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의 무게는 인생의 무게
인테리어, 그림에만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는 것이 아니다. 삶에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 소비를 하는 것이 미덕인 초자본주의 시대에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은 종교적인 힘까지 필요하다. 난민에게 늘 생필품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넘치도록 가지고 있는 물건 때문일 것이다. 배낭을 꾸릴 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무게가 보인다고 한다. 나에게는 약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것을 빼놓으면 큰일이라고 느끼는 것이 인생의 무게이다. 어느새 건강이 가장 중요한 나이가 되어버렸다.
샴푸와 클렌저, 세탁세제(매일 손빨래를 해야 한다)는 다이소에서 산 작은 용기에 소분했다. 화장을 하지 않을 거라 로션, 선크림이 전부이다. 치약, 칫솔, 치실, 손톱깎이, 반짇고리, 옷핀(가방에 무언가를 걸 일이 생긴다고 한다) 수첩, 볼펜, 아이팟, 줄 이어폰, 보조배터리, 충전기, 귀마개, 수면안대, 스포츠타월, 손수건, 작은 가방(배낭 운송 서비스를 맡길 때 우의 등을 넣어야 하고, 알베르게 도착 이후 마을을 돌아다닐 때 필요하다) 손지갑, 모자, 선글라스, 양말, 속옷, 작은 빨래망( 양말, 속옷 등이 잘 마르지 않으면 배낭에 걸고 다니면 좋다) , 갈아입은 옷을 넣을 비닐, 티셔츠, 바지, 판초우의, 얇은 잠바, 경량패딩 ( 어느 계절에 가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있다고 한다) 침낭, 슬리퍼 (알베르게에는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없다. 베드버그 예방 차원) 무릎보호대, 발목보호대, 헤드랜턴, 작은 팔레트, 붓, 스틱, 스틱장갑, 현재 나의 인생의 무게는 6kg이다. 초과되면 안 된다. (우산을 넣다 뺐다 하고 있다. 판초 우의도 있고 고어 텍스 아우터도 있는데 뭐 하러 가져가냐고 남편이 잔소리한다) 나에게는 또 하나의 인생 무게가 작은 팔레트인 것 같다. 5g도 나가지 않는 이 작은 물건을 가져가느냐 마느냐 고민하는 이유는 내가 그림을 과연 그릴까 싶다. 한 번도 쓰지 않을 물건을 가져가고 싶지 않은데, 많은 순례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쓰라고 나누는 바구니가 있다고 한다. 책이 가장 많고 화장품, 집게 등 작은 물건도 버린다고 한다. 그렇게 나눔을 하고 싶지 않다. 하루 일을 정리하다가 여유가 생긴다면 끄적끄적해 보자. 아니 떠나기 전까지 더 고민해 보자. 욕심을 버리는 것이 인생의 무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