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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Dec 11. 2023

레이첼 야마가타|슬프도록 아름다운

The bittersweet moment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레이첼 야마가타(Rachael Yamagata)가 두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피아노와 기타 사이를 오가며 그녀는 바스러질 듯 푸석한 목소리에 감정의 여러 빛깔을 담아 노래했다. 텅 빈 객석에서 리허설 무대를 숨죽여 지켜보던 에디터는 그녀도 그 목소리를 닮았을 거라 조심스레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공연장을 깊게 울린 씁쓸한 목소리와 슬픈 표정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달콤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EDITOR 조하나 PHOTOGRAPHER 김희언·김중만






# Track 1. Intro: How We First Met


2004년 발표한 EP 앨범 한 장으로 언론으로부터 ‘제2의 노라 존스(Norah Jones)’라고 극찬 받은 전력에 대한 설명은 뒤로하더라도, 지독한 사랑 한 번쯤 해본 사람에게 레이첼 야마가타의 음악은 즉효약이다. 사랑과 이별, 소통의 단절로 찾아오는 깊은 외로움과 슬픔, 끝내 남은 상처까지. 슬프도록 아름다운 그녀의 목소리는 재즈 바의 쌉쌀한 위스키와 자욱한 담배 연기를 떠올리게 한다. 음악만으로 떠올린 그녀의 이미지는 성 밖으로 한 걸음도 나오지 않고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슬픈 라푼젤’이었다. 



레이첼 야마가타 'Duet' with 아담 코



그녀를 만나던 날, 매니저로부터 “인터뷰는 하되, 사진 촬영은 어려울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역시 음악만큼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이겠구나 하던 찰나, 무대 뒤 대기실로 통하는 계단 멀리서 시원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기실 안에는 잦은 투어에 익숙해진 그녀의 커다란 가방이 활짝 열려있었고,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이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분위기가 어수선해 미안하다며 주섬주섬 물건들을 챙기는 그녀를 보는 순간, 촬영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겨간 <파운드 매거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혹시… 인터뷰하면서 사진 찍어도 될까요?” 책 속의 ‘F.OUND Tracks’를 보며 “Oh, My God!”을 외친 그녀는 한국 음악에 관심이 많아 인터넷을 찾아보다 원더걸스의 ‘Nobody’ 영상을 봤다며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O.K! Cool.” 그렇게 그녀는 한국에서의 두 번째 내한공연 대기실에서 노 메이크업 상태로 파운드 매거진과 인터뷰를 시작했다. 




# Track 2. That’s So Cool!


2009년 첫 내한 이후, 이번이 두 번째 한국 방문이네요. 내한 전에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나요? 

사실 잘 몰랐어요. 아시아에서는 주로 일본이나 싱가포르에서만 공연을 했었거든요. 2009년 투어 때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연하게 됐는데, 마침 한국에서 하루를 쉬게 됐죠. 그때 여기저기 돌아볼 수 있었어요. 요즘 미국 뉴스에서 South Korea/North Korea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그럴 땐 아무래도 내가 공연했던 나라다 보니 더 관심을 두고 보게 되더라구요.

 

첫 내한 공연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후,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어떻게 남았어요? 

특이했어요.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다고 생각했죠. 낯을 많이 가리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일본이랑 비슷한 느낌이면서도 뭔가가 살짝 달라요. 아, 한국인들은 패션 센스가 남달라요. 다들 너무 옷을 예쁘게 입는 것 같아요. 서울은 아주 활기 넘치는 큰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고, 사람들이 새벽 늦게까지 잠 안 자고 노는 걸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됐죠. (웃음)

 

인기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엔딩에 ‘Duet’이 삽입되면서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했어요. ‘Be Be Your Love’도 예전에 유명 광고 BGM으로 쓰였고. 그래서인지 한국에 당신의 팬들이 아주 많아요. 알고 있나요? 

아니요, 전혀 몰랐어요. 안 그래도 나도 궁금해서 누구한테 물어보고 싶었거든요. 지난번 내한 공연 때 관객들이 ‘Be Be Your Love’를 따라 부르더라구요. 이 곡이 정확히 어디에 쓰인 건가요?

 

휴대폰 광고였어요. 다니엘 헤니와 김태희가 나오는. (웃음) 

아~ 그랬군요. ‘Duet’도 오늘 공연에서 연주할 계획인데, 잘 됐네요! 아주 좋아요, 좋아요! (웃음)






# Track 3. Teeth Sinking Into Heart


언더그라운드 밴드(펑크/퓨전 밴드)로 오래 활동하다가 2004년에 솔로 앨범을 냈어요. 솔로 활동을 시작하기에 이른 나이는 아니었는데… 

솔로로 활동할 계획은 전혀 없었는데, 당시 내가 만든 음악들이 밴드와 잘 맞지 않는다고 느끼기 시작했어요. 7년 동안 밴드 활동을 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솔로로 활동할 기회가 찾아왔죠. 처음엔 밴드와 솔로, 두 활동을 병행하려 했는데 결국 솔로 앨범 작업물이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고, 솔로 활동이 바빠지면서 밴드 활동을 같이 한다는 게 불가능해졌죠.

 

유난히 한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인터뷰에서 당신을 롤 모델로 많이 언급해요. 당신의 목소리나 감성, 연주 실력, 송라이팅 능력이 부럽다고 하더라구요. 

내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고통, 상처들을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 같아요. 내 음악이 비슷한 감정을 가진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보듬어준다고 얘기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저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하기 때문 아닐까요?

 

음악에 깔린 멜랑꼴리한 정서들은 당신의 직접적인 경험이나 환경의 영향인가죠? 

네, 물론이죠. 거의 항상 그래요. 곡을 쓸 때마다 내가 겪은, 혹은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 많이 써요. 항상 마음속에 있는 솔직한 감정들을 쓰곤 하죠. 어두운 느낌의 가사들이 많긴 하지만, 곡을 쓰고 난 뒤엔 마음이 많이 편안해지는 걸 느껴요. 마음속의 어두움을 밖으로 꺼내버린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음악을 통해 결국 나 자신이 치료받는 거죠.

 

2집 앨범 타이틀이 <Elephants… Teeth Sinking Into Heart>였어요. 미국에선 ‘Elephant’에 ‘절대 잊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다던데… 사랑의 아픈 기억이나 상처들을 다시 불러내는 일이 괴롭진 않나요? 

난 주로 사랑을 하는 도중이나 어떤 일을 겪는 과정에서 곡을 많이 써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당시의 느낌이 나에겐 굉장히 중요해요. 그렇게 하면 아픔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바람이 담긴 곡을 쓰게 되죠. 하지만 노래를 부를 땐 어쩔 수 없이 기억하게 돼요. 공연할 때마다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요. 그전에 느꼈던 아픔과 고통이 되살아난다기보다는 ‘그때 당시의 그 의미들은 현재의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거죠.

 

짓궂은 질문 하나 할게요. 당신은 기타와 피아노 연주 실력도 탁월하고, 멋진 목소리를 가졌어요. 이 중 하나만 고르라면 어떤 걸 고르겠어요? 

음… 목소리요. 내 몸이 낼 수 있는, 세상에 하나뿐인 악기니까요.

 

특별히 목소리를 위해 관리를 따로 하나요? 

아니요, 전혀. 담배 때문에… (웃음) 정말 끔찍하게 목 관리를 안 하죠. 이젠 좀 신경을 써야 할 텐데…




# Track 4. The Lonely Singer-songwriter


어린 시절 어떤 음악들을 들었는지 궁금해요. 

자라면서 주로 부모님이 듣는 음악들을 많이 들었어요. 70~80년대 클래식부터 록 음악까지 장르도 다양했죠.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And Garfunkel), 엘튼 존(Elton John), 조니 미첼(Johnny Mitchell) 같은 뮤지션들은 7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들이었어요.

 

언제부터 직접 곡을 쓰고, 연주하게 된 거예요? 

한 12살부터 시작한 듯해요. 처음엔 그냥 재미였어요. 그러다 대학 시절부터 혼자 빈 공간에서 피아노 치면서 진지하게 곡을 쓰기 시작했어요. 친구들이 금요일 밤 모두 나가서 놀 때 난 혼자 그렇게 놀았죠.

 

노래 잘하고 매력적인 스무 살 숙녀가 금요일 밤에 나가서 놀지 않았다구요? (웃음) 

난 외톨이였어요.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 은둔형 외톨이)처럼 집에서 고양이 다섯 마리랑 영화만 보곤 했어요.

 

지금도 그래요? 

남자들이 내 노래를 듣고 나면, 날 좀 멀리하려고 하더라구요. (웃음) 그래도 난 괜찮아요. (웃음) 난 그렇게 사회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그녀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큰 소리로 웃었고,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신의 음악을 들으면, 굉장히 예민한 사람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다들 내가 굉장히 우울한 사람일 거라 생각해요. 실제로 날 만난 사람들이 내 밝은 모습에 실망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내 음악을 듣고 예상했던 이미지에서 벗어나면 환상이 깨지는 건가? (웃음)

 

음악을 안 할 땐 주로 뭘 하며 지내요? 

요즘엔 <프로젝트 런웨이>에 푹 빠져 있어요. 오늘 호텔 헬스클럽에서 이 프로그램을 보여줘서, 정말 좋았어요. (웃음) <프로젝트 런웨이>가 너무 좋아서 집에 마네킹도 사놓고, 재미로 옷도 만들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어렵더라구요. 디자인 쪽에 관심이 많은가 봐요 내가.




# Track 5. A Strong Woman


2008년 두 번째 정규 앨범 이후 지금까지 어떻게 지냈나요? 

또다시 기획사가 병합되는 과정을 거치면서(그녀는 2004년 정규 1집 발표 이후에도 같은 일을 겪었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많이 잃었어요. 비즈니스 쪽의 일들이 모두 중단된 상태였죠. 그래서 사실 지금도 머리가 좀 복잡해요. 그래도 3집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곡도 많이 쓰고. 요즘은 녹음도 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이렇게 라이브 공연도 하면서 말이죠.

 

자신이 직접 곡을 쓰고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로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는 게 부담이 될 것도 같아요, 비즈니스적으로 요구받는 상황도 있을 테고. 

이제 그런 과정은 넘어선 듯해요. 내 음악이 사람들에게 알려질수록 요구받는 게 물론 많아지긴 하죠. 음악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가사는 이렇게 썼으면 좋겠다 등등. 그런 일을 실행으로 옮긴 적도 있었지만, 누가 뭐래도 내 경험에서 나오는 음악이 제일 좋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관계없이 말이죠. 난 그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것과 그 노래를 만들며 사는 걸 사랑하는 것뿐이에요. 그 어떤 이유로도, 그 어떤 사람도 내가 하는 일을 멈추진 못할 거예요.

 

프로로 활동한 경험만 쳐도 십 년을 훌쩍 넘었네요. 아무리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 해도 여성 뮤지션으로 오래 음악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사실 음악을 오래 한다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여자든 남자든 말이죠. 예전엔 남자와 여자가 음악을 하는 데에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솔직히 나도 지금까지 이렇게 버텨왔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요. 여성 뮤지션들이 첫 앨범을 내고 사라져버리는 경우를 자주 봐왔으니까.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음악 비즈니스 면에 대해서도 많은 걸 배우려 애썼어요. 예전엔 사람들에 대한 의심이 많았는데, 이젠 좀 더 강한 여성이 된 것 같아요. 내가 나 자신의 CEO로서, 나 자신을 믿고 다른 사람들이 날 좌지우지 못하게 해야겠죠 앞으로도.

 

앞으로 음악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그래미(Grammy)요!! 그리고 아티스트의 지위! 금메달까지 얻어야죠. 계속 꾸준히 지금처럼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팬들도 많이 늘리고 싶고. 음악 쪽으론 내가 전에 해왔던 것들보다 더 잘하고 싶어요.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라도.


3집 앨범은 언제쯤 만날 수 있는 거죠? 앨범이 발매되면 또다시 한국에 올 건가요? 

사실 올여름쯤 앨범을 내고 싶은데, 확실하진 않아요. 한국에 다시 올 거냐구요? 물론이죠! 친구들에게 내가 다시 올 수 있게 얘기 좀 해달라고 해주세요! (웃음)


레이첼 야마가타 'Dealbreaker' 




F.OUND magazine, March 2011

이 콘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파운드 매거진과 조하나 에디터에게 있습니다.




Behind Story

레이첼 야마가타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목소리를 가진 뮤지션이다. 10년 전 내 한국 생활은 그녀 덕분에 더 감성적이고 낭만적이었다. 내 인생에 책갈피를 꽂아둔 순간에 그녀의 음악은 언제나 배경음악이 되었다. 잡지 에디터가 되기 훨씬 전부터 팬이었던 그녀의 두 번째 내한 인터뷰에 이어 몇 년 후 <아레나옴므플러스>로 자리를 옮겨서도 그녀를 만났다. 기나긴 팬데믹을 이겨낸 그녀는 지난달 4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우리가 인터뷰를 통해 한 약속은 꾸준히 지켜지고 있었다.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아름다운 시로,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것. 그리고 그만두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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