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출근 직장인보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프리랜스 라이터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하는 일을 소개할 때면 레퍼토리가 같은 듯 다른 듯 불안정하다. 디자인 관련 글 쓰는, 디자인 글로 먹고 사는,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눈 떠 보니 글 쓰는... 등등. 하지만 직업을 말하라면 하나로 귀결된다.
"안녕하세요. 디자인 저널리스트 전종현입니다."
들어본 적 없는 듯 막연히 머리카락을 스치는 단어, '디자인 저널리스트'를 직업의 이름으로 삼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프리랜서 라이터로서 콘셉트를 잡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디자인 씬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굉장히 적지만 이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더더욱 적다. 이 중 직업의 명칭을 열거해보면 디자인 평론가, 디자인 칼럼니스트가 있다. 하지만 디자인 저널리스트는 없다.
아마 대놓고 이런 소개를 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나 한 명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프리랜스 저널리스트에 대한 인식이 낮은 우리나라에서 저널리스트란 곧 어떤 매체에 속해 있는 사람을 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저런>지 기자, 혹은 <올랑꼴랑>지 에디터도 있겠다. 그들은 자신을 소개할 때 절대 디자인 저널리스트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멀쩡한 직장과 직급이 있는데 왜 그런 광의적이고 애매한 단어로 자신을 감싸겠는가.
나는 이를 역이용하여 디자인 저널리스트를 내 직업으로 말한다. 꽤 괜찮지 않는가, 디자인 저널리스트. 라임이 딱딱 맞는다. 디자인 평론가, 디자인 칼럼니스트, 그리고 디자인 저널리스트. 게다가 극소수의 명칭을 소유하는 단계에 바로 올라가니 희소성도 높아지고 포지셔닝도 독특해지니 일석이조다.
('꿩 먹고 알 먹고'라는 우리말 표현을 클리쉐로 쓰려고 했으나 생각해보면 너무 슬픈 말이다. 엄마와 자식을 함께 먹는 게 그리 기쁜 일인가. 차라리 나는 돌 하나로 두 마리 새를 기절시키는 일석이조를 택하련다.)
하지만 이건 계산적인 사고가 들어간 '포지셔닝'의 결과이지 내 본연의 뜻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내가 디자인 저널리스트라고 감히 말하고 다니는 것은, 다름 아닌 한국 디자인 씬에는 저널리스트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디자인은 주된 관심사가 아니며 따라서 언론에게도 주된 취재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디자인계는 하나의 산업으로서 그 생태계가 이미 조성돼 있다. 이는 곧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전달해야 할 존재가 더더욱 절실하다는 의미다. 게다가 디자인은 재미있고 신기하고 기분 좋으며 룰루랄라 눈으로, 손으로,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감성 폭발의 시발점 아니던가.
이 바쁜 '벌꿀'같은 이야기를 같은 디자인 씬에 속한 사람들조차 전공이 다르다는 이유로, 생업이 다르다는 이유로,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공유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슉슉 업계를 돌아다니며 즐거운 이야기와 애로 사항을 채집하며 다듬고 다른 이에게 들려줘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런 역할의 필요가 만들어내는 당위성과 만족감, 그리고 씐나는 일상이 너무나도 좋다.
아침 8시에 일어나서 씻지 않고 밖에 나가지 않은 채로 랩탑 뚜껑을 올리며 그 날의 외국 디자인 소식을 확인하고 슬슬 9시에 맞춰 출근하는 사람들을 페이스북 메신저에서 기다리며 요즘 흥미로운 이야기로는 뭐가 있을까 슬쩍 물어보는 내 삶이 너무 백수 같을 수도 있겠다.
뭐 부정은 하지 않겠다. 물질적인 결과로는 백수, 혹은 빈민층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곤 하니까. 하지만 디자인 전문 매체에 기사를 작성하고, 칼럼을 의뢰받아 송고하며 한 달 한 달 살아가는 내 자신에게 아직까지 후회는 없다. 디자인 저널리스트로 아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몸소 체험하는 건 소박하게나마 부릴 수 있는 내 작은 만용이니 말이다.
혹시나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글 몇 개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에 있는 블로그에 방문해주시길. 브런치보다 조금 더 묵직하고 뭔가 저널리스트 척하는 글을 읽으며 약간 머리 아픈 고민에도 한 번 쯤 동참해주시면 감사하다.
www.huffingtonpost.kr/harry-j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