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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생선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아이

파트리크 쥐스킨트-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by 하루하늘HaruHaneul


냄새가 좋으면 향기가 된다. 기분 좋은 바람이 실어오는 풀 내음, 비 온 뒤 공기를 가르는 흙내음, 골목길을 메우는 꽃 향기, 덜 깬 하루를 눈뜨게 하는 커피의 유혹... 냄새에 반응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조금 서늘하고 많이 긴장되는 그런 이야기다.


18세기 생성과 소멸 사이 지옥으로 표현되는 악취의 대도시 파리. 수백만의 영혼이 묻혔던 이노생 묘지가 무너지고 세워진 시장. 7월 17일 숨 막히는 더위 가장 악취가 심한 생선좌판 뒤에서 원치 않는 아기가 태어났다. 20대 중반 생선을 파는 미모의 여인이 생선을 다듬던 칼로 탯줄을 자르고 생선 내장과 머리 사이에 버린 아기. 울어서 존재를 알리고 쓰레기 더미 속에서 구출된 생명. 반복된 영아살해로 참수된 어머니를 둔 어린 영혼의 이야기…. 시작부터 상상을 초월한다.


마땅히 받아야 할 무조건적인 사랑의 부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쁜 피를 가진 운명이었을까? 스스로의 선택이었을까? 천재적인 후각을 가진 아기가 성장하며 이루는 것과 원하는 것을 위한 여정에 광기가 함께 한다.


주인공 그루누이의 믿기 어려운 생이 보여주는 향수에 대한 이야기. 향수의 제작과정과 전문적인 이야기가 받쳐주는 이 허구는 읽는 동안 실제인물일까 하는 상상이 들정도로 몰입감이 높다. 가끔은 안타깝고 때론 섬뜩하며 종종 믿기 힘든 그의 행보를 아주 치밀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놀라운 필력과 이야기에 온몸의 감각이 자주 반응했다.


욕정의 배설물로 태어난 그루누이, 시장통에서 태어나 생선의 내장과 함께 버려진다. 그루누이의 엄마는 영아유기죄로 감옥에 가게 되지만 그것으로 이 아이의 운명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무조건적이고 무한한 사랑이 필요했던 아이가 '버려짐'이라는 첫 과정을 통해 살아내는 방법이 연민과 공포를 동시에 자아낸다

사랑을 받진 못했지만 생명을 선택하고 끊임없이 모진 겨울을 견뎌내는 아이. 작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그는 애당초 괴물로 태어났다. 그가 생명을 선택한 것은 오로지 반항심과 사악함 때문이었다.”



아무런 체취가 없이 태어나 존재감이 없는 아이. 그럼에도 ‘게걸스러운 먹성과 머리 꼭대기에 찬바람이 이는 아이. 두렵거나 무섭지 않은데 존재가 불편한 진드기 같은 아이.’ 작가의 묘사를 따라 상상해 본다.


악취가 불쾌하거나 특별히 싫은 냄새는 있지만 무취가 기괴스럽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이 책을 읽으며 '무취'와 '향기'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된다. 조제된 인공향과 살아있는 것들이 가진 자연향에 대해서도.


가장 지독하고 더러운 냄새 속에서 태어나 세상의 모든 존재를 냄새로 분별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만들어내는 조향사가 된 그루누이. 말보다는 냄새로 사물을 인식하고 단어로 세상을 배우며 존재감 없음이 정체성인 한 인간이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되는 과정이 너무도 섬뜩해서 작가의 상상력이 기괴스럽기까지 하다.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랑할 줄도 모르는 괴물이 돼버린 걸까 아니면 작가의 말대로 반항심과 사악함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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