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필요한 건 신발과 의지, 꾸준함 뿐
모든 스포츠를 막론하고, 스포츠 이외의 어떠한 활동에도 필요한 장비는 필수불가결한 사항이다. 밥을 먹기 위해서도 그릇과 수저가 필요하듯이, 잠을 자기 위해서도 침대와 이불, 베개가 필요하듯이, 모든 활동에는 그에 걸맞은 아이템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달리기 역시 예전에 맨발로 달렸던 아베베 - 에티오피아 마라톤 선수로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맨발로 달려 세계기록과 동시에 금메달을 획득했다. - 선수를 동경하지 않는 이상, 신발과 옷은 반드시 필요한 장비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는 달리기를 위해서 머나먼 쇼핑의 바다로 서핑을 떠나기 시작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러닝화라는 명칭으로 구분된 신발을 시작으로, 멋지지만 기능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는 러닝 패션과 각종 보호대, 햇볕을 막아줄 수 있는 고글을 비롯한 모자 제품 등, 그 세계에서 가장 평판이 좋고 디자인이 예쁜 제품을 찾아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하고, 발품을 팔아가며 재고가 있는 매장과 조금이라도 가격이 저렴한 곳을 찾아 쉼 없이 돌아다녀야 한다.
초급 러너를 위한 쿠션과 기능성을 추구한 쿠션화, 안정화를 비롯해서 트레이닝의 종류에 따라 트레이닝화, 맥스쿠션화, 데일리트레이닝화라는 카테고리도 정확하게 지을 수 없는 러닝화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마라톤 대회에 따라서도 10km 전용 신발을 비롯해서 풀코스에 적합한 카본화에 이르기까지 슈퍼트레이너, 경량화, 카본화 등의 이름으로 제품의 기능을 한층 뽐내는 신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누가 어떤 신발을 신었고 어떤 기록을 냈는지 확인하고, 그 결과 상위 탑클라스의 선수들이 신었던 신발은 순식간에 SNS와 유튜브를 타고 전국의 러너에게 퍼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신발이 출시되는 정보를 누가 먼저 앞다투어 선보일지 모든 리뷰 사이트와 커뮤니티 채널에서는 제품을 미리 착용해 보고 소개하느라 경쟁이 치열하고, 누가 가장 좋은 신발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빨리 신상품 정보를 업데이트하기 위해 블로거와 유튜버의 손과 발이, 그리고 말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러너의 마음을 사로잡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야말로 화려한 색상들로 가득한 의류와 액세서리가 넘쳐난다. 게다가 기능성을 조금이라도 가미하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어디에 초점을 두고 사야 할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의류는 마라톤 대회에서 참가선물로 주는 티셔츠와 저렴한 반바지 차림을 좋아해서 옷 구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이라고 하더라도, 가끔씩 보이는 멋지고 화려한 싱글렛이나 기능이 좋은 제품을 볼 때는 나도 모르게 지갑이 열리려고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하는 경우나 러닝크루에 가입이라도 한다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예뻐 보이고 멋있게 보이기 위해 화려하고 멋진 옷을 고르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나는 모자를 매우 좋아하는 편이라서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자는 식상하기도 하고 남들과는 다른 모자를 사고 싶어서 해외 직구로 구매한 적도 있었다. 세상은 넓지만 쇼핑은 그 넓은 세상을 나의 집 앞으로 며칠 내에 가져올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신발을 사러 일본, 미국 여행을 가는 사람도 주변에서 본 적이 있고 - 물론 순전히 그 이유만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 지인이 외국에 나간다고 하면 신발을 비롯해서 국내에서 판매되지 않는 유니크한 아이템을 구해달라고 부탁하기 일쑤이다. 물론 러닝이 다른 스포츠에 비해서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달리기만을 위한 목적에 충실한다면 러닝화 외에 크게 들어갈 비용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골프와 비교한다면 정말이지 너무나도 저렴하고 경제적인 스포츠일 것이다. 골프에 들어가는 장비와 의상, 게다가 레슨비를 생각한다면 러닝에 들어가는 비용은 어찌 보면 푼돈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러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러너뿐만이 아니라 인간은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을 항상 갈망하고 소비하기를 희망한다. 모든 소비는 항상 상한선이 없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처음엔 기본만 있으면 되겠지만 그다음엔 질을 추구하고, 그 이후에는 질과 양을 동시에 추구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업데이트 주기가 올 때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찬란하고 영롱한 상품은 더욱 우리의 눈을 반짝이게 만들고 지갑을 들썩이게 만든다. 더 잘 달리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는 어쭙잖은 논리 앞에서 우리는 소비로 인한 만족감과 경제를 쥐고 있는 지갑 사이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그 전쟁의 끝은 언제나 만족감이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앞세운 소비의 승리이다. 가격은 각자 다르지만 가성비, 만족감, 필수템, 잇템이라는 수많은 슬로건 아래 우리는 언제나 소비를 향해 달려간다.
항상 얘기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선수도 아니고 뛰어난 기록을 내고 싶을 정도로 열심히 달리기를 하지 않고 있다. 난 그저 즐거울 만큼, 재미있을 만큼, 달리고 싶은 초보 런린이의 수준이고 그 작은 즐거움에 비싼 장비는 사치라고 생각하고 있다. 예쁘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심리는 인간이라면 당연한 본능과 같은 것이다. 다만 그 대상이 외부인지, 내부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만 다를 뿐이다. 또한 더 좋은 기록을 남기고 싶거나 조금이라도 나에게 편한 아이템을 통해서 실력이 올라간다면 그 또한 얼마나 만족감을 제공할 것인가? 장비는 달리기를 잘하게 만들기도 하고, 러너의 기분을 좋게 하며, 자존감을 높여주고 그로 인해 더 나은 달리기로 이끌어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달리기를 근본적으로 지속하게 하고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건 외형으로 보이는 아이템보다 내면의 육체적인 준비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오래 달릴 수 있는 지구력, 다리가 풀리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는 근력, 그리고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심폐능력, 달리면서 마인드가 흔들리지 않도록 평안한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컨트롤까지...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게 없어 보인다. 이제 갓 6개월 차 초보 런린이로서 장비보다 먼저 준비해야 하는 건 나의 몸상태를 앞으로도 10년 이상 달릴 수 있게 만드는 육체와 정신의 준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고작 5km 남짓 달리는 것이라고 해도, 오래 유지하기 위해 내적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을 본다면 단지 돈으로 아이템을 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잘 먹어야 하니까 먹는 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몸에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음식은 어딘지 모르게 꺼려진다. 달리기라고 하는 운동은 체중의 3배 이상의 중량이 한쪽 다리에 실리는 고강도의 운동이다. 이를 버텨내기 위해서는, 그리고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서는 근력을 끊임없이 강화해야 스피드와 지구력을 올릴 수 있다.
단지 근력만 키운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오늘의 운동이 끝났다면 내일 다시 달리기 위해서는 오늘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마사지, 찜질, 스트레칭 등 관리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이런 게 필요 없다고 무작정 달리기에만 포커스를 맞춰 냅다 달리다가 며칠 만에 부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았고 들었던가!
메인이벤트인 달리기를 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일들은 물론 돈도 들지만 그보다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의지의 영역이다. 심지어 그 노력은 귀찮고, 힘들고, 번거롭고, 멋이 없기까지 하다. 잘 보이지도 않는 노력들이다. 하지만 인생도 마찬가지로 메인이벤트 하나를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재미없고 따분하고 하기 싫은 것들을 참으며 지금까지 달려왔던가? 그 보이지 않는 지금까지의 꾸준하고 반복적인 준비가 오늘의 나를, 그리고 당신을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고, 토대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오늘도 새벽같이 신발끈을 묶고 동네 한 바퀴를 달리고 있다. 나는 달리면서 유튜브 촬영도 해야 하니 손발이 따로 놀고 있고, 숨은 아직도 가쁘고, 케이던스는 조금만 방심하면 170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어쨌거나 달리기에 인생의 일부를 할애한 만큼 빠르게 달리기보다 더 오래 달리고 싶다. 그렇게 나는 외형보다 오래 달리는 준비를 새벽 달리기와 함께 준비하고 있다. 달리기에 필요한 게 너무도 많지만 스스로에게 가장 필요한 건 달리는 즐거움을 앞으로도 계속 느낄 수 있는 올바른 자세와 지구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달리기는 반드시 즐거워야 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