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을 고르는 시간, 아침의 분주함이 가시면 창 밖을 내다보는 습관이 있다. 그저 멍하니 바라보다 마주하는 풍경들이 시계의 시침과 분침처럼 반복된다. 대개는 날이 좋아야 가능한 이야기다. 며칠 정신없이 불던 바람이 가고 나니 더운 공기가 느껴진다. 이 날씨가 정상일 텐데 그동안 너무 서늘해서 감기까지 걸린 터다.
살랑이는 바람에 여린 잎들이 하늘거리고 그 사이 산책로로 이따금씩 사람들이 지나간다. 강아지와 함께, 유모차와 함께, 홀로 산책 중인 사람도 아이와 늦은 등원 중인 엄마도 보인다. 그렇게 오가는 길 옆엔 놀이터가 있다. 가짜 통나무에 가짜 잎이 무성하게 달린 나무에서 연결된 미끄럼틀과 두 개의 시소 그리고 두 개의 어린이용 스프링 말이 있는 곳이다.
여름엔 물놀이장이 되는 곳, 그래서 둥글고 빨간 버섯처럼 생긴 곳에서 물이 시원하게 쏟아지기도 하고 가짜 통나무 집 위 물바가지가 시원하게 쏟아지기도 하는 곳. 물놀이를 할 때쯤이면 이미 너무 더운 여름이라 창문을 닫은 채로 구경하게 되는 곳이다. 아직은 물놀이가 이른 초여름이고 늦은 봄이니 고요하기 그지없다. 점심때가 가까워 오면 근처 어린이집 어린이들이 다녀가지만 잠깐이다.
이제는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간 듯 고요한 아침, 여덟 시가 좀 넘으면 나도 모르게 창 밖을 기웃거리게 된다. 진돗개와 시바견의 중간쯤일까? 견종은 잘 모르겠고 우직해 보이는 그 녀석이 나타날 시간이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더디오던 어느 날 문득 발견한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빈 가지 사이를 가득메운 여린 잎들이 무성해져서 예전만큼 잘보이지 않는데도 왠지 그 방향으로 고개를 기웃거린다.
그 녀석과 그녀의 산책. 견주 옆에서 견주를 리드하듯 산책하다가 멀리서 어린이용 스프링 말이 눈앞에 보일 때쯤 걸음이 더뎌지며 견주를 바라본다. 말 한 번 견주의 얼굴 한 번, 무언의 사인이 오가고 둘이 조금 더 다가서더니 견주가 어린이용 말에 옆으로 앉는다. 마치 그곳이 산책코스의 쉬어가는 장소였다는 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그리고 둘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한참을 앉아있다가 다시 갈 길을 간다.
그녀와 그녀석을 처음 발견하던 날 찍어놓은 사진 @2025견주는 나이가 좀 있어 보인다. 그 녀석이 그녀를 산책시키는 건지 나이 든 그녀가 그 녀석을 산책시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반려견의 모습을 했지만 어쩐지 알 것 같은 그 녀석의 마음과 눈빛에 종종 뛰어 내려가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천천히 느리게 하지만 적당한 보폭으로 그녀와 함께하는 산책, 종종 주고받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서로의 관계, 돈독해 보이는 둘의 모습이 많이 인상적이었다. 사람에 치이고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차고 넘쳐 키오스크에 무인카페가 성황을 이루는 이 시간에 저런 깊은 교감을 나누는 살아있는 생물체라니.... 온기가 느껴진다. 온전한 신뢰가 전해진다. 가벼움이 민들레 홀씨처럼 공중을 뒤덮는 시간에 발견한 그녀와 그 녀석의 작은 순간이 전해주는 묵직한 느낌이 낯설고 반갑다.
https://youtu.be/an4ySOlsUMY?si=zUM7ev3FC9sENC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