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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노래 03

오후의 햇살

by 하루하늘HaruHaneul

오후가 시작됐다

지난 시간이 유혹한다

과거를 팔라고


하루가 꺾이는 시간 허한 마음이 곤두박질이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본다

낡은 건물에 빛의 레이스가 드리우고

플라타너스는 서서히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보도를 가로질러 길게 줄무늬가 생겨난다

거친 항해를 마친 선장의 커다란 등짝 같다

아직 감옥을 벗어나지 못한 무기수일지도 모른다


과거를 팔아야 해

영광과 고통을 드러내라고


멍하니 창밖을 응시한다

낡아빠져 금이 간 담벼락에 드리워진 오후의 햇살

고개를 늘이고 마음을 빼앗긴다

투명한 초록이 만들고 빛이 그려낸 반짝이는 레이스

한껏 움츠린 어깨가 내려간다


바보가 웃는다

햇살 가득한 오후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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