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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이야기/휴일의 커피를 마시며

서울을 생각해 본다

by 하루하늘HaruHaneul

서울의 구석구석은 매일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다. 알던 곳은 추억 속으로 모르던 곳은 역사 속으로 그렇게 지워져 간다. 잉크블루 파란 하늘에 눈이 시리던 날 아침 다섯 가지 맛이 난다던 커피를 마셨다


땅콩, 헤이즐넛, 다크 초콜릿, 맛탕의 단맛


카페 대표 블랜딩 커피의 맛에 대한 설명이다. 정말 단맛이 나는 줄 알고 주문 시에 망설인건 나만 아는 비밀이다. (커피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라 생각하는 사람…) 강한 산미에 견주는 고소한 맛의 커피라 한다. 한참을 기다려 나온 커피.


내가 아는 커피맛 이외에 견과류와 초콜릿 그리고 생뚱맞은 맛탕의 맛을 찾느라 한참 오물거렸다. 많이 다르지 않다. 아니 커피를 잘 모르는 게 맞다. 향으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 요즘 카페는 커피와 함께 설명서(?)를 준다. 따라 읽기도 어려우니 이런 친절한 설명서는 한 번쯤 읽게 된다. 내가 뭘 시켰더라? 나를 의심하는 순간이다. 작고 세련된 카드의 뒷면에 커피에 대한 정확한 소개가 있다. '부드러운 견과류의 향미와 감귤의 산미가 느껴지며 식을수록 메이플 시럽을 연상시키는 단맛이....' 식기 전에 마신 탓이라 생각해 본다.


현대적인 빌딩을 뒤로하고 모두 사라질 예정인 세월 가득한 낡은 건물들 사이 작은 언덕 위에 커피숍이 있다. 고장 난 커피 분쇄기의 덜컹거림을 견디며 하늘을 보고 초록이 드문 거리에 조악한 플라스틱 화분의 계절에 지친 식물을 본다.

온라인 주문으로 배달하는 업체가 다녀가기를 몇 번… 아침 산책을 하는 커다란 흰둥이와 투명한 창 너머로 눈빛을 교환한다. 너무 잘 닦인 창문을 몇 번이나 위아래로 훑어봤다. 투명한 창과 투명한 하늘이 마주한 곳에서 휴일의 커피를 마신다.


스러져가는 골목길에 젊음이 둥지를 틀고 기운을 불어넣는다. 사느라 세월의 흐름조차 잊은 채로 그곳을 지켜온 노인들의 공허한 눈빛과 그 사이 살아야겠다고 열심히 퍼덕이는 다음 세대가 있다.


서울은 매일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다. 때로는 통째로 갈아엎어 기약 없던 골목길들이 한꺼번에 사라지기도 한다. 추억이 묻어있는 곳이 흐린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은행나무 길을 따라가다 만나던 고요했던 붉은 벽돌 도서관 앞마당은 차가 가득하다. 검정교복에 무거운 가방을 들고 드나들던 곳 옆으로 빌딩이 들어서고 내가 기억하던 하늘을 반납하고 나는 점점 더 땅에 가까워졌다.


도시가 진화하며 얼굴을 바꾼다. 성장 중이다. 플라타너스 잎을 머리에 맞으며 깔깔거리던 모교의 등굣길도 학교이름이 되어버린 지하철역과 상권들도 모두 세월을 느끼게 한다. 공원과 예쁜 조경이 부러웠던 다른 나라의 풍경이 어느새 곳곳에 들어와 가던 걸음을 쉬게 한다. 잊힌 추억만 그리운 건 아니다. 몰라보게 깔끔해진 도시가 주는 쾌적함도 기껍다. 그럼에도 옛 기억을 소환하는 걸 보니 나이가 든 모양이다. 눈에 띄게 많아진 다인종의 관광객들 그리고 그들이 두리번거리는 그 사이에 나도 있다. 나고 자라 살아온 곳도 모습이 변하면 낯설기는 매일반이다.


기억 속의 서울은 매일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추억이 남아 희미한 기억이 되고 나는 이곳의 이방인이 된다.




https://youtu.be/hPPS0_rqwcw?si=01C4BYh2jYbQF3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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