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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나자/앙드레 브르통

by 하루하늘HaruHaneul

전쟁이 지나간 자리, 남아있는 사람들은 겪어보지 못한 가치와 혼동이 가득 찬 전환기를 맞는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기욤 아폴리네에르는 미라보다리 아래로 흐르는 세느강과 사랑을 노래하고 세상을 떠났다. 시인이 남긴 ‘초현실’이라는 주제는 전쟁과 전쟁 사이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붕괴되는 사회 속에서 꿈과 환상을 갈망하게 된다. 벨 에포크 시대의 기억과 현실의 괴리를 동시에 느끼던 시간. 상실을 마주한 사람들이 구조적 모순에 맞서 마비된 이성을 통제하고 사물과 사건과 시간을 다르게 보는 방법을 통해 살아야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시기적절한 발버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아폴리네에르가 씨앗을 심고 앙드레 브루통이 열매를 맺으며 존재를 드러낸 초현실주의. 무조건적인 반항의 실험과 우연을 표현한 다다에서 꿈과 환상에 다다르는 초현실주의로 가는 길을 닦은 앙드레 브르통이 쓴 ‘나자’.


이 소설은 독자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다. 소설이지만 ‘나자’는 실존인물이고 소설의 구성을 따르지 않으며 글의 사이사이 사진이 존재하고 그녀의 드로잉이 함께 한다. 창작과 기록이 혼재한 다큐멘터리와 허구를 넘나드는 형식의 글이고 주인공 '나'의 시선에서 무의식이 우연에 의지해서 기술된다. 서로 상관없는 이미지를 이어 붙인 콜라주 같은 형식의 글. 초현실주의 회화 작품과 결을 같이 한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며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평론이 긴 독백으로 이어지고 실제 작가들의 구체적인 이름이 언급된다.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 전쟁 중 신경 정신과 병동에서 마주했던 환자들을 임상하며 깊이 느꼈던 시간을 통해 '나'로 존재하기 위한 노력과 인간에 대한 인식과 망각을 들여다본다.


‘직관적 인식의 수수께끼’, ‘무의식적인 것의 위대한 깨어남’을 토대로 본인이 경험한 에피소드가 이어지며 글이 전개되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받아 인간의 내면에 깊이 자리한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투영된다. 브루통은 사실에 기반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문화예술에 염증을 느끼고 사람들의 의식이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으로 깨어나기를 원했다.


통제, 관습, 사회의 규율이 둘러놓은 학습된 현실의 문을 열고 나가 만나게 되는 무의식의 세계. 완전한 고독 속에서 만나게 되는 ‘비현실적 공모의 존재’를 환상이라 부르며 아주 분명한 감각과 특별한 감정의 동요를 자동적으로 기술하는 방법으로 글을 써나간다. 전후관계의 설명이나 예상치 못한 전개에도 놀라지 말 것을 부탁하는 작가에게서 섬세함을 느낀다.


정해놓은 순서 없이 떠오르는 것을 떠오르게 내버려 두고 시간의 우연을 써 내려간 독특한 구성. 초현실주의 자동기술법에 의해 쓰인 최초의 책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뿐 아니라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우연의 흐름에 놓여 있는 범위 내에서 내가 갖고 있는 상식적인 생각과 어긋나는 삶이 나로 하여금 갑작스러운 연결과 망연자실하게 만드는 일치의 세계, 그 어떤 정신상태 자유로운 비상을 능가하는 반사적 행동과 피아노처럼 동시에 연주되는 화음의 세계, 아직 다른 빛 만큼 빠르지 않더라도 보여 주고 볼 수 있게 만드는 그와 같은 빛의 세계와 같은 금지된 세계 속으로 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그런 범위에서 이야기해 볼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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