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7년차 기간제 국어교사 신통
반복해서 듣지만 영 익숙해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왜 결혼을 하지 않니?”, “왜 아이를 낳지 않니?” 같은.
7년째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신통(별명, 35세)에게도 그런 질문이 있다.
“왜 기간제 교사를 하세요?”
사회구조적인 문제 원인을 지우고 개인의 의지나 능력 탓으로 떠넘기는 뉘앙스가 잔뜩 묻어난다. 그럴 때면 신통은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쓴웃음을 짓고 만다.
“비정규직, 계약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왜 계약직으로 일하세요?’라고 묻는 경우가 있나요? 그 질문이 기분 나쁜 게 저는 다른 직업에 대해서 그렇게 묻는 걸 본 적이 없어요. 특히나 앞에 말까지 더해지면 ‘왜 정규 교사를 안 하고 기간제 교사를 하세요?’예요. 제가 느끼기에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렇게 물어보지 않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알바를 하든 일용직을 하든 다른 어떤 일을 하든지요.”
속상한 마음과 달리 신통은 상대방의 무례한 질문에 대차게 받아칠 만큼 강단이 있지도, 아무렇지 않은 듯 굴 만큼 뻔뻔하지도 않다. 애써 웃어넘기려는 건 대화 분위기를 해치고 싶지 않은 유한 성격 탓이 크다.
이런 질문은 주로 교육계 현실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서 튀어나온다. 일을 쉬고 있을 때 나간 소개팅에서 처음 본 상대에게 직업을 밝힐 때라든지, 명절마다 마주치는 친척 어른이라든지. 일부는 신통이 임용고시를 여러 해 준비한 줄 빤히 알면서 “정규 교사를 해야지.”라는 말까지 보탠다. 낯설고 친숙한 관계를 가리지 않고 반복되는 이 질문은 흘러 나가지 못하고 신통 안에 무겁게 쌓인다.
중등교원 임용시험은 1년에 한 번 열리고, 교원자격증 소지자만 응시할 수 있다. 진입장벽이 높은 데다 모집인원은 늘 적기 때문에 후보자들은 재수, 삼수를 각오하고 임할 수밖에 없다. 자꾸만 변하는 교육제도에 현직 교사들이 교원 증원을 강력히 요구해도 임용 정책과 규모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어 보인다. 학교는 필요한 인력을 기간제 교사로 땜질하듯 간편하게 메우며 버텼다. 결국 기간제 교사 비중은 갈수록 늘어 국공립학교 10%, 사립학교 20%를 훌쩍 넘어섰다. (2022년 교육통계연보 기준)
신통은 사범대를 졸업한 대부분의 학생처럼 임용시험에 응시했다. 국어교육과 졸업반 시절부터 교육대학원을 다니며 다섯 차례 시험에 응시했다. 대학원 졸업장을 눈앞에 두었을 때, 신통은 더는 지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가 하고 싶은 건 국어 교육인데, 시험을 준비하는 건 국어 교육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일을 시작했어요. 임용시험을 포기한 건 아니었어요.”
‘교사’가 되고 싶었다. 교육 현장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기간제 교사의 불리한 처우를 넘어섰다. 학교에 가고 싶었다. 교사로서 학생들을 만나고 싶었다.
“(처음 교사로서 일할 때) 너무 좋았어요.
학생들 가르칠 때 너무 좋고, 수업이 잘될 때 너무 좋아요. 수업도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 뜻대로 안 된단 말이죠. 한 반에 24~26명 되는 단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상상한 대로만 되지는 않아요. 교사 연수를 듣는 것도, 수업 계획을 짜는 것도 수업을 잘하고 싶어서 하는 거고요. 거기(준비한 수업)에 애들이 몰입할 때….”
얼마나 좋은지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신통이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특히 작년에 가르친 학생들과의 수업이 각별했다.
“시 콜라주 수업이 있었어요. 교과서에 있는 기존 시들에서 마음에 드는 단어들을 골라 조합해서 자기만의 시를 만드는 거예요. 근데 애들이 엄청 열심히 하는 거예요. 한 시간을 하려고 했는데 몇 번에 걸쳐서 네 시간까지 한 것 같아요. 어떤 교육 활동을 할 때 보통 학생들의 첫 번째 반응이 ‘이거 시험에 나와요?’예요. 거기에서부터 씨름이 시작돼요. 물론 그게 애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문제긴 한데 그런 게 너무 힘들었죠. 작년에 가르친 학생들이 특별했던 건 뭐든 하려고 했을 때 그런 반응이 거의 없었어요.”
단편소설보다도 더 짧은 초단편 소설을 읽고 비경쟁 독서 토론을 하기도 하고, 세월호 참사 10주기에는 계기 수업을 열어 사회적 중대성과 애도를 나누는 국어 활동을 하기도 했다. 교사로서 가슴 벅찬 시간을 보냈다. 한편, 입시에 갇힌 질문을 받을 때면 안타까움과 피로감이 들기도 하지만 외면하지 않는다. 그 역시 그런 학창시절을 겪었다. “이거 맞아요?”라며 시험을 염두에 둔 무수한 질문들로 선생님을 곤란하게 했다고 고백한다. 친구들 사이에 별명이 ‘질문 퀸(Queen)’일 정도였다. 신통은 과거 거울을 보듯 학생들을 성심성의껏 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신통은 어려서부터 선생님을 좋아했다.
“유치원 때도 선생님을 좋아했어요. 그냥 모든 선생님을 맹목적으로, 정말 좋아했어요.”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으랴.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좋아하다 마음이 깊어져 그들처럼 되고 싶어졌다. 초등학생 때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중학교 선생님이 되기를 꿈꿨다.
“중학교 때 도서부였거든요. 학교 도서관에 앤(Anne)이 꽂혀 있었어요. 그걸 제가 ‘안네’라고 읽은 거예요. 그래서 뭐야, 안네의 일기(by Anne Frank)가 어떻게 이렇게 많이 (여러 권) 나올 수가 있어? 이러면서 읽었는데 앤이었던 거죠. 근데 그 책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제 취향인 거예요. 앤이 감수성이 풍부하잖아요. 상상력도 그렇고. 앤도 거기서 교사가 되고요.”
신통은 ‘너무’를 네 번 반복하며, 달뜬 얼굴로 <빨간 머리 앤 (원제 Anne of Green Gables)> 에 이입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 역시 자신의 ‘인생 책’이라며 추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학교 수업에 필요한 공부를 제외하고는 독서에 푹 빠져 지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시 동아리에서 문학에 대한 애정을 키워갔다. 두꺼운 소설과 얇은 시집을 차곡차곡 쌓아 자기만의 방을 짓던 문학 청소년은 감수성 풍부한 어른이 되어갔다. 국어와 사회 과목을 특히 좋아했지만 대학 입시 원서를 넣을 즈음에는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지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국어 교사가 되는 꿈을 이뤘으니 훨훨 날아다니면 좋으련만 ‘기간제’라는 이유로 자꾸만 날개를 다친다. 기가 꺾인다.
1개월, 6개월, 12개월, 24개월….
신통이 n개 학교에서 일하며 근무한 기간들이다. 첫 학교에서는 학기 시작인 3월부터 4월까지 교과 수업은 기본이고 학급담임도 맡았다. 일반 기업이었다면 통상적으로 2개월 만근으로 인정받았을 테지만, 기간제 교사의 계약 기간은 철저했다. 3.1절인 공휴일과 4월 마지막 이틀인 주말을 전임자의 근무일로 계산해 신통의 근무 기간(3.2~4.28)은 2개월로 인정되지 않았다. 실제로 2025년 4월 현재 기준, 인터넷 검색창에 ‘기간제교사 채용 공고’라고 쳐보면 과목을 불문하고 20일, 1개월 26일 등 단기 아르바이트를 방불케 하는 계약기간이 적힌 공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민한 시기의 중고등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안정적인 교육을 제공하기에 터무니없이 짧은 기간이다.
비록 첫 학교의 근무기간은 “치사했지만” 같이 근무한 선배 선생님들은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처음 겪는 행정업무에 헤맬 법도 한데 부장 교사와 같은 과 동료 교사들이 친절하고 꼼꼼하게 알려주었다. 이후에 여러 학교를 거치며 각자도생하는 환경을 접하고 보니 첫 직장에서의 도움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게 됐다. 그러다가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자신의 위치성을 확인하곤 했다.
“같이 연수를 듣는 사람 중에 이곳에 기간제 교사가 왔다는 인식을 배제하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그냥 당연히 정규 교사가 왔다고 생각하는 거죠. 다른 기간제 선생님들을 보면 본인이 기간제라는 걸 얘기를 안 하거나, 다 같이 그냥 침묵하는 것 같아요.”
교사 사회에서 당하는 배제야말로 뼈아프다. 같은 처지의 교사들이 침묵하는 현실도 답답하다. 교사 연수는 대개 다른 학교 교사들과 섞여서 참여하기 때문에 기간제교사든 정규 교사든 굳이 밝히지 않는다지만 전국의 중등교원 다섯 명 중 한 명이 기간제교사인 사회에서 이들을 없는 존재인 듯이 굴 때면 목구멍에 무언가 차오른다.
“분명히 같이 일을 해놓고서 기간제 교사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걸 보니까 되게 무시당한다고 느꼈죠. 기간제 교사들을 필요할 때만 써먹고 기본적으로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같은 학교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함께 일하기에 정규 교사와 기간제 교사에 대해 노골적으로 선을 긋지 않는다. 그럼에도 신통은 차별의 순간들을 경험하고 만다.
“물론 학교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어요. 기간제 교사한테 아무래도 남는 자리를 주다 보니까 좀 다들 기피하는 업무가 주어지는 경우가 많고요. 업무를 더 많이 주는 경우도 있고요. 사실 그게 기간제 교사만 그런 건 아니긴 해요. 정규 교사도 물론 그런 일들을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있죠. 적어도 정규 교사에게는 뭔가 좀 더 합의되고 소통이 되어야 가능한데, 기간제 교사한테는 생략되는 경우가 많은 거죠.”
연수원에서든 근무지에서든 때때로 기간제 교사에 대해 ‘없는 존재’로 여기는 언어를 감각했다. 신통은 ‘국어’ 교사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 예리한 데다,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자신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입장이니 차별과 무시의 언어에 둔감해질 수 없다. 그래서는 안 되는 존재다.
“저는 그런 게 불편하거든요. 근데 저 같은 기간제 선생님들하고 얘기했을 때, 그분들은 그런 걸 불편해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너무 여러 사람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그걸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보고 싶지만 당장은 내 코가 석 자고…. 머리가 아프고요.
내가 이걸 못 참겠으면 감수해야 하는데, 혼자서 감수하기엔 누가 좀 같이 있으면 좋겠고 그런 거죠. 그런데 뭔가 부당한 것이 있을 때 대개 수긍하고 순응하는 성향이 있어요. 약자라서 그런 거 같아요.”
이런 마음의 부대낌을 같은 처지의 동료들과 나누고자 신통은 기간제 교사 노조에 가입했다. 따로 또 같이 읽고 쓰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기량을 키워가고 있지만 쉽지 않다. 계약직이라는 불안정성 때문에 마음 한편에 자리한 현실적인 고민을 떨칠 수가 없다.
기간제교사 노조 위원장 박혜성 교사는 저서 <우리도 교사입니다>에서 2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다.
“두꺼운 서류를 든 채 여기저기 학교를 돌아다니며 매년 불안한 2월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 일회용처럼 잠깐 사용되었다가 버려지는 인생 같아 씁쓸한 봄을 맞이해야 하는 사람들, 이렇듯 기간제교사들에게 2월은 매우 잔인한 달이다.”
신통 역시 2월에 계약이 종료됐다. 대부분의 경력을 사립학교에서 쌓고 보니 “이제는 공립학교에서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안정적으로 수업을 운영하기 위해 최소 1년 이상인 자리를 희망했다. 수십 건의 채용 공고 중 두 가지 조건을 적용하자 지원할 곳은 손에 꼽을 정도만 남았다. 몇몇 학교에 면접 기회를 얻었지만, 결과적으로 일을 쉬게 되었다.
“다시 임용을 준비할지 생각 중이에요. 나는 이 일을 하고 싶은데 못하는 상황이 됐잖아요. 서러워서…. 서러워서 이 일을 하려면 임용시험을 준비할 수밖에 없구나 싶어요. 그렇게 되면 (정규직 교사가 되면) 말을 좀 하고 싶어요. 제가 기간제니까 얘기 안 한 것들, 그런 걸 좀 얘기하고 싶어요.”
르포작가 은유는 <해방의 밤>에서 “예나 지금이나 정규직이 하던 일을 하면서 절반도 안 되는 첫 월급을 받는 동료가 있음을 알고, 이 부당함에 눈 감지 않고 계속 떠들고 이야기하며, 또 타인의 노동으로 자신의 일상이 굴러가고 있음을 상식으로 인지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사회 분위기는 조금씩 느리게라도 변하리라 생각”한다고 썼다.
신통은 언젠가 정규 교사가 되더라도 이 문제에 대해 함께 ‘떠들고 이야기’하고 싶다. 신통의 말처럼 “말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으니까.”
실직으로 인한 실망도, 좌절도 잠시뿐이다. 신통은 다시 학교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지난 주말에는 동료 교사들과 핀란드 교육과정이 담긴 참고도서를 읽고 연구하는 모임을 가졌다. 정규 교사이든, 기간제 교사이든 ‘교사’인 자신 또한 학생들과 함께 변화하고 성장하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발길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