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불균형, 모든 것을 쏟아붓는 시기가 있다.

드라마 <꾸미는 사랑에는 이유가 있어>의 한 장면을 보고

by 하루의 생각




삶의 모든 요소가 항상 균형적일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이상적인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 지금 집중해야 하는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곤 한다.


쟁취하고 싶은 무언가가 분명히 찾아온 사람은 다른 것을 애써 돌보지 못한다. 삶의 완벽한 균형을 지키기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 전략적 불균형’을 선택하게 된다. 잠을 줄이거나, 끼니를 대충 때우거나, 취미 활동은커녕,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을 미루기도 한다.




모든 걸 내던지고 해야만 하는 시기

*줄거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 2021년 방영했던 일본 드라마 <꾸미는 사랑에는 이유가 있어>를 보았다. 제목만 봤을 때는 가벼운 로맨스 드라마라고 생각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제목의 '사랑'은 꿈과 삶에 대한 사랑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인물 간의 관계나 꿈을 좇는 과정 등 분석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오늘은 이 글을 쓰게 만들었던 드라마 후반부 중의 주인공이 너무나도 빛나보였던 한 장면만 다뤄보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다른 무엇도 재고 따지지 않고 한 가지 일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주인공 후지노는 한때 스페인 레스토랑에서 주목받던 셰프였다. 하지만 레스토랑 ‘호르텐 시아’에서 함께하던 부하 직원들이 그와 더 이상 일할 수 없다며 떠나버리고, 결국 자신에게 투자했던 사람과 사장, 연인 등의 모든 기대를 저버린 채 레스토랑에서 도망쳐 나온다. 이후 푸드트럭을 몰며 생계를 이어가는 그는, 집에서 일기예보를 보며 내일 비가 온다면 출근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등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을 사는 듯 보인다. 레스토랑 같은 건 이제 필요 없다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하지만, 그 말은 좋아하는 일로부터 크게 상처를 받은 지독한 회피형 인간이 자신을 속이는 주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우연히 ‘호르텐 시아’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다시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결심한다. 며칠 만에 수많은 레시피를 외워내고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레스토랑에 머문다. 여자친구가 있는 셰어하우스로 가지 않고 주방에서 잠들고, 늦게 숙소에 돌아오더라도 말없이 옷만 챙겨 다시 돌아간다. 그의 모든 신경은 오로지 요리에 쏠려 있다. 그런 후지노를 지켜보던 연인 마시바는 서운함과 걱정을 느끼지만, 룸메이트 하루와 하야마 사장은 말한다. “무언가에 모든 것을 내던지고 해야만 하는 시기”가 있다고. 그 말에 마시바는 비로소 그를 이해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무언가에 몰두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모든 것을 쏟아붓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간절한 시기. 그때는 먹는 것도, 잠도, 연애도 균형을 이루기 어렵다. 하루는 짧고,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후지노는 아침까지 요리에 매달린 채 레시피를 완성해 갔다. 힘들면서도 행복했을 것이다. 불타는 의지, 솟구치는 도파민, 끓어오르는 열정이 그를 움직였다. 그런 그의 모습은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추가로 덧붙이자면, 후지노가 그렇게 다시 호르텐시아에 돌아와 본인의 책임을 다 하고자 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마시바 때문이었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과거의 아픔을 마주하게 되기까지, 그에게는 함께 해주고, '소중한 것을 놓아버리지 말라고' 말해준 마시바가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지금은 셰어하우스가 되어버린 집을 코코 씨와 함께 살던 전남편은 다시 돌아와 같이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과거 두 사람을 갈라놓았던 ‘게임’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퇴사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날마다 게임하던 그 시절이 정말 행복했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라고.


물론 자신을 고갈시키며 무리해서, 혹은 주변 사람에게 상처 주면서까지 열정을 쏟아붓는 것이 최선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그런 시기가 왔다면, 일상의 모든 것을 늘 균형 있게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조금 떨쳐보자.




내가 잘 못하는 것, 선택과 집중


돌이켜보면, 고등학생 때 내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모든 삶의 요소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환경 덕분이었다. 말 그대로 ‘공부만 할 수 있는 환경’이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독립한 지금은 다르다.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보험료와 월세는 잘 나갔는지, 빨래가 밀리진 않았는지, 집안일과 생활비, 인간관계까지 챙겨야 할 것이 많다. 하루는 수많은 크고 작은 선택의 연속이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 할 일, 입을 옷, 만날 사람을 고른다.


고등학생 때는 이런 사소한 선택을 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지금처럼 내 삶을 내가 선택한다는 점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만큼 에너지가 분산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성공한 창업자나 유명한 작가들은 이런 사소한 결정에 에너지를 쓰지 않기 위해 매일 같은 옷을 입거나, 루틴을 철저히 정해 시간을 분 단위로 쓰며 동일한 음식과 환경을 유지한다. ‘선택과 집중’. 정말 중요한 것에만 에너지를 쓰기 위함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모든 걸 다 잘하고 싶어 했다. 체육 과목 같은 신체적 한계를 제외하면, 모든 과목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싶었고, 그 태도는 지금까지 이어져 항상 내 삶이 균형 잡히길 바란다. 그래서인지 챙겨야 할 것이 많아졌다. 균형적인 상태에 욕심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언제나 완벽하게 균형 잡힌 상태일 수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조금씩은 불균형하다. 이제는 그러한 균형 강박에서 조금 벗어나, 후지노처럼 반짝 빛나는 눈으로 한 가지에 몰두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