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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Nov 12. 2023

국카스텐 하현우|찬란하게 아름다운 발악(發惡)

The Special Creep

국카스텐 음악에 많은 이들이 마음을 뺏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이 나면서도 처절한, 생생하면서도 무기력한, 이 상반된 이미지의 충돌이 무대 위에서 폭발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래서 더 슬프고 처절한, 국카스텐이라는 만화경이 만드는 몽환의 그림. 그 그림 안에 있는 하현우를 만났다.


EDITOR 조하나 PHOTOGRAPHER 김희언


하현우가 그린 자화상



그리부이(Gribouill, 멍충이) 선생님, ‘그쌤’


밴드 이름 ‘Guckkasten’과 EP 타이틀 ‘Tagtraume’에 모두 독일어를 썼어요. 

책을 읽다가 맘에 든 단어들인데, 우연찮게 다 독일어였어요. 의미도 의미지만 이미지 자체가 맘에 들었어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고딕 이미지를 좋아해요.

 

밴드의 히스토리를 팬 사이트에 직접 써서 올렸더라구요. 

네. 멤버들이 어떻게 만났냐, 밴드는 어떻게 시작했냐, 사람들이 하도 물어봐서요.

 

2000년, 드러머 정길씨와의 첫 만남부터 ‘The C.O.M’이라는 이름의 밴드를 거쳐, 국카스텐이 되기까지. 영화 찍어도 될 것 같던데. 짧은 글인데 끌어당기는 힘도 있는 것 같고. 

음… 에너지가 있죠. 내 노래나 그림, 글들이 대부분 사람들에게 확 꽂히는 영역대의 주파수로 이뤄져 있는 것 같아요. 내 목소리 주파수 자체가 음악에 묻히지 않고, 음악이랑 약간 분리되어 있어요. 더군다나 기타 사운드도 그렇고.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들이 한데 어울려서 들리니까, 사람들한테는 우리 음악이 되게 신선하게 들리는 거죠.


개인적으로 현우씨 목소리는 이승열에 강산에와 윤도현을 합쳐놓은 것 같아요. 

맞아요. 비슷하네요. 내 목소리는 좀 더 어리광 부리는 목소리예요. 좀 더 공격적이고.

 

보컬의 개성이 뚜렷하다는 건, 약일까요, 독일까요? 

보컬이 악기처럼 들리는 게 아니라, 보컬도 선명하게 들리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이런 거지. 도화지에 동그란 원을 그렸어요. 거기다 여러 색을 섞으면 어떤 색이 들어가는지 모르잖아요, 색만 탁해지고. 우리 음악은 여러 가지 색을 동그라미 원안에, 섞는 게 아니라 각각의 색깔을 콕콕 찍어서 채운 거예요. 뭔지 알겠어요? 시선을 두는 곳마다 다른 색이 보이는 거죠. 색 하나하나가 따로따로 보이는 거. 이해가 가요?

 

(웃음) 정말 선생님처럼 얘기하네요. 이래서 팬들이 현우씨를 ‘그쌤’이라고 부르는구나. 화술도 좋고, 자신감도 있고. 

내가 확실한 얘기만 하니까. 그게 다 ‘구라’라면, 사람들은 날 싫어하겠죠. 하지만 ‘구라’가 아니니까. 




새벽을 잃어버린 절름발이 (국카스텐, ‘꼬리’ 中)


학창 시절에도 지금 그 눈빛을 가진, 그런 모습이었어요? 

네. 별명이 한 수십 가지는 된 거 같아요. ‘외계인’, ‘에일리언’… 뭐, 다 그런 거였어요.

 

주로 뭐 하면서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그림 그리는 거요. 학교에서 만화를 많이 그렸어요. 원래 나는 미술학부였어요. 대학도 미술로 가고. 음악은… 그냥 노래 부르는 거에 관심만 많았죠.

 

방황을 많이 했나요? 

많이 했죠. 나는 사춘기 때 ‘사람이 되게 외로운 거구나’ 느꼈어요. 내가 그때 눈물이 되게 많았어요. 스물두 살 이후로 울어본 적이 없는데, 그전에는 내가 많이 울었어요. (쑥스러운지 그는 ‘꺼억꺼억’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데도 자꾸 눈물이 나오는 거야. 그때 나는 몰랐어. 내가 왜 그렇게 우는 건지. 지금 생각해 보니까,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껴서인 것 같애. 사춘기를 아주 불안 불안하게 보냈어요,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말쯤엔 만나던 여자 친구가 인천 남자랑 바람이 나서 헤어졌지. 이상하게 여자 친구가 잘못해서 헤어진 건데도, 오히려 내가 한심해 보였어요. ‘내가 얼마나 못났으면’ 하는 생각 때문에. 여자를 꼬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어. 근데 가만 보니까 내가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거야. 거울을 봐도 내가 잘생긴 것 같지도 않고. 생각해 본 결과, 여자들이 노래 잘 부르는 남자를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노래를 엄청 열심히 불렀지.

 

그래서 노래하기 시작한 거예요? 

네. 그거 때문에. 학교에서 노래밖에 안 불렀어요. 그때 막 피도 토하고. 그래서 고등학교 때 득음을 한 거야 내가. 소리가 막 쩌렁쩌렁 울려가지고, 소리를 지르다가도 내가 깜짝 놀랄 정도였으니까. 그전엔 내가 노래를 잘하는지도 몰랐어요. 예전엔 정말 노래 잘 불렀어요. 지금보다 더. 지금 이 나이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오지 않는 순수한 ‘빗방울’ 같은 소리가 나왔죠 그땐. 근데 그건 한때죠. 그때만 가질 수 있는 그런 목소리. 지금은 쇠가 녹슬어서 갈리는 소리. 근데 그게 알고 보니까 그 쇠가… 칼이야.

 

빗방울에 녹슨 칼? 

응.

 

담배 많이 펴서 그런 거 아닌가? (웃음)

(웃음) 그것도 좀 있겠다.

 

결국 그 바람난 여자 친구는 어떻게 됐어요? 

고등학교 축제 때 엄청 멋있게 노래를 불렀죠. 전교생이 뻑 간 거예요. 무대 위에서 내려와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여자애가 “현우야” 하고 나를 부르는 거야. 알고 보니 바람나서 헤어진 여자애였어요. 그때 나는? 시니컬하게 돌아섰죠. 이야~ 그때가 나의 첫 승리였어. 내 인생의 첫 승리를 얘기하자면, 바로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 뒤로 연애는 승승장구했겠네? 

아니 별로. (웃음) 노래 부를 때‘만’ 인기가 많았지. 무대 내려와선 결국 ‘외계인’이었어요. 노래 잘 부르는 거 말고는 뭐가 없으니까.

 

노래 이외에 본인이 내세울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네. 이건 진짜 내가 솔직하게 얘기하는 건데… 진짜 없어요.

 

가사나 멜로디, 무대 위의 퍼포먼스를 보면서, 그 에너지가 ‘콤플렉스’에서 시작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맞아요. 나는 콤플렉스 덩어리예요. 정말로. 그래서 누구보다 뛰어난 거예요, 내 음악이. 내가 콤플렉스가 많아서.

 

음악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결국 내 콤플렉스를 까발려서 보여줘야 하는 건데. 

배설하는 거죠. 정신적으로 변비 안 걸리려고.

 

사람들은 대부분 내색을 안 하려 하죠. 다들 없는 척, 안 그런 척하고. 

참을만하니까 내색을 안 하는 거 아닐까? 난 못 참겠어. 난 더러워 죽겠어요, 세상이.

 

뭐가 그렇게 더러워요? 

더러워요. 이 세상은 정말 너무 비현실적이에요. 사람들이 세상이 현실이라고 얘기하니까 내가 비현실적이라고 얘기하는 건데, 어떻게 보면 내가 현실적이고 세상이 비현실이야. 왜냐면 이 세상은 내가 어렸을 때 배웠던 것과는 너무 많이 다르거든. 거기서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사실. 추잡스러운 걸 아름다운 이미지로 덮어버리는 것도 너무 역겨워요. 패배자와 승리자가 있는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 자체가 나한텐 비극이에요.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아닌 사람들한텐 아닌 거겠지. 내가 볼 땐 세상은 지저분하고 더럽고 잔인하고. 특히 인간은 더. 내가 볼 때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지’ 않아요. 근데 웃긴 건 뭐냐면. 나도 그래, 나도 별반 다를 게 없어. 난 그게 싫은 거야.

 

자기 자신의 모습도 역겹겠네요? 

네. 그래서 ‘거울’ 같은 곡이 나온 거예요.

 


국카스텐 '거울'




비현실적이고 처절한 가사는 세상을 외면한다기보단, 어쩌면 세상에 또 다른 방법으로 ‘Help!’를 외치는 건지도 몰라요. 

네, 맞아요. 스스로 구원하려고 발버둥 치는 거예요. 세상은 분명 잘못되어 있어요. ‘세상이 공평하다’라는 말 때문에 그래요. 차라리 누군가 공평하지 않고 더러운 세상이라고 얘기했다면, 나는 거기서 어떻게든 했겠지. 이제 와서라도 아니라고 하면 되는데, 끝까지 그렇대. 난 선천적으로 약하고 모자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거든. 그렇다고 죽을 용기는 또 없어요. 찌질하고 쪼다 같은 거지. 나같이 찌질한 사람이 자괴감에 휩싸여서 계속 찌질하게 산다면, 이건 너무 비극적일 것 같애. 어떡해요 그러면. 뭔가 돌파구를 하나 찾아야 할 거 아니에요. 그게 나한텐 음악이에요.

 

음악 안에선 평등함을 느껴요? 

해결은 안 되고, 잊게만 해줘요. 우리 음악이 그거예요. 자신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진심으로 자유로워지고 싶은 몸부림이죠. 그래서 우리 음악이 약간 처절한 몸부림의 뉘앙스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한텐 되게 불편할 수도 있어요. ‘뭐 그리 불만이 많기에 소리 지르고 아프다고 그러는지’ 하고.

 

그걸 안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까? 

있어요. 의외로 많아요. 어렸을 땐 그 고통을 못 느끼는 것에 대해 오히려 수치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 ‘세상은 살만하고 아름다운 곳이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자기 최면 같은 거 아닐까? 체념일 수도 있고. 그렇게라도 해서… 살아야 하니까. 

그런 거죠. 그래야 맘이 편해질 테니까. 안 그러면 나처럼 될걸?





나를 배신하는 계절과 서성거리는 유령 (국카스텐, ‘Vitriol’ 中)


어떤 이들이 현우씨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아요? 

라디오헤드(Radiohead), 고흐(Gogh), 그리고 커트 코베인(Kurt Cobain). 그들 삶의 궤적들을 보면서 ‘이렇게 해야 진짜가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라디오헤드는 씬 자체를 넘어서서, 그걸 이끌어가는 아티스트가 되었잖아요. 톰 요크(Thom Yorke)의 행동이나 퍼포먼스, 음악, 가사들도 다양한 해석의 요지들을 갖고 있고. 뮤지션으로서 배울 게 정말 많죠. 고흐는 늦은 나이에 그림 시작해서 그냥 힘들게 살면서 멋진 그림 그린 사람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흠이 되게 많은 사람이더라구요. 그게 나에게 위로가 돼요.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사실은 결핍투성이었다는 게. 내가 자괴감에 휩싸여 힘들어할 때, 나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삶을 살았던 산 증인이 바로 고흐였으니까. 커트 코베인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음악적인 측면에서 보면, 되게 힘들었고 방황도 심했고. 불꽃처럼 살다가 죽음을 맞이했고. 그런 것들이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로망이었어요. 그런 것들이 나에게 다 영향을 줬죠.

 

EP <Tagtraume>의 ‘붉은 밭’ 가사 같네요. 

네. ‘붉은 밭’에는 무언가 원하는 걸 얻고자 하는 욕망과 자신과의 투쟁, 열망의 흔적들이 담겨 있어요. 내가 갈구하는 것들의 흔적들이 붉은색 혈흔으로 표현된 거죠.

 




갈망하는 것을 얻고 난 후, 결국 자멸하는 장면도 떠올라요. 

<몰락의 에티카>에서 신형철 평론가가 ‘숭고한 몰락’에 대해 이런 얘길 했어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쟁취한 후에 서서히 몰락해 떨어져 가는 거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붉은 밭’에 히틀러의 연설을 삽입한 이유는 뭐예요? 

히틀러 자체가 자신이 이념이나 욕망을 쟁취하려는 이미지의 꼭짓점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자신의 욕망을 이루고 나서 한순간에 처절하게 몰락한 대표적인 이미지인 거죠. 히틀러 하면 연설이 또 대표적이니까, 상징적으로 그런 소리를 넣은 거죠.

 

선과 악은 배제하고? 

네. 우리 노래에선 선과 악이 배제되어야 해요. 그게 우리 노래의 테마일 수도 있어요 어쩌면. ‘기쁨을 마셔버린 붉은 천사.’ 천사가 새가 되어 떨어졌다는 것 자체가 그런 것들을 얘기하는 거예요. 자신이 원하는 뭔가를 쟁취하고 나서, 숭고하고 아름답던 천사가 한낱 새로 변질돼 추락하는 거예요. 그걸 내가 노래로 부름으로써 선과 악이 없어지는 거죠. 그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삶은 그저 죽음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라 생각하는 건가요? 

나는 사실 인간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해답은 결국 죽음이라고 생각해요. 삶에서 해방되고 싶고, 삶이라는 울타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는 데에 있어서, 근본적인 해답은 죽는 거 말고는 없으니까. 근데 그럴 수 없잖아요. 그렇게 못 하기 때문에 나는 삶을 어떻게 해서든 현실을 바라보지 않고, 비현실적으로 살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는 데에 가장 도움이 많이 되는 게 음악, 그림, 시 같은 거거든요. 그런 행위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삶이라는 게 나 같은 사람은 굉장히 살아가기 힘든 거고, 인간은 아주 외롭고 비극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거기서 완벽하게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걸 뛰어넘는 게 아니라, 그냥 거기서 벗어나 버리는 게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외면해 버리는 거예요?

그렇죠. 없애버리는 거지, 나 스스로. 내 의지로 모든 걸 차단해 버리는 거죠.

 

아이러니하지 않아요? 세상을 등지려고 만든 현우씨의 음악을,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게. 

그래서 난 팬들이나 이슈들에 크게 신경 안 쓰는 편이에요. 그런 것들이 나한텐 별 의미가 없으니까. 나는 멤버들이랑 관객이 한 명도 없는 곳에서 공연한 적도 많아요. 그때도 분명히 난 즐거웠어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음악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쨌든 멤버들이나 나나 각자 삶에서 순수하지도 못하고, 남들처럼 똑같이 더럽게, 잘못을 저지르면서 살지만, 그래도 한 가지 순수한 영역이 있다면 이거, 음악. 딱 하나예요. 이제 사람들한테 주목받고 잘되고 상황이 좋아지다 보니까, 우리가 의도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것들도 있고, 책임져야 할 것들도 있고. 이런 게 생겨서 약간 거기에 대해서 스트레스나 부담스러운 게 있긴 있어요, 사실. 근데… 어쩔 수 없죠. 많은 사람이 와서 내 음악을 즐길 때 나도 더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니까. 나도 그걸 부인할 순 없으니까. 밴드 음악 자체가 뮤지션과 악기, 무대와 관객이 있어야 완벽해지는 행위니까. 내가 음악을 듣고 좋아했던 밴드들도 집에서만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거든요. 그들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했었고. 그러면서 시너지 효과가 나고, 그래서 음악의 힘이 증명되어 온 거죠, 객관적으로. 나조차도 무리 안에서 TV나 인터넷 같은 매체를 통해 뮤지션의 공연을 보면서 감동해 왔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부인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신경을 별로 안 쓸 뿐이지. 대중음악이라는 게 결국은 얼마만큼 노출되느냐 하는 문제인거지, 대중들이 선택을 해서 대중음악이 되는 경우는 없어요.

 

대중음악이 되고 싶어요? 

그럼요. 나조차도 어렸을 때부터 대중음악을 들어왔고, 좋아했으니까. 음악이라는 게 ‘소리의 실험’이 아닌 이상 세상 모든 음악들이 대중음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디뮤지션이 방송출연하면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그런 건 신경 쓸 필요가 없어. 그런 이중적인 잣대엔 끄덕도 안 해. 신경 안 써 나는. 오히려 그럼 난 더 삐뚤게 나가요.




다정하게 오염이 된 마술의 노래 (국카스텐, ‘Faust’ 中)


정규 1집 앨범을 리마스터링도 아니고 리레코딩(재녹음) 해서 재발매했어요. 

국카스텐 1집은 분명 명반이 될 거니까요. 그걸 그 상태로 놔두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사운드적으로 모자란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가진 돈 다 털어서 다시 녹음했어요. 그리고 1집엔 ‘거울’이 있으니까. 딱 그 한 곡. ‘거울’ 때문에.

 

현우씨한테 ‘거울’이라는 곡이 왜 그렇게 특별해요? 

내 상태와 많이 닮아있어서요. 나를 잘 대변하는 노래예요. 마지막 부분 있잖아요. ‘거울을 보며 나를 찾고 있네.’ 그걸 나는 기호학적으로 이렇게 팔에 새겨 넣은 거죠. (그의 왼쪽 팔에는 ‘거울’의 인트로 부분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하현우 팔에 새긴 '거울' 악보


가사에 중의적인 표현도 많고, 추상적인 단어들도 많고. 이미지화는 건 좋은데,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건 크게 상관 안 해요. 우선 나를 위한 음악이 되어야 하니까.

 

그렇게 자신을 위해 만든 음악을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뭘까요?

멜로디가 있어서 그런 거예요. 이런 가사에 멜로디까지 없었으면 안 좋아했겠죠, 사람들이.

 

멜로디가 모호하고 추상적인 가사를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하는 건가요?

그렇죠. 난 곡 만드는 것보다 가사 쓰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일부러 못 알아듣게 쓰려고? 

(웃음) 네.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요? 김태용의 <풀밭 위의 돼지> 읽어봤어요? 현대문학 보면, 말도 안 되는 소설들 많잖아요. 시를 읽어도 말도 안 되는 게 많아요. 근데 이상한 건 문학이 그러면, 사람들은 이해하든 못 하든 받아들여. 유독 노래 가사만큼은 받아들이질 못해. 내가 보기엔 그게… 사람들 버릇이야. 지금껏 모든 가사들이 다 쉬웠기 때문에 적응된 거지. 굳이 왜 그래야 되냐, 이거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국어를 ‘이 시어에 해당하는 의미를 보기 중 고르시오’로 배워서 그래요. 그래서 유독 한국 사람들이 모호한 표현을 못 견디는 것 같아요. 

그래요. 맞아요. 그러니까 결국 내 잘못이 아니야. 그건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잘못이야.

 

국카스텐의 모든 가사들은 앞으로 계속 그렇게 가나요? 

당연하죠. 누가 뭐래도. 일상적인 이야기나 쉬운 가사는 솔로나 다른 앨범을 통해서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국카스텐 안에서는 ‘무조건’이에요.

 

작사 작업은 어떻게 해요? 

한 가지 소재를 정해놓고, 그 소재하고 나하고 연관을 시켜요. 우선 종이에다가 길게 막 써요. 에세이 노트 한 두 페이지 분량으로 빼곡하게 쓴 걸 다시 한번 정리하고 줄여서 써요. 다른 페이지에 한 번 더 정리하고, 또 정리를 해서 나오는 거예요. 함축된 가사들은 거의 마지막에 나오는 거예요.

 

자신이 만든 음악을 듣고, 스스로 만족하는 기준은 뭐예요? 

내 머리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리듬이나 멜로디가 나왔을 때요. 뭔가 안 보이는 존재의 도움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요, 분명히. 내가 머리를 짜내는 중간에 누군가의 도움으로 ‘팅’ 할 때 나온 곡들이 명곡이 되는 거지. ‘거울’, ‘꼬리’, ‘붉은 밭’ 그리고 ‘깃털’처럼.

 

국카스텐 '깃털'



예술이나 창작 활동에 대한 ‘영감’ 같은 게 자신에게 있는 것 같아요? 

이상하게 나는 자리에 앉아서 하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면 안 나와. ‘아씨, 나 안 해!’ 하고 집에서 나오면, 길 가다가 문득 ‘팅’ 하고 나올 때가 더 많죠.

 

그런 게 어느 순간 사라지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럴 리가 없어요. 난 알아요. 스무 살, 기타 ‘C 코드’도 모르고 ‘도미솔’이 뭔지도 몰랐을 때, 나는 내가 음악을 하면 잘할 거란 걸 알았어요. 곡을 만들면 정말 멋진 곡을 만들 거란 자신감도 충만했고. 그 자신감이 지금 현실로 나온 건데. 난 지금도 그래. 앞으로도 수백, 수천 곡은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 무리 없이. 나는 소스가 떨어질 수가 없어. 난 뭔가가 막 우글거리는 게 이 안에서 막 느껴져요.

 

지금 현우씨… ‘빵상 아저씨’ 같아요. (웃음)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이 에너지를 항상 가지고 있어, 계속. 이 느낌을.

 

그게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다니까요? 

나도 그럴 수 있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는데, ‘본능적으로 절대 그럴 수가 없다’는 게 있다니까요.

 

그럼, 창작에 대한 불안감이나 압박감도 없겠네? 

없어. 난 아예 없어. (손을 내밀며) 내 손금을 봐요. 군대 있을 때 손금 책도 많이 봤는데, 난 창작선이 되게 좋은 편이에요.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강한 것 같아요. 

내가 ‘예술가는 말이죠’라는 말을 할 땐,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뜻에서 그런 얘길 하는 거고. 내가 예술적인 영역 안에서 ‘뛰어난 예술가’라고 얘기하면 솔직히 그건 좀 ‘구라’구요. 내가 보기엔 그냥 듣기에 괜찮은 음악을 만드는, 어설픈 뭔가가 있기는 한데, 어설픈 사람들 4명이 모여서 어설프지 않은 음악을 만드는 그냥, 뭐 그런 밴드이자 뮤지션인 것 같아요.

 

현우씨가 말하는 ‘예술가’는 뭐예요? 

‘에테르(Ether)’가 풍기는 사람.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보면, 에테르에 대해 나와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에너지, 기운 같은 거. 그런 걸 가지고 있는 뮤지션은 ‘에테르가 있는 뮤지션’인 거죠. 난 그런 게 되고 싶어요.

 

뮤지션은 무엇으로 검증을 받아야 할까요? 공연과 앨범 중에서요.

앨범이요. 물론 나도 ‘밴드는 공연이다’라고 말하는 사람 중 하나긴 하지만, 둘 중 하나를 꼽으라면 앨범인 것 같아요. 라이브는 내 컨디션에 따라 다르게 나오지만, 앨범은 녹음 자체가 기록이 되는 거니까요.

 

1집으로 주목을 많이 받은 만큼, 2집 앨범에 대한 ‘서포모어 징크스’는 없어요? 

그런 거 없어요 우리는. 오히려 더 좋은 노래가 계속 나오고 있어요.

 

어디서 나오는 거야, 그 자신감은 대체! (웃음)

몰라요. 자꾸 더 좋은 노래가 나와요.

 

뮤지션으로서 지금 어느 정도 온 것 같아요? 

나는 이십 대가 내 삶의 절정인 줄 알았어요. 근데 나는 이제 내 삶의 절정을 알았어요. 서른부터 서른세 살, 딱 지금이에요. 내 이십 대는 다 실패작이에요. 이십 대 때는 내가 원하는 모습을 제대로 갖춘 적이 거의 없었어요. 내가 뭘 하든 다 실패였고, 오류였어요.

 

자신의 이십 대에 만족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런가? 지금은 오히려 ‘이십 대에 실패를 많이 했다’라는 거에 만족해요. 이십 대는 실패로 얼룩져야 더 아름다운 나이인 것 같고, 그걸 바탕으로 생산적인 뭔가를 보여주는 나이가 삼십 대 초반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그 시점에 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지금 막 보여줘야 해요. 인생에 제일 중요한 시간인 것 같아요.

 

‘2011 한국대중음악시상식’ 시상자로 나와서 “밴드 십 년 했는데, 이제 정규 한 장, EP 한 장 나왔다”라고 얘기했었잖아요. 앞으로 앨범을 몇 장이나 더 낼 것 같아요? 

한 장. 2012년에 지구는 멸망할 테니까. 2집을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만들 거예요. 1집은 말 그대로 국카스텐, 만화경스러운 이미지였죠. 나무상자로 만든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여기선 ‘나무로 만든 상자’도 중요하죠. EP는 만화경의 이미지가 돌아갈 때의 느낌이었고, 2집은 만화경에서 조금 더 떨어져서 냉정하게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아니라. 쉽게 말해 1집은 청소년기, EP는 고등학교 졸업, 2집은 성인인 거예요.

 

‘2012 지구 종말’을 믿는 사람이라면, 원하는 것도 별로 없겠죠? 이루고 싶은 것도 없고. 

솔직히 말하면, 이루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그냥. 곡 만들고 노래 부르다가, 그러다 죽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내가 경험하고 싶은 거예요, 끝까지.

 

마음의 평안을 찾거나, 괴로워하는 것에 대한 해답을 얻으면 현우씨의 가사가 달라질까요? 

아마 그렇겠죠. 하지만 난 날 잘 알아요. 난 아마 해답을 못 찾고 죽을 거예요, 결국.




달과 6펜스, 거울과 기타


에디터는 인터뷰 내내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의 소설 <달과 6펜스>를 떠올렸다. 예술의 극치와 광기를 상징하는 ‘달’은 하현우의 환상 속 ‘거울’에 닿아있었고, 세속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뜻하는 ‘6펜스’는 하현우의 현실 속 ‘기타’와 ‘목소리’ 같았다. 하현우는 지독하게 세상을 부정했지만, 그 지나친 부정이 오히려 세상에 파고들려는 발악으로 느껴졌다. 국카스텐의 음악은 ‘찬란하게 처절하고 아름다운’ 발악이었다. 그가 말했듯, 세상은 누구나 혼자다. 각자가 보내는 신호들은 모호하고 끊김이 많아 서로 엇갈리기만 한다. 그런 세상에서 하현우는 자신만의 신호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가졌다. 그가 끊임없이 부정하던, 벗어나고 싶던 세상이 도리어 그에게 준 선물, 음악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외롭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F.OUND magazine, April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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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Story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하현우, 그리고 국카스텐은 이미 홍대 인디 씬에선 정평난 라이브 실력으로 인정받는 스타였다. 이제와 고백하자면, 국카스텐은 당시 내 인터뷰 섭외 리스트에 없었다. 철저하게 에디터 개인의 취향으로 인터뷰 섭외가 이뤄지던, 갓 창간한 인디 잡지에서 갑자기 펑크 난 인터뷰에 멘붕이 되어 마감 며칠 앞두고 섭외한 게 하현우였다. 나름 홍대에서 잘 나가던 하현우는 바쁜 스케줄에도 흔쾌히 시간을 내줬다. 이미 인디 밴드의 인터뷰를 '찌질함'으로 포장해 흥밋거리나 비아냥,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던 매체들에 많이 데인 체념 같은 거였다. 당시 국카스텐이 <맥심>과 했던 인터뷰가 대표적이다. 나 역시 그와의 인터뷰를 준비하며 <맥심> 인터뷰를 보고 충격을 받은 터라, 모든 에디터가 그렇진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홍대 상상마당 국카스텐 공연 전 대기실에서 딱 30분 정도로 예정됐던 인터뷰(그래서 그는 인터뷰 사진에서 피자를 들고 있다)는, 공연 후까지 이어졌다. 결국 그날 우리는, 심야영업을 하는 카페로 자리를 옮겨 장장 6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눴다. 마침 하현우와 나는 동갑이었고, 자기혐오와 자기 연민을 오가며 외로워하는 비슷한 인간의 꼴을 갖추고 있었다. 가만히 듣는 나에게,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이런 인터뷰를 한다며 신이 나 마음을 활짝 열었다. 그의 순수한 믿음이 나는 고마워, 그의 이야기를 정제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내 뜻대로 뒤틀거나 바꾸지도 않았다. 언변이 좋은 그의 어조를 날 것 그대로 살리고 싶어 당시 잡지 인터뷰에선 잘 쓰지 않는 구어체와 은어를 밀어붙였다. 이 인터뷰는 하현우라는 사람, 자체를 위해 쓰였다. 당신은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뮤지션이란 걸 알려주고 싶었다.


자신의 인터뷰를 읽은 하현우는 책과 함께 찍은 셀카와 철학적인 감상평을 주저리주저리 보내왔다.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때론 세상에 함께 맞서기도, 때론 대책 없이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기도 했다. 무대에서 그는,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을 쏟아붓고는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로 내려와 보는 이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뿜어 나오는 에너지는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후, 하현우는 <복면가왕>에 나가서야 이름을 알렸고, 나는 그런 한국이 싫어 바다로 떠났다.  


어차피 죽음으로 향해 가는 삶에서 자격지심과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결핍 투성이인 자신에 더욱 상처를 내는 대신 아파 죽겠다고 소리 지르고 불사 지르며 발악하는 용기를 선택한 하현우는 뮤지션으로서, 화가로서, 철학가로서 제대로 평가받을 자격이 있는 아티스트다. 시간이 흘러 하현우와 국카스텐의 무대는 홍대 라이브 클럽에서 대중으로 확장됐지만, 그는 여전히 내면의 수많은 자아에 둘러싸여 자기혐오와 자기 연민을 오가며 살고 있다. 나 역시 그렇다. 10년이 지나도 국카스텐 팬들에게 최고의 인터뷰로 꼽히는 이 대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그대는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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