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내가 태어나 본 사람들 중에서 제일 억센 사람이다. 어딜 가도 바다가 보이는 영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바닷가 출신의 엄마는, 그 어떤 고난에도 휠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강인함을 늘 가슴에 품고 사셨다. 그런 엄마의 강인함은 마치 바다의 거친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삶의 고통을 품고도 흔들리지 않으셨다.
엄마는 태어나서 어미젖 한 번 제대로 물어보지 못하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의 미움의 화살은 늘 엄마를 향했다고 하셨다. 지 어미를 잡아먹고 태어났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할아버지는 자신의 하나뿐인 딸에게 애정을 주지 않으셨다고 했다. 엄마는 내게 "제 아무리 노력해도 사랑을 주지 않으니 차라리 집을 지키는 백구가 자식이 아닐까 싶었다"라고 우스갯소리로 넘어가셨지만, 그 순간 엄마의 눈에 일렁임이 잠시나마 스쳤다는 걸 나는 뚜렷이 기억한다.
어린 시절부터 차가운 시선 속에서 살아야 했던 우리 엄마. 하지만 그 미움 속에서도 엄마는 어엿한 어른이 되셨다. 단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고, 그 차가운 시선 속에서 더욱 단단하게, 강한 사람이 되어갔던 우리 엄마. 그렇게 생명력이 마치 길가에 잡초처럼 질기고 질기던 나의 엄마는 어디서든 버티고, 어디서든 살아남았다. 내 친부의 도박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그로 인해 친부가 우릴 단칸방에 남겨두고 혼자 야반도주를 했을 때에도, 엄마는 울지 않으셨다. 적어도 자라면서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내 앞에서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으셨으니, 다른 의미로 내게 엄마는 참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사람이었다. 철없을 적 나는 그렇게 정의했던 것 같다.
나의 친부가 집을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한 손으로는 나의 고사리 같은 손을 꼭 잡으셨고, 반대 손으로는 볼품없고 작은 보자기를 아주 소중한 보물인 것처럼 다루셨다. 그리고 우리는 작은 동네버스에 몸을 실어 쪽잠을 자며 엄마의 유일한 가족, 나의 외할아버지 집을 향해 길을 떠났다.
외할아버지가 살고 계신 동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참으로도 길고 고된 여정을 마친 우리는 어느새 세월이 지나 노후해 보이는 지붕을 보았고, 그 집에 다다르자 나의 엄마는 무엇이 그리도 걱정되었는지, 그 집 파란 대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시곤 내게 단호한 말투로 말을 꺼냈다.
"이제부터 절대 울거나 칭얼대지 말아야 해."
그 말에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잠시 주저했지만, 엄마의 눈빛과 목소리가 나를 압도해 버렸기에 나는 한시도 반박할 여지가 없이 그저 엄마의 말에 응하듯 고개만 끄덕여댔다.
"엄마는 괜찮아. 그니까 미경이, 너도 괜찮을 거야."
엄마는 내 눈가에 나도 모르게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자신의 해진 소매로 훔치듯 닦아주셨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안심시키셨다. 그렇게 우리는 외할아버지댁의 대문에 들어섰다. 찰나였다, 색 바랬지만 파랗디 파란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간 엄마는 좀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좀 전에 살짝 피로해 보이는 눈은 온 데 간 데 없었고, 오히려 엄마의 눈빛은 마치 아무 일도 우리 가족에게 일어나지 않았던 사람처럼 보였다.
외할아버지와의 첫 만남은 사실 그리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와 엄마를 보시자마자 한숨을 푹 쉬고는 "들어오너라" 이 한마디만 하시곤 주방으로 가셔서 술이 담긴 듯 보이는 빛바랜 노란 주전자를 꺼내오셨기 때문일까? 아니면 엄마가 조용히 나를 이끌고 외할아버지에게 다가갔음에도, 그 순간에는 침묵과 차갑고 쓸쓸한 기운만 맴돌았기 때문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어린 나에게도 스쳐갔다. 그때의 기분을 뭐라고 단정 지어 설명하기는 지금도 어렵다. 그저 그때의 난 어색한 정적 속에서 나도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을 뿐.
내 기억 속, 엄마와 외할아버지 사이에는 항상 불편한 기운이 감돌았다. 처음 내가 외할아버지를 마주한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할아버지는 술을 따르며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리셨고, 엄마는 그런 할아버지를 향해 인사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갔다. 그 표정엔 아무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고, 그저 묵묵히 자리를 잡은 엄마의 모습이 나를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외할아버지는 여전히 우리 쪽을 보지도 않으셨고,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우리가 이 집에 잘 찾아온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아무리 혈육이라 해도, 나는 외할아버지에게 그저 지나가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내가 남처럼 느껴지는 게 더욱 뼈아프게 다가왔다. 그렇게 그 어색한 침묵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작은 존재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해가 지고 밤이 되자, 엄마는 작은 쪽방에 이불을 깔고 나를 눕혔다. 나는 그 자리에 누워, 방문 틈 사이로 외할아버지가 혼자 마루로 나와 앉아, 그 큰 주전자가 텅텅 비어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계셨던 모습을 보았다. 엄마는 "이제 괜찮을 거야"라며 나를 토닥였고, 그 손길에 이끌려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마도 내가 잠자는 사이 엄마는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깨어나서 본 엄마의 얼굴에 그늘이 지지 않았을 테니까.
찰나이지만 엄마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궁금했다, 어떻게 이리도 외할아버지의 차가운 반응과 단절된 관계 속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엄마가 얼마나 외롭고 슬픈 밤을 홀로 보냈을지. 그래서 성격만 좋았던 내 친부와 사랑에 빠졌던 걸까? 그저 따뜻하고 다정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열렸던 걸까. 엄마는 그동안 너무 많은 외로움과 고립 속에서 살아왔기에, 친부의 작은 친절에 마음이 이끌렸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능력이 없고, 부족한 사람이었더라도, 친부는 엄마에게 따뜻함을 주었던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 작은 위로와 온기 속에서 엄마는 자신을 잠시나마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의 친부가 떠났을 때, 그가 엄마를 버리고 유일한 피붙이마저 두고 도망쳤을 때, 엄마는 어떻게 그 고통을 견뎌냈을까. 그 무너진 세상 속에서,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나를 지켜내려고 했을까.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한다. 엄마가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엄마는 봉래시장에서 조그맣게 생선 장사를 시작했다. 시장에는 언제나 바다의 냄새가 가득했고, 그곳에서 엄마는 다른 아줌마들과 함께 하루 종일 생선을 손질하며 바쁘게 일하셨다. 어린 시절부터 돈벌이를 위해 생선 손질을 배운 덕분인지, 엄마의 칼질은 빠르고 능숙했다. 그 손놀림은 어떤 생선 파는 가게의 아저씨나 아줌마들보다 더 빠르고 정확했으며, 매일같이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비릿한 냄새 속에서도, 엄마는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묵묵히 일을 이어나가셨다.
나의 기억 속 그 시절에 엄마는 손끝마다 비릿한 냄새가 묻어 있었다. 어릴 적, 나는 그 비릿하고 짠 냄새를 따라가며 엄마의 곁에서 뛰어노는 것을 참 좋아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짠 냄새는 나에게 엄마와 함께하는 하루의 일부분처럼 느껴졌고, 처음에는 역하게 느껴져 구역질이 날 것만 같던 그 냄새도 자연스럽게 익숙해져 갔다. 생선가게 냄새는 그땐 엄마의 일상, 그리고 나의 일상과도 같았다. 그 냄새 속에서 나는 엄마와 함께 숨 쉬고, 살아가는 듯했다.
엄마는 날마다 차가운 바다에서 실려온 푸른 고등어, 붉은 조개, 뾰족한 성게를 날카로운 칼끝으로 썰고 비트셨다. 그 손끝의 칼날 속에서 생선의 살이 저며지며 흘러나오는 비린내는 한편으로 엄마의 고단한 노동의 흔적이 되어 남았다. 그렇기에 엄마의 손목에는 늘 파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엄마에게는 유독 코를 톡 쏘는 시원하고 얼얼한 냄새가 난다.
돌이켜보면 엄마의 하루는 항상 바빴다. 잠시도 쉬지 않고 생선을 손질하고, 손님을 맞고, 다시 청소하고, 또 손질하고. 그럼에도, 시장의 소음 속에서 엄마는 언제나 똑같이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일을 해 나가셨다. 날씨가 짓궂어 장사하기 힘든 날에도, 생선의 비릿한 냄새와 찬바람이 코를 스쳐 지나가도, 엄마는 그 속에서 단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으셨다. 그저 늘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해내셨을 뿐.
우리 엄마는 그렇게 내게 단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었다. 아무리 고단한 하루를 보냈더라도, 집에 돌아와서는 늘 내게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그 미소 뒤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눈물과 아픔이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모든 걸 덮어두고, 내게 걱정 없이 웃으려는 엄마의 노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는 말을 엄마는 참 싫어하셨다. 엄마는 늘 내게 뭐가 그리도 미안한 건지, 나에게 자신이 겪었던 고난이나 아픔을 물려주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인가 엄마는 항상 내게 한 가지 말을 반복하셨다.
“너는 힘들어도 절대 무너지지 마라.”
아마 엄마는 자신이 겪어온 어려움과 아픔을 내가 겪지 않기를 바랐겠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풍파를 겪더라도 내가 힘든 순간에 절대 포기하거나 무너지지 않기를, 언제나 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던 것 같다. 엄마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미움을 받았고, 결혼 후에도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혼자 힘겹게 길을 걸어왔다. 아빠의 도박, 가정의 불화,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엄마는 결코 굴하지 않고 버텼다. 엄마는 나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절대 무너지지 않았다. 어떤 삶의 시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이겨냈다. 그렇다, 나의 엄마는 정말 억세고 강인한 여자였다.
엄마는 내게 그저 말뿐만 아니라, 그 말이 어떻게 삶의 방식으로 실천되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셨다. 매일 반복되는 힘든 일상 속에서도 결코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엄마.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다짐했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게 할지라도, 나도 엄마처럼 꿋꿋하게 살아가리라. 그것이 엄마의 사랑을 받아온 내가 해야 할 일이자, 엄마가 나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