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배낭의 무게는 인생의 무게

by 하루달

인테리어, 그림에만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는 것이 아니다. 삶에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 소비를 하는 것이 미덕인 초자본주의 시대에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은 종교적인 힘까지 필요하다. 난민에게 늘 생필품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넘치도록 가지고 있는 물건 때문일 것이다. 배낭을 꾸릴 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무게가 보인다고 한다. 나에게는 약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것을 빼놓으면 큰일이라고 느끼는 것이 인생의 무게이다. 어느새 건강이 가장 중요한 나이가 되어버렸다.

샴푸와 클렌저, 세탁세제(매일 손빨래를 해야 한다)는 다이소에서 산 작은 용기에 소분했다. 화장을 하지 않을 거라 로션, 선크림이 전부이다. 치약, 칫솔, 치실, 손톱깎이, 반짇고리, 옷핀(가방에 무언가를 걸 일이 생긴다고 한다) 수첩, 볼펜, 아이팟, 줄 이어폰, 보조배터리, 충전기, 귀마개, 수면안대, 스포츠타월, 손수건, 작은 가방(배낭 운송 서비스를 맡길 때 우의 등을 넣어야 하고, 알베르게 도착 이후 마을을 돌아다닐 때 필요하다) 손지갑, 모자, 선글라스, 양말, 속옷, 작은 빨래망( 양말, 속옷 등이 잘 마르지 않으면 배낭에 걸고 다니면 좋다) , 갈아입은 옷을 넣을 비닐, 티셔츠, 바지, 판초우의, 얇은 잠바, 경량패딩 ( 어느 계절에 가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있다고 한다) 침낭, 슬리퍼 (알베르게에는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없다. 베드버그 예방 차원) 무릎보호대, 발목보호대, 헤드랜턴, 작은 팔레트, 붓, 스틱, 스틱장갑, 현재 나의 인생의 무게는 6kg이다. 초과되면 안 된다. (우산을 넣다 뺐다 하고 있다. 판초 우의도 있고 고어 텍스 아우터도 있는데 뭐 하러 가져가냐고 남편이 잔소리한다) 나에게는 또 하나의 인생 무게가 작은 팔레트인 것 같다. 5g도 나가지 않는 이 작은 물건을 가져가느냐 마느냐 고민하는 이유는 내가 그림을 과연 그릴까 싶다. 한 번도 쓰지 않을 물건을 가져가고 싶지 않은데, 많은 순례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쓰라고 나누는 바구니가 있다고 한다. 책이 가장 많고 화장품, 집게 등 작은 물건도 버린다고 한다. 그렇게 나눔을 하고 싶지 않다. 하루 일을 정리하다가 여유가 생긴다면 끄적끄적해 보자. 아니 떠나기 전까지 더 고민해 보자. 욕심을 버리는 것이 인생의 무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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