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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Nov 19. 2023

나얼|그러므로 깨어있으라

Principle of My Soul


나얼. 이름만으로 진지함과 무게감이 느껴지는 뮤지션. 그가 풀어내고 표현하고자 하는 대부분은 뮤지션으로서 만든 여러 장의 앨범과 화가로서 작업한 아트웍에 충분히 녹아있다. 창작자에게 있어 진실된 영혼과 신념이 담긴 작업물을 내놓는 것 이상으로 요구되는 의무나 책임이 있다면, 그에게만큼은 통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나얼은 대중으로의 노출을 극히 꺼리는, ‘까다롭고 날카롭고 예민한 사람’으로 비쳐왔다. 하지만 적어도 에디터가 만난 나얼은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키려 자신의 원칙대로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조금 엉뚱하고 귀여운 사람이기도 했다.


EDITOR 조하나 PHOTOGRAPHER 김희언 ARTWORK 나얼



드디어 나얼을 만나다


사실 이번엔 기대도 안 했다. 정엽과 에코브릿지의 인터뷰를 계기로 소속사와 인연이 생기긴 했지만, 브라운 아이드 소울 3집 앨범 발매 전후로 간간히 운을 띄울 때마다 “나얼씨가 워낙 인터뷰를 꺼려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얼이 데뷔 13년 만에 첫 솔로 앨범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 앨범 발매일이 발표되었을 때, 에디터는 마음을 비우고 이따금씩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9월 20일, 나얼의 솔로 앨범 <Principle of My Soul>이 발매됐다. ‘나얼’이라는 이름으로 쌓인 신뢰감은 다시 한번 증명됐다. 그의 이름에 건 기대감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대중들의 반응은 예상대로 대단했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솔로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이 더욱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는 ‘주사위를 가장 잘 던지는 방법은 그 주사위를 아주 먼 데로 던져 없애버리는 거’라는 영국 속담처럼 대중들의 기대로부터 오히려 자유로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진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의 생각을 왜곡 없이 담아내기에 충분한 지면과 시간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얼 측으로부터의 답변이 왔다. “사진촬영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인터뷰 가능.” 아무래도 괜찮았다. 애초부터 얼굴로 알려진 뮤지션이 아니기에,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떼쓰고 싶지 않았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쑥스러워하며 소속사 사무실 회의실로 들어가 에디터와 마주 앉고서야 어색하게 ‘허허…’ 웃어 보이는 나얼을, 그렇게 만났다.  


나얼의 꼴라쥬 작품



그림과 노래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고 들었어요. 

고모랑 이모가 모두 그림을 전공하셨어요. 어릴 때 이모는 미술학원을 하고 계셔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게 된 거 같아요, 소질도 있었고. 처음엔 그냥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초등학교 들어가고 나서부터 제 스스로 알게 됐죠. ‘아…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구나.’ (웃음)


그땐 주로 어떤 그림을 그렸어요? 

구상을 좋아해서 똑같이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사람도 그리고, 나무도 그리고, 과일도 그리고… 다 그렸죠 뭐. 만화도 좋아해서 <드래곤볼>도 따라 그리고. 자연스럽게 화가가 되는 게 꿈이 됐죠. 잘하는 게 그거밖에 없었어요. 공부도 못하고. (웃음)


노래도 잘하시잖아요? 

노래는 전혀 소질이 없었어요. 할 생각도 없었고. 음악은 듣는 것만 좋아했어요. 어릴 때부터 그냥 리스너의 입장이었죠.


네 살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면서요? 

엄마가 첼로를 하셨었거든요. 아버지도 음악을 되게 좋아하세요. 제가 어릴 때 아버지가 소장한 LP만 해도 4천 장이 넘었으니까. 어릴 때부터 재즈랑 클래식을 항상 듣고 자랐어요. 집안 형편도 안 좋았는데 엄마가 바이올린을 배우게 하셔서… 한 5년 정도 했는데, 어릴 때 억지로 시켜서 한 거라… 너무 싫어서 그만뒀어요. 


다른 악기도 했어요? 

어릴 때 피아노학원 한 달 정도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웃음) 악보를 보고 쳐야 되는데, 자꾸 외워서 치니까 선생님이 혼내더라구요. 왠지 모르겠는데 자꾸 그랬어요. 그땐 음악적으로 뭘 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만둔 건데, 지금은 후회가 좀 많이 돼요. 어렸을 때 악기 공부를 좀 더 했으면 좋았을 텐데….


음악을 해야겠단 생각은 언제부터 하게 됐어요? 

아예 생각이 없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때 노래방 다니면서부터… 재밌더라구요. 혼자 노래 부르는 게. 그냥 그게 재밌어서…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된 거 같아요.


그땐 반에서 노래 잘하는 친구가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해 와서 돌려 듣곤 했잖아요. 나얼씨는 노래 잘하는 친구에 속했나요? 

그때 잘해봤자 얼마나 잘했겠어요. 고1 때까지만 해도 혼자 연습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다 고2 올라가면서부터 노래가 조금씩 늘더라구요. 고1 땐 수학여행에서 노래했다가 완전 망신만 당하고. (웃음) 


어떤 노래 불렀어요? 

부활의 ‘사랑할수록’.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는데, 어쩌다가 그냥 “해볼까?” 해서 노래를 부르게 됐어요. 애들이 “야! 너 노래 잘하니까 꼭 나가야 돼!”도 아니었고, 반에서 아무도 나갈 사람이 없어서 그냥 하게 된 거였죠. ‘이왕 하는 거 잘해보자’ 해서 나갔는데… 그렇게 사람이 많은 데에서 무대에 올라가 마이크 잡은 게 처음이니까. 너무 긴장이 되는 거예요. 노래방 기계가 있는 야외였는데 올라가자마자 ‘와~ 내가 여길 왜 나왔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전주 끝나고 노래 시작하는 부분에서 긴장을 너무 하다 보니 음을 못 잡겠더라구요. 그러다 앞 소절은 다 지나가고 애들은 막 야유 보내고… 그러다 끝났어요. 그때 유행하던 코미디 프로그램 중에 지금의 ‘고음불가’ 같은 ‘블랙커피’라는 팀이 있었는데, 제 별명이 ‘블랙커피’가 됐어요. (웃음) 우리 학교에서 진짜 노래 잘하던 친구가 다음에 나와서 신성우의 ‘서시’를 불렀는데, 뒤집어졌죠.


더 비교됐겠네요? 

아~ 나 같은 놈은 노래를 하면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첫 무대에 대한 기억이 트라우마가 됐을 수도 있겠네요. 

그런 게 당연히 있죠. 전 지금도 그래요. 무대랑 저랑은 잘 안 맞는다는 생각을 해요. 지금도 무대에 올라가는 게 되게 두렵고, 싫고 그래요.



최고의 보컬리스트


사람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내는 아름다운 화음에 심취한 나얼은 보이즈 투 맨(Boyz II Men) 같은 아카펠라 그룹을 모티브로 친구들을 모았다. 교회에서 열리는 ‘문학의 밤’ 무대가 MBC 라디오 프로그램 코너인 ‘별밤 뽐내기’로, ‘SBS 신세대 가요제’ 대상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다음 해인 1999년, 4인조 남성 보컬 그룹 앤썸으로 데뷔한다. 음악 프로그램에서 네 명의 남자가 성가대 가운을 연상케 하는 옷을 입고 생소한 창법으로 노래했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음악적으로 칭하는 전문 용어들을 뒤로하고서라도 ‘노래를 잘한다’라는 말로밖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나얼은 앤썸 시절 활동에 대해 “코디가 안티”였다며 멋쩍게 웃었고, 각종 지방행사와 방송출연(이때 앤썸은 <SBS 호기심 천국>에도 출연했다)을 마다하지 않았던 때로 회상했다. 대중들의 반응은 여의치 않았고, 집안 형편은 점점 더 기울어지던 상황에서 음악을 더 해야 하나, 군대를 가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나얼은 브라운 아이즈에 합류하게 된다. 2001년과 2002년, 브라운 아이즈로 내놓은 두 장의 앨범은 단 한 번의 방송 출연 없이 모든 차트를 석권했고, 수백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중창단에 대한 나얼의 미련은 2003년, 브라운 아이드 소울 결성으로 이어졌고, 이후 한 장의 브라운 아이즈 앨범과 두 장의 브라운 아이드 소울 앨범이 더 나왔다. 특히나 브라운 아이드 소울 3집 <Brown Eyed Soul>은 이전 소속사와의 길고 긴 법정소송이 마무리되고 국방의 의무를 마친 이후, 새로운 둥지로 자리를 옮겨 선보인 앨범이었다. 앤썸과 브라운 아이즈, 브라운 아이드 소울. 13년간 그룹으로 활동해 온 그였지만 나얼이라는 보컬리스트의 존재감이 그룹보다 더 강력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최고의 가창력을 거론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이름, 수많은 뮤지션들이 피처링 러브콜을 보내는 이름, 음색과 창법, 기교를 논하는 학자들에게 분석되는 이름이 바로 나얼이다.



무대를 두려워하는 완벽주의자


나얼이 ‘얼굴 없는 가수’가 된 건 브라운 아이즈 활동부터였겠죠? 그건 본인이 원한 거였나요? 

아니에요. 방송출연을 안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의견이 회사에서 나왔어요. 그게 완전 적중을 한 거죠. 사실 전 그때까지만 해도 방송을 안 하겠단 생각은 없었거든요. 나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해야 되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땐. 아무것도 없는 신인이 방송을 마다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거죠. 근데 브라운 아이즈 활동이 그렇게 돼 버리고 나선,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젠 팬들도 방송출연에 대한 기대를 안 하는 것 같아요. (웃음) 공연은 어때요? 무대에 오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예전엔 그런 게 별로 없었는데, 음악을 하면서 점점 그런 게 생겼어요. 지금도 계속 심해지고 있어요 더… 모르겠어요. 무대에 올라가는 게 두렵고 그래요.


관객이 없는 곳에서 혼자 노래 부르는 건 어때요?

사실 소리라는 게 그때그때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서. 관객이 있건 없건 컨디션이 좋으면 상관은 없어요. 근데 제가 싫은 건 무대에 올라가서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거니까.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 보통 최고의 순간으로 꼽을 때가 관객들과 이렇게…

(말을 가로채며) 호흡한다고 그러잖아요? 저는 전혀 없어요 그런 게. 그런 말을 공감을 못 하겠어요. 전 그게 너무 싫어요.


나얼씨 노래에 사람들이 환호하는 게 전혀 감흥이 없어요?

전혀 없어요. 고맙긴 한데, 좋진 않아요.


그럼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행복한때가 언제예요? 

간단하게 저는 그냥, 내가 무대에 올라가서 얼마만큼 했느냐, 나 자신이 만족하면 좋은 거고 만족 못하면 괴로운 거고. 제가 저 자신에게 굉장히 객관적이거든요. 제가 판단했을 때 잘했는지 못했는지, 그거로만 평가해요 저 자신을. 되게 피곤한 성격이죠. 


무대에 자주 안 올라서 더 그런 게 아닐까요? 

무대에 많이 오른다고 그게 전혀 좋아지지 않아요. 내일이 공연인데 컨디션이 좋으리란 보장이 없잖아요. 공연 2시간 전, 리허설 때 엄청나게 컨디션이 좋았는데 무대 올라가자마자 갑자기 이상해지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그런 모험을 하기가 싫은 거예요.


계획된 대로 안 되고, 예상치 못한 변수에 의해 틀어지는 걸 굉장히 싫어하나 봐요. 

네.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아요. 오늘은 무대에서 내가 충분히 즐겼으니까 좀 망쳤지만 괜찮아, 이런 게 절대 안 돼요 저는. 사실 제 성격 자체가 그렇진 않거든요. 되게 털털하고, 평소에 계획도 잘 안 세우고 닥치는 대로 사는 편이에요. 근데 누군가에게 창작물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선 그렇게 되는 걸 되게 싫어해요.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네요. 음악뿐 아니라 미술 작업에 있어서도 그런가요? 

제가 혼자 열심히 만들어서 완성된 걸 보여주는 게 좋아요. 완벽하게 잘 나오고 내 맘에 든 결과물을 딱 결과물로 보여주는 게 좋지,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요.


무대에서 라이브를 하는 것도 결과물을 보여주는 거 아닌가요?

실시간 결과물이잖아요. (웃음) 잘 부르면 좋은데, 잘 안되면 되게 스트레스받는 거죠. 


앨범을 내는 건 괜찮은 거죠? 

앨범 만드는 과정은 되게 재밌어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거고. 하지만 공연은 달라요. 물론 감사하죠. 감사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성격에 안 맞는 건데. 억지로 좋다 좋다 한다고 해서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다시 돌아보는 음악의 가치


보컬리스트로서의 나얼의 존재감은 그가 어느 그룹에 있건 독보적이었다. 그런 그가 13년 만에 ‘싱어송라이터 나얼’로 내놓은 첫 번째 솔로 앨범이었다. 작정하고 그 의미를 따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나얼이라는 이름만으로 낸 앨범이기에 무작정 엄지를 치켜들 순 없다는, 묘한 반발심도 생겼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앨범의 첫 트랙을 플레이하는 동시에 사라졌다. 학창 시절부터 흑인 음악의 매력에 빠져 따라 하던 소년이 10년을 웃도는 시간 동안 음악이라는 영역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탐구해 온 모습이 그대로 스며있었다. 오랜 시간 들어도 귀에 무리가 오지 않는 건 앨범 수록곡들을 아날로그 콘솔 박스로 믹싱 했기 때문이었고, 릴테잎으로 녹음한 ‘Soul Fever’와 ‘You & Me’는 미세한 잡음들조차 아름답게 느껴지는, 따뜻하고 풍성한 소리의 울림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이 두 곡이 수록된 도넛판 EP(Extended Playing)가 포함된 스페셜 에디션은 판매 하루 만에 매진됐고, 이 레코드판을 손에 넣은 컬렉터들은 음반을 듣기 위해 요즘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축음기를 장만했다. 녹음과 재생의 편의를 위해 디지털 방식을 선호하는 요즘 세상에 릴테잎은 구하기조차 어렵고 아날로그 형태의 환경을 갖춘 녹음실 또한 찾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모든 애로사항과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담고 싶었던 한 뮤지션의 바람에 대중들이 화답한 것이다. 별은, 별빛을 찾는 사람을 위해 빛나는 것처럼.



‘바람기억’의 딜레마


고음으로 호흡을 쭉 끌어가는 거, 그건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웃음) 아… 뭐… (웃음) 아니… 그냥 하는 거죠 뭐.


‘바람기억’ 어떻게 불렀나 해서요. 

되게 힘들게 했어요. 어우~ 무지하게 힘들었어요. 라이브가 심히 걱정돼요. 실수로 원래보다 반키 높여서 녹음한 건데, ‘녹음을 다시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고음역대가 듣는 이에게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다는 거, 아시죠? 

물론 그런 부분이 있겠죠. 전 고음을 자랑하려고 발표한 노래가 전혀 아닌데, 이게 오해가 되더라구요. 마치 고음을 들려주기 위해서 이렇게 녹음한 것처럼. 사실 반키 낮춰서 불러도 상관없거든요? 그래도 되게 높기 때문에. 근데 앞부분이 맘에 들어서 그걸 버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갔어요. 


후렴 부분을 고음역대로 쓰면서 표현하고 싶은 느낌이 있었을 텐데요. 

원래는 이 곡이 나이가 좀 있으신, 여자 가수에게 주려고 만든 노래예요. 제가 부를 생각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타이틀곡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게 됐죠. 사실 이게 한국에서 음악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인 것 같아요. 대중들의 기대치도 있고…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했을 땐… 뻔하거든요.


뻔하다는 게 어떤 의미예요? 

외면당할 게 뻔하죠. 지금도 보면 차트에 ‘바람기억’밖에 없어요. 그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져버릴 수 없겠더라구요. 그렇다고 또 제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한 건 아니긴 한데. 어떤 평론가가 이게 저의 딜레마라고 쓴 걸 봤는데,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평론가한테도 결국 그게 딜레마인 거예요. 사실 음악이라는 게, 곡이 너무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앨범에서 빼야 되는 건 아니거든요. 되게 복잡하죠? 저 스스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어디까지 눈치를 보고 만들어야 되고, 어느 선까지 내가 의도적으로 빼야 되나. 좋은 곡을 굳이 대중적인 걸 노렸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빼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이걸 좋아하는데 저것도 좋아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평론가들도 딜레마인 거고.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저도 불쌍한 거고. 전 그렇게 생각해요. 


나얼이 하고픈 걸 다 담았는데, 결국 타이틀은 ‘바람기억’ 일 수밖에 없는 딜레마요? 

그렇죠. 결국 타이틀은 ‘바람기억’ 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보이지 않는 힘이 있죠. 그렇다고 싫은 게 아니에요. 저도 되게 좋아요. 전 스타일보다 더 큰 걸 봤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음악은 수학이면서 감성이지만, 전 음악에서 감성적인 부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아무리 내 맘에 든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다면 슬플 거 같아요. 그게 수많은 예술가들의 고민이고… 또 앞으로도 계속되겠죠? 그래도 제가 좋아하고, 또 할 수 있는 것들이 엄청난 수준의, 어려운 음악이 아니니까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뮤지션들의 몫인 건가요? 리스너들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필요하죠. 음반 제작 하는 분들, 음악 하는 사람들도 같이 달라져야 하는 부분이고. 대중들은 들리는 걸 좋아할 수밖에 없거든요. 많이 듣는 걸 좋아하게 되고, 따라가게 되잖아요. 사실 80~90년대 우리나라 음악들 보면, 많이 들리던 음악들이 멜로디가 살아있는 음악들이었기 때문에 계속 좋은 음악들을 듣고 ‘이게 좋은 음악이구나’를 알았는데, 그 이후부턴 계속 들리는 음악들이 그런 음악이 아니니까. 이제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된 거 같은데. 대중들이 좋은 걸 들어도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는 거죠. 그게 가장 심각한 일인 것 같아요. 대중들이 바뀌어야 할 자세는 딱 한 가지밖에 없어요. 인기차트만 보고 음악을 듣는 거. 음반도 너무 안 사고 일단. 사려고 해도 어디서 뭐가 나오는지도 모르는 거고. 복잡하죠, 복잡해요. 이걸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될지도 모르겠고. 


차트 상위권에 계시는 분이 이런 얘길 하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네요. 

네. 속상해요 되게 많이.



나얼 '바람기억'



무뚝뚝하고 다정한 사람


나얼은 대중 앞에 나서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그나마 그를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나얼의 음악세계>에서도 그는 무뚝뚝한 말투로 트랙 소개만 하고는 내내 음악만 틀어준다. 대부분의 음악은 LP로,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음반은 직접 일본에서까지 공수해 와 들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또 나얼의 매력이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보여주는 것’이 나얼 자신을 모자라지도 않게, 부족하지도 않게 만들어주는 삶의 질서다. “미술이 본업이고 음악은 부업이다”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는 에디터의 말에 “미술이 나에게 더 맞는 방식일 뿐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다”며 나얼은 고개를 저었다. 한국의 대중가요 시스템 안에서 앨범 홍보나 프로모션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내가 할 일은 음반을 만드는 데까지만”이라며 선을 그은 그는 “열심히 작업해서 음반으로 음악을 들려주는 게 잘못인가요?” 하고 물었다. 에디터는 뮤지션이 다음 앨범을 걱정하지 않고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다면 누구나 그렇게 할 것이라 답했다. 말 그대로 ‘나얼이니까 가능한 방식’이었다. 어쩌면 그가 음악으로 이루고 싶은 게 부와 명성이 아니기에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뮤지션은 진심을 다해 만든 음악을 들려주면 된다는, 어쩌면 너무 당연한 본질에서 우리는 그동안 너무 멀어진 건 아닐까. 본질에 집중할 뿐인 뮤지션에게 우리는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닐까. 대중들에겐 무뚝뚝하기만 한 그에게도 유독 애정과 집착을 보이는 존재가 있다. 음악뿐 아니라 미술 작업에서도 꾸준히 오브제로 등장시키는 흑인이라는 인종이 그 대상이다. 자연에 가장 가까운, 원초적이고 순수한 인간의 모습과 가장 닮아있다고 생각하는 흑인이 너무 좋아 자메이카까지 갔던 나얼은 자신을 이방인처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 혼자서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단다. 이 대목을 이야기할 때 진심으로 서운해하고 안타까워하던 나얼의 표정과 말투는 정말, 귀여웠다. 


나얼의 꼴라쥬 작품


사람을 살리는 음악


솔로 앨범을 내야겠다고 생각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어요? 

그런 거 전혀 없었어요. 그냥 멤버들이 하나씩 내니까 솔로 앨범을. 나도 그냥 해야겠다 했어요.


생각보다 별로 안 복잡한 사람이네요? (웃음) 

예. 저는 복잡하지 않아요. 아무래도 브라운 아이드 소울 자체가 저로 인해 시작된 팀이기 때문에 멤버들 각자 항상 자기 걸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 거예요. 그런 게 표출이 돼서 자연스럽게 솔로 앨범을 하나씩 낸 것 같아요.


앨범 작업 기간은 얼마나 걸렸어요? 

녹음 기간만 7개월 정도 걸렸어요. 예전에 써놓은 곡들도 있었고, 2~3곡 정도는 녹음 중간에 새로 만들었어요.


나얼씨가 원하는 팝적이면서도 멜로디컬 한 노래들이 많이 들어간 거 같아요. 

네. 제가 좋아하는 성향이 그런 곡들이에요. 


앨범 전곡을 릴테잎으로 녹음할 생각은 없었어요? 

비용도 비용이고, 그럼 연주자나 엔지니어들이 굉장히 힘들어요. 손이 엄청 많이 가는 작업이거든요. 


릴테잎으로 녹음을 한 거면, 연주 자체를 원테이크로 간 건가요? 

그렇죠. 곡 전체를 쭉쭉 여러 번 연주해서 녹음하고 그중 하나를 고르는 거죠.


릴테잎 녹음 방식을 시도해 보자는 건 누구의 생각이었어요? 

연주자 형들이랑 상의하다 나온 얘기였어요. 예전에도 우리가 옛날 소리처럼 만들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우린 최선을 다했는데 그런 소리가 안 나왔거든요. 고민을 많이 했죠. 베이스 치는 형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녹음 방식에 문제가 있다. 릴테잎으로 녹음을 해야 된다” 하더라구요. 그 형도 안 해봐서 사실 잘 모르겠던 상태였어요. “아~ 일리가 있다, 이거다.” 했어요. (웃음) 도화지 자체가 다르니까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걸 예측하고 한 거예요. 근데 중간에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려고도 했었어요. 테잎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런 녹음실 자체도 한국엔 없으니까.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힘들었어요.


음색이나 창법에 있어서 변화가 있었을까요? 

저는 제일 중요하고 변하지 않는 게 사람의 음색이라고 생각해요. 제 음의 색이잖아요. 사람의 색깔이니까. 창법은 잘 모르겠고, 그냥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고 느껴요.


그 말은 곧, 사람으로서도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네요. 오랜 시간 음악을 해오다 보면 음악에 대한 가치관이나 철학 같은 게 단단해질 것 같아요.

‘음악이란 뭔가!’ 고민해 본 적 있으세요? 대체 음악이 뭔데 사람들이 이렇게 미치는지?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음악에 미치잖아요. 그림에 미친 사람들보다 음악에 미친 사람이 더 많고. 저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게 있는데… (웃음) 그게 뭐냐면… 음악이요, 사람하고 되게 비슷해요. 음악의 3 요소가 화성, 멜로디, 리듬이고, 사람의 3 요소가 영, 혼, 육, 이걸 쭉 따라오면 영성, 감성, 이성이에요. 음악이 사람이랑 똑같아요, 구조가. (그는 회의실 화이트보드에 단어들을 적으며 이 이야기를 했다.)


나얼이 인터뷰 도중 화이트보드에 이렇게 적고는 꼭 책에 넣어달라고 했다.


이건 언제 깨달은 거예요? 

이거 한… 두 달 전에? 우와~ 제가 고민을 엄청 하다가… 이걸 꼭 넣어주세요. 이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나얼씨 이론에 따르면, 음악은 그 사람의 영혼 그대로를 나타내는 거네요

모든 예술 분야는 영적인 세계예요. 그래서 속임을 당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음악이 무서워요. 의도적으로 코드를 바꾼 음악을 들으면 육체만 죽는 게 아니라 영혼이 죽어요. 세상엔 좋은 음악, 나쁜 음악이 분명히 있어요. 이번에 제가 솔로 앨범 발표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사실 70년대 필리 소울(Philly Soul, 필라델피아 소울)도 아니고, 알앤비(R&B)도 아니에요. 사람을 살리는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그게 가장 보람된 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나얼씨가 궁극적으로 음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겠네요. 

물론 그렇죠. 사람을 살리는 게 우선이죠. 그게 저도 좋고, 또 그게 우리가 해야 될 일이에요. 음악의 원래의 목적, 본질이 있으니까. 사실 삶의 모든 건 질서예요, 질서. 그 질서를 벗어나면 항상 문제가 생겨요. 술 먹고 노래방에서 자기 멋대로 노래하면 그 사람 감정은 엄청나게 순수할지 모르지만, 듣기 안 좋잖아요. 질서가 깨져서 그래요. 질서는 항상 있어야 돼요, 어느 정도는. 노래를 한다는 건, 음악을 한다는 건, 그 질서를 잘 지키면서 감성 전달이 잘 되느냐, 안 되느냐, 그 차이겠죠. 어려워요 사실. 설명하기 참 어려운 거예요. 


괜찮은데요, 왜. 

괜찮아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


나얼은 지금보다 더 좋은 소리를 내고 싶다고 했다. 지금보다 더 고민한 흔적이 있는 소리를 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계속해서 고민하고 연습하고 있는 중이라고도 했다. 죽었다 깨나도 따라갈 수 없는, 인종적인 한계가 분명한 흑인 음악을 하는 동양인 뮤지션으로서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사람을 살리는 음악, 상처받은 영혼이 치유되는 음악을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런 음악을 하는 과정에 있어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 천천히 천천히, 그저 한 걸음씩 걸을 뿐이다. 나얼은 음악의 가치를 소홀히 하는 이들에게 다시 한번 그 가치를 환기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며,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지난 삶과 기억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가진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그는 항상 깨어 있으려 한다. 물론 많은 독자들이 예상했을 것이다. 나얼이 이야기하는 곳곳엔 그의 종교적 신념과 믿음이 배어 있다. 하지만 그가 노래로 말하는 ‘믿음과 사랑’은 굳이 종교적 의미와 해석을 하지 않더라도 보편적인 이들의 영혼을 따뜻하게 보듬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소위 말해 ‘공인’으로서 분명하게 드러내는 종교적 신념에 대중들이 느끼는 거부감이 두렵진 않느냐는 질문에 나얼은 이렇게 답했다. “그게 두려우면 신앙이 없는 거죠.”



F.OUND magazine, November 2012

이 콘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파운드 매거진과 조하나 에디터에게 있습니다.





Behind Story


나얼은 매거진 피쳐 에디터로 살면서 가장 오래 기다렸던 사람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에서 가장 노래 잘하는 사람으로 꼽히는 그였지만, 워낙 가려진 게 많아 그를 만나 인터뷰하고 싶어 하는 기자들이 많았다. 가끔 나얼은 그룹 앨범이 나오면 일간지 기자들과 그룹으로 진행하는 짧은 라운드 인터뷰 정도는 했었다. 그리고 늘 사진은 소속사에서 제공하는 프로모션용이었다. 나는 일부러 그런 자리엔 가지 않았다. 나얼이라는 아티스트는 나에게 그렇게 얕게 다뤄질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보채지도 않았다. 그의 음악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완벽주의와 대중에 노출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성격을 존중하고 싶었다. 뮤지션이 음악만 잘하면 됐지, 더 이상은 대중의 욕심이라 생각하는 에디터로서 나는 그저 이따금 소속사 매니저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나얼씨, 앨범 너무 좋아요. 혹시라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페이지 비우고 기다릴게요."


서울엔 가을이 그윽이 드리웠고, 나는 출퇴근길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안에서, 그리고 점점 차가워져 가는 세상에서 나얼의 솔로 앨범을 들으며 영혼을 덥혔다. 기대 없이 받은 매니저의 전화에, 나얼이 내가 써온 인터뷰 기사를 보고는 "하고 싶다"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편집장님을 설득해 그 달의 책 커버 자리를 얻었는데, 나얼은 인터뷰는 하되 사진 촬영은 완강히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린 인터뷰가 성사됐는데, 덜컥 겁부터 났다. 그의 앨범에서,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이 질감을 내가 과연 인터뷰로 잘 담을 수 있을까, 그냥 놔둬도 좋을 사람, 괜히 만나 어설프게 포장하려다 그에게 누를 끼치면 어쩌지. 


나얼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대중에 노출을 꺼리는 그의 성향은 그를 어렵고 괴팍한 사람의 이미지로 굳어지게 했다. 출중하고 뛰어난 아티스트는 결과물로 이야기되어야 할진대 한국의 문화계는 그런 것과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스스로 내세워 드러나길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결과물의 미천함을 메꾸기 위함이라 믿고 있던 나는, 나얼의 사진 없이 커버 이미지는 어떻게 꾸밀 것이며, 어떻게 기사를 써야겠다는 걱정과 불안을 버리고, 나얼이라는 아티스트를 만나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의 창작물에 집중하며 공부하고 탐구했다. 


약속된 인터뷰 장소에 앉아 나얼을 기다리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나와 눈도 안 마주치고 내 질문에 대답도 않으면 어쩌지, 10분 있다가 그만하자고 나가면 어쩌지, 별 걱정을 다했다. 워낙 그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으니 주변을 수소문해도 그와 일대일 인터뷰를 했다는 에디터를 찾을 수 없어 스스로 머릿속에 만든 망상이었다. 그때 나얼이 들어왔다. 낯을 가리며 쭈뼛대던 그는 내 질문에 하나씩 답해 가며 편안해졌다. 이런 인터뷰는, 이런 질문은 처음이란 말을 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약속된 인터뷰 시간 다 됐다는 매니저의 말에 나얼은 "더 하고 싶다"라고 했다. 사진 촬영을 않기로 했던 인터뷰 조건 때문에 나얼의 작품이나 가사 손글씨를 커버로 쓰면 어떨까, 물었더니 급기야 "사진 찍어도 돼요!" 하며 어색한 포즈까지 취해 보였다. 


10년 전, 인디 매거진에서 음악 전문 에디터로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당시엔 아이돌 문화가 이미 심각하게 비대해지고 있었다. 10년 후 지금, BTS와 블랙핑크가 글로벌 스타가 된 건 분명 아이돌 산업계의 큰 결실이지만, 그래서 한국의 인디 씬은 더더욱 남루하고 비루해졌다. 인디 아티스트가 이름을 알리기 위해선 <나는 가수다> <싱어게인>에 나와 자신의 노래가 아닌 남의 노래를 커버해 불러야 될까 말까에 <나 혼자 산다>에서 '찌질함'을 어필해야 될까 말까인 상황은 한국 음악계의 계층화 현상을 더욱 또렷이 만들었다. 뮤지션이 뮤지션이 아닌, 엔터테이너의 시대는 진즉에 시작됐고, 트레이닝으로 음색도, 창법도, 스타일도 제작자가 원하는대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끔찍한 시대가 됐다. 히트한 음악은 많지만, 분명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엔 좋은 음악은 없다.


평론가들은 나얼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온갖 어려운 음악용어를 가져다 아는 척하기 바빴다. 이미 한국 음악계엔 평론가의 지적 허영을 채워줄 뮤지션이 몇 안 남은 상태라 더 그랬다. 그래서 나얼은 더 까다롭고, 어려운 사람일 거란 이미지가 생겼다. 하지만 나얼은 정말 재밌고, 편하고, 다정하고, 소박하고, 귀여운 사람이었다. 그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음악은 필리 소울도, 알앤비도 아닌, 좋은 음악, 그리고 '사람을 살리는 음악'이라는 말을 할 때 나는 인터뷰어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나 역시 '사람을 살리는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인터뷰는 피쳐 에디터라는 아티스트로서 만드는 작품이다. 나얼의 인터뷰는 나에게, 길이 남을 마스터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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