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를 마친 것 같다

2025.09.01.

by 하사이 츠쿠루

신발 끈을 단단히 매고, 산의 초입에 들어선다.

내게는 꽤나 높은 산.

내게는 셰르파가 함께 한다. 가장 먼저는 하나님. 하나님은 나의 길을 안내해 주실 것이며, 힘을 더하여 주실 것이다. 그리고 나의 곁에서 한결같으신 든든한 부모님, 재즈 화성학 책 4권과 분석집, 7개월간 배운 재즈피아노 수업 자료, 언어 공부 책, 공부한 것을 인증하는 단톡방,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 그들이 나의 셰르파가 되어서 나와 함께 해줄 것이다.


산의 높이에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올라야만 하는 산이다. 더 이상, 뒤돌아 갈 곳은 없다.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다. 이제는 정말, 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내가 하나님 얘기를 꺼내기 어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로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으로 하나님께 누를 끼칠까 함이고,

둘은 아직 어리숙한 내가 하나님을 잘못 전해서 사람들이 오해하면 어떡할까 하는 그것이고,

셋은 다른 종교나 무신론을 가진 분들이 불편하진 않으실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이야기에서 하나님 이야기는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또한 이곳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허용되는 곳인 것 같아서, 나의 이야기와 나의 삶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이야기를 적으며 기록해 본다.

성경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당연히 내가 아직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저 내가 아는 것을 거짓 없이 진실되게 적기를 바라며 적어본다.

참고로 내 인생의 모토 또한 '정직'이다.

긴 글이 될 것이기에, 힘을 주시길 기도하며 노트에 적은 글을 노트북으로 옮겨 적으며 살을 붙여간다.



엄마는 내가 100일 무렵에 피아노를 사셨다고 한다. 내가 만 4살 때부터 엄마가 피아노 학원에 날 보내셔서, 나는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학교의 합창단에 있었고, 중학생 때는 교회의 성가대, 고등학생 때와 청년이 되어서는 찬양팀에서 싱어 혹은 건반을 맡았다.



2008.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방송부 아나운서를 지원했다. 1학년 때는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방송실에 가서 선배들에게 교육을 받았고, 2학년 때는 점심 방송을 하고 알림 방송을 하며, 후배들에게 배운 것들을 가르쳐주었다. 표준어로 뉴스, 라디오 방송, 알림 방송을 읽고 말하는 것을 배우고 연습했다. 2학년 때는 작가 담당 동기가 한 명이어서, 함께 아나운서를 했던 친구와도 번갈아가며 점심 방송 멘트를 썼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멘트를 써야 했는데, 밤에 3-4시간 정도 컴퓨터로 글을 찾으며 썼던 기억이 난다. 복사 붙여 넣기와 조사 편집도 많이 했다. 그때는 글을 쓰고 늦게 자는 것이 힘들었는데, 그때의 경험은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을 것 같다. 공부는 뒷전이었고, 어려웠다. 성적은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과목이 있다면 한국지리, 한국사, 화학 수업을 좋아하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였는데, 하루는 엄마가 새벽기도를 갔다 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나야, 하나님이 너보고 두려워하지 말래." 엄마가 이렇게 하나님이 나에게 전해달라고 하셨다고 한적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아 그래요? 하고 나는 그 말이 좋았다. 나는 겁이 많아서 간접등도 켜고 자야 했고, 엘리베이터도 꽤 무서워하고 벌레도 무서워했다. 그런 후 방에 들어가서 성경 묵상책(큐티책)으로 그날의 말씀을 묵상했다. 그날의 말씀은 여호수아 1장 1-9절 말씀이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9



나는 놀랐다. 정말, 정말 나에게 하신 말씀이구나! 엄마에게 가서 기뻐하며 전해드렸다. 지금까지도, 아니 생이 다 하는 날까지 이 말씀은 나에게 가장 와닿는 인생의 말씀 중 하나가 될 것이고, 나의 삶에 역사하시는 말씀이 될 것이다.



2010.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서 고3, 꽤 늦은 시기에 연기학원을 5개월 정도 다녔다. 학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고 들어갔다. 근처의 모르는 교회에서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학원에서는 보컬 수업도 배웠는데, 나는 배우가 아닌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진로 방향을 그쪽으로 정하게 되었다. 특강으로 오신 선생님께서 이렇게 단기간에 서울 말이 이렇게 늘었냐며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는데, 고등학교에서 2년 동안 연습했던 것은 말하지 않았다.



2011.

성인이 된 해,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크게 느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너무나 외로웠고, 외로움의 감정은 정말 힘들었다. 당장 대학을 가고 싶지 않았기에 아르바이트를 했고, 엄마 지인이 추천해 주신 대학 한 곳에 지원해 이듬해에 합격했다.


3월 5일 토요일

다음날은 교회에서 찬양 연합 오후예배가 있는 날이었다. 나도 참여했었다.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하나님 내일 주님께 예배드릴 때에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세요.

최선을 주님께 드리길 원합니다 아빠. 딸 한나입니다. 기억해 주세요.'


3월 6일 일요일

교회 입구에서 예배 안내를 하시던 장로님이 인사를 하시곤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나! I remember your name!"

평소였다면 아, 장로님이 내 이름을 알고 계시구나! 하고 넘어갔겠지만, 전날에 일기장에 하나님께 나를 기억해 달라고 적었던 것이 떠올라,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기억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벅찼다.



2012 ㅡ 2013.

컴퓨터 미디 작곡 전공으로 대학을 다니고 졸업했다. 가장 재밌었던 과목은 재즈 화성학, 음악 통론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학교 연습실에 들러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곤 했다. 어떤 팀에 속해있을 때에도, 연기학원에서도, 대학에서도 나는 사람들 속에 잘 속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 속에서 외로웠다. 그렇지만 '음악'과 '찬양'이라는 목적이 있었기에, 외로웠지만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 생각하며 버텼다.


아주 멀리 떠나고 싶었다. 처음엔 대구로 갈까 했다. 전공 교수님 두 분이 대구에 계셔서, 막연히 친근감이 들었던 것 같다. 엄마는 서울에 가면 예쁜 말씨도 배우니 좋겠다고 하시며, 서울에 가면 라섹 수술을 시켜준다고 하셨다. 그때 나의 눈 시력은 0.1보다 낮았는데, 2014년 생일날, 라섹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되었고, 시력도 좋아졌는데, 지금도 양쪽 눈 시력이 1.2 정도는 된다. 멀리 있는 나무와 산을 바라보고, 간판을 읽고, 휴대폰을 멀리 보려 하고, 건조할 때면 인공 눈물을 눈에 넣어줬던 것이 시력을 보호하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그렇게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2013년인지 2014년인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엄마가 교회 모임에서 야유회를 가셨다. 그때 경품 추첨도 했는데, 엄마가 2등을 하셔서 상품권을 받으셨다. 그리고 내가 1등에 당첨이 되었다. 추첨 번호는 10번이었다. 엄마 모임에 내가 따라간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선물을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나님께 관심을 받은 것만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좋았고, 감사했다.



2014.

친오빠와 함께 살며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면, 그때 다니던 집 근처의 교회 기도실에 들러 기도를 하곤 했다. 빵집에서 친해진 언니와 퇴근 후에 근처에 있던 대형서점에 가기도 하고, 지하상가에서 옷 구경을 하기도 했는데, 언니가 있어서 좋았다. 지금까지도 언니와는 친하게 지내며 연락을 하곤 한다.

7월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퇴근길에 길을 걸으며 노래를 불렀다. 어느새, 또 음악이 하고 싶어졌다. 빵집과 집을 오가며 타던 지하철 역 사이의 또 다른 역에는 대학 한 곳이 있었는데, 기독교 대학이기도 했다. 입시 전에 방문을 했는데, 나는 그때 신학과에도 관심이 있어서 신학 대학원 건물을 보러 간 것이었다. 이건 조금 독특한 이야기인데, 학교를 향해 가는 보도블록 길에서 나비도 그 방향으로 날아갔다. 신학과 건물은 횡단보도를 건너 대각선으로 있었고, 음악대학 건물은 직선으로 있었다. 나비는 넓은 차도를 지나 신학과 건물 쪽으로 날아가려다가 차도 중간에서 서성이다가, 다시 돌아와 음악 대학 건물 쪽으로 날아갔다. 나비가 그렇게 빨리 날아가지 않아서, 나는 나비를 따라갔고, 나비는 음악대학 건물 입구 쪽으로 날아갔다. 나는 입구 앞에 멈춰, 음악대학 입구를 올려다봤다. 어쩌면, 신학과가 아니라, 음악과가 하나님의 뜻인 걸까?


이 학교에 지원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집과 가까운 실용음악 학원에 등록해서 보컬을 배웠다. 대학을 지원했고, 실기 시험을 치러 갔다. 실기 시험 대기 번호가 칠판에 적혀있었는데, 내 이름은 [ 10 염한나 ]라고 적혀있었다. 10번이라는 숫자를 보고 꽤 놀랐다. 아, 어쩌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학교이고, 합격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2015 ㅡ 2016.

싱어송라이터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전공 실기 과목으로 담당 교수님과 1:1로 수업을 하는 과목이 있었다. 교수님은 레슨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는데, 그 레슨실의 번호는 10번이었다. 다시 한번, 이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느꼈다. 그 후로 나는 숫자 중 10번을 가장 좋아한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수업은 재즈 화성학, 리듬&스타일 연구, 재즈보이싱 연구, 즉흥연주기법 수업이었다. 특히 백반종 교수님의 재즈 화성학 수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라고 나에게 사인을 보내 주신 것일까? 나는 하나님이 내가 이 학교에서 음악을 배울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실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내가 할 일이 있고, 계획이 있으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딘가에서 울고 있을 누군가, 음악을 알고 싶지만 배울 길이 없어 막막한 누군가.. 이 부족한 나라도 보내고자 하시는 그곳에 나를 보내시기 위해서.



2019. 4월

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대학교를 다닐 때부터 만났던 사람이 있었는데, 졸업 후 그 사람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잊을만하면 불행들이 찾아왔다. 나는 혼자서 기도를 하다가, 정신에 이상이 찾아왔다. 비교적 최근에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께 이 얘기를 말한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그것이 '스트레스성 조증' 증상 같다고 하셨다. 그 증상은 내 기억으로 2주 정도 나타났던 것 같다. 그것으로 인해서 그 사람과는 거리를 두었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후 헤어졌다.


내게 큰 위로가 되었던 하나의 생각이 있다.

"그저 길의 행인일 뿐이야. 이젠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야."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관계를 단절한 후에도 생각나던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생각했다.

그랬더니 내 마음이 좀 편해지게 해 줬던 말이다.



스트레스성 조증이 내게 남긴 의미.

교만하지 말며, 돌다리를 두들겨 보며, 침착할 것. 한 걸음 물러날 것. 성경을 올바르게 알 것.

사실 이 이야기는 말하기가 조심스럽고 꺼려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의미 있는 일이었기에 적어본다.

나는 내 안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생각들을 마치 하나님의 뜻인 양 믿게 됐다. 다시 생각해도 그때는 정말 아찔한 상황이었는데, 그 생각은 이단이 할 법한 생각들이었다. 나 스스로도 참 많이 충격을 받았다. 나 스스로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게 되었고, 여러 검사와 진료 후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그 이후로 한동안은 혼자 있을 수 없어서, 엄마가 외출하시면, 집 앞에 나가 엄마가 돌아오시길 기다리기도 했고, 이상한 생각이 또 떠오르면, 예수님.. 도와주세요.. 라며 간절히 되뇌며 그 생각들을 몰아냈다.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라는 찬양을 틀어두고, 눈물로 잠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보고 읽는 것이었다. 그렇게 힘겨운 시간을 보내며, 몇 달 만에 나는 서서히 회복되어 갔다.



3년만 미친 듯이 놀게요.

하나님, 저 3년만 미친 듯이 놀게요.라고 기도를 드렸다. 견디기 힘든 아픔을 이겨내 보려 내가 선택한 것은 그냥 노는 것이었다. 7월 즈음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단기 선교를 갔다가 돌아와서 나에게 선교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친구의 선교단에 따라가서 매주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여름이나 겨울 캠프에 참석하기도 했다. 괜찮은 곳인지 알고 싶어, 그 시기 내게 조언을 많이 해주신 목사님께 여쭤보기도 하고, 팸플릿의 자문 목사님들을 살펴보았는데, 괜찮은 곳이어서 가게 되었다. 나는 선교를 하겠다고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나는 피어싱을 한꺼번에 4개를 뚫기도 하고, 머리도 분홍색, 파란색, 보라색 염색을 하기도 했다. 유튜브, 드라마, 영화 등등 보고 싶은 건 닥치는 대로 보며 해가 뜨면 잠에 들기도 하고, 휴대폰 게임에 빠져서 얼마간 게임만 하기도 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여전히 외로움과 공허함, 우울증이 있었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의미를 찾아서 헤매었다. 방 셀프 리모델링도 했다. 거의 혼자서 벽의 벽지를 다 뜯어내고, 방수제와 프라이머와 화이트톤의 페인트를 바르고, 가구를 옮기며, 인테리어 제품들을 구매해서 방 분위기를 바꿔보기도 했다. 마음 한편에 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놓지 못했다. 피아노를 치고 작곡을 하기도 했다. 음악은 내가 하고 싶은 유일한 것이었다. 내 음악을 하고 싶었고, 내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2022. 4월

3년이 지났을 때, 나는 정말 선교지에 있었다. 페루의 뜨루히요라는 지역에 6개월간 단기 선교를 갔다. 내가 다니던 교회를 통해서 갔는데, 안식년으로 한국에 오신 선교사님 부부가 엄마의 미용실을 방문하셨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나를 선교지로 초청하셨다. 한국을 떠나기 1주일 전에 아빠가 코로나에 걸리셨고, 나는 고맙게도 집을 내어 준 친구와 일주일간 함께 지냈다. 가기 전에 나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제가 그곳에 가게 해 주시고, 제가 그곳에 해가 되거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제가 그곳에 못 가게 해 주세요 라는 기도를 많이 드렸는데, 지나 보니 나는 페루에 있었다.

그곳에서 내가 한 것은 예배 찬양 건반을 치기도 했고, 건반 치는 청년에게 건반을 가르쳐주고, 음악을 거의 배운 적 없는 아이들에게 도레미파솔라시도부터 피아노를 가르쳐 주는 것이 나의 주된 일이었다. 페루로 가기 전에 기도편지를 정성 들여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기도요청을 했는데, 많은 분들이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셨다. 어떤 분은 나를 위해서 기도 할 때면 눈물이 많이 났다고 하시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페루의 아이들이다. 그곳의 아이들은 정말 사랑스러웠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이제 이 아이들을 볼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혼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적었는데, 최근 선교사님께서, 내가 딱 한 번 음악 이론을 알려준 똑똑한 한 청년은 혼자서 영상을 보며 더 공부를 해서 예배 반주를 맡아서 하기도 하고, 그때 피아노를 가르쳐 준 아이들이 선교사님께 배워서 플루트를 불며 찬양을 하고 있고, 또 한 아이는 학교 음악단에서 북을 치기도 한다는 소식을 전해주셨을 때는 정말 마음이 기뻤다. 선교지는 나에게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선교사님은 나에게 내년의 계획을 물어보셨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음원을 내고 싶어요.'



2023.

2023년의 목표는 단 하나, 음원내기였다. 학교 다닐 때 교수님과 음원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고, 나는, "30살에는 앨범 하나 정도는 있지 않을까요?"라고 대답을 했었다. 교수님은, 한 개 아니라 여러 개를 낼 수도 있지. 그러셨던 것 같다. 그런데 아직 내게는 앨범 하나 없었고, 만 서른이 되었다. 나는 교수님과 나눴던 말을 지키고 싶었다. 교수님과 얘기를 나눈 후 줄곧 그 말을 잊지 못하고 기억했다. 보컬 학원을 알아보고, 부산에 있는 보컬 학원을 오가며 수업을 들었다. 작곡을 하고, 사둔 장비로 집에서 노래를 녹음하고, 페루에서 선교사님을 통해 알게 된 분께 보컬을 다듬는 것과 믹싱 프로듀싱을 맡겨드렸다. 그렇게, 12월에 수어라는 예명으로 '너는 강하다 해요'라는 음원 하나를 겨우 겨우 발매했다. 이젠 다른 예명을 쓸 계획이지만, 수어의 뜻은 물속의 물고기라는 뜻이다. 어떤 언니가 듣더니, 물 만난 물고기네!라고 얘기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님 안에 있는 물고기가 되고 싶었다.


2023년도 서서히 마무리되어가고 있을 즈음,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선교 훈련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그것을 두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 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때 나는 편의점에서 일주일에 이틀,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한 꼬마 손님이 100엔이 백 원짜리인 줄 알고 냈다. 나는 그것을 아이에게 설명해 주고, 천 원을 주고 바꾸었다. 그리고 내 지갑에 테이프로 붙이고 다녔다. 12월에 앨범을 내고 얼마 안 있어, 양쪽 발에 병이 생겼다. 나는 발목이 좀 약한 편인데, 평소보다 살이 찐 상태에서 살을 뺀다고 달리기를 꽤 자주 하기도 했고, 하루에 검수를 2번 해서 무거운 것을 들고 이동하는 일이 잦았고, 손님이 오시면, 빠른 걸음으로 방향을 바꾸어 걷기도 했는데 그것들이 무리가 됐던 것 같다. 병명은 '족근골결합'이었다. 발의 근육과 뼈가 결합이 되는 병인데, 선천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상이 없다가 무리하면 발현되기도 한다고 어떤 글에서 본 것 같다. 양쪽 발을 다쳤으니, 걸을 수가 없어서 사장님께 전화해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동네에 있는 종합 병원이었는데, 병원장님이 크리스천이신지 나의 병실침대 옆에는 외국선교사님을 소개하는 커다란 달력이 걸려있었다. 어떤 간병하시는 분께서 내가 노트에 글을 쓰는 것을 보고 말을 걸어오셨는데, 알고 보니 은퇴하신 여 목사님이셨고, 목사님의 아드님은 선교사로 타지에 계신다고 하셨다. 나는 목사님께 따끈따끈한 나의 신곡을 소개해드리기도 했다. 2주가량 후 퇴원을 했다.



2024.

2024년의 목표는, 선교훈련을 받는 것이었다. 훈련받을 단체를 정해야 했다. 나와 맞는 곳에 가고 싶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랐기에 계속 기도를 드리는 기도제목이었다. 그 시기에 내가 페루에 가기 전에 일주일간 집을 내어 준 친구가 먼저 받았던 선교 훈련을 소개해줬고, 더불어 독서 치유 모임도 소개해줬다. 나는 기도를 하며, 이곳이 좋겠다 싶어 친구의 교회에서 열리는 12주 과정의 선교 훈련 학교와 6개월 과정의 독서 치유 모임도 신청을 했다. 교회는 부산에 있었고, 나는 훈련에 집중하기 위해서 부산에 있는 연습실을 월대여해서 평일에는 연습실에서 먹고 자고 하며 살았다.

정형외과에 가끔 치료를 받으러 다녔지만 잘 낫지 않아서 거의 6개월을 천천히 걷고, 가끔은 절뚝거리며 걷기도 했다. 선교 훈련 학교가 끝나고, 선교지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중 일본이 있었다. 나는 그전부터 일본에 가고 싶기도 했고, 발이 다 낫지 않았기에 일본이 기간이 짧기도 해서, 일본을 선택했다. 일본 단기선교는 7월에 갔는데, 그즈음 취업을 위해서 컴퓨터 학원에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수업이 아니라면 갈 일이 없는 동네였는데, 학원 근처에 정형외과가 하나 있었다. 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선생님이 실력이 좋으신 분이셨는데, 선생님이 놔주신 재생주사가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에서는 아픈 발 걱정 없이 잘 걸어 다니며 맡은 일들을 했다. 일본의 교회에서는 일본에서 선교를 하시던 이준석 선교사님의 찬양 콘서트가 있었다. '꽃들도'라는 찬양을 번역해서 부르신 분이시다. 우리 팀도 워십을 하기도 했다. 선교사님을 보며, 나도 선교사님처럼 저렇게 교회를 다니며 무대에서 찬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본의 풍경, 음식, 사람들, 그곳의 선교사님 부부와 함께 간 팀원 분들, 교회에서 만난 분들도 좋았다. 독서 치유 모임은 줌으로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는데, 3개월 하고 쉼을 가진 뒤, 또 3개월을 하며 10권의 책을 읽고 나누며 더 회복을 누리고 배워 간 시간이었다.



2025.

집이 너무나 갑갑하게 느껴져, 노숙을 하더라도 떠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떠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또 서울에 갔다. 노숙은 하지 않았고, 고시원에 방을 얻어 지냈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좋은 선생님께 재즈피아노를 배웠다. 카페에서 사람들과 함께,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다 보니, 나와 맞지 않았고, 멀티가 필요한 곳이었고, 나는 일하는 속도가 느려서 한계를 느껴서 그만두었다. 연습을 하려면 연습실을 예약하는 데에 돈이 꽤 들었고,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돈이 많이 들었기에, 나는 다시 본가로 내려왔고, 재즈피아노는 한 주는 줌으로, 한 주는 대면으로 서울에서 레슨을 받았다. 7월에는 집에 안 좋은 일들이 겹치면서, 상황이 어려워 재즈피아노를 그만두게 되었다.



2025. 9월.

9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화성학 공부, 일본어 공부, 작곡과 연습, 다이어트를 해보려 한다. 가능하다면 2년 정도 열심히 공부하고 연습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도 없고, 행복하게 아이를 키울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음악을 결코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음악이 또 미뤄진다면 나는 너무 슬플 것이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고, 아이를 허락하신다면 아이도 행복하게 키우기 위해서, 반드시 지금 공부를 해야만 한다. 평일에는 공부하러 도서관으로 나가려 한다. 한 과목당 두 시간 단위로 나눠서, 기도와 글쓰기, 화성학 공부, 일본어 공부를 하려 한다. 도서관 근처 산을 오르내리며 산책을 하고, 집에 와서는 연습을 하려 한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씻고 휴식도 취할 것이다. 주말에는 이완을 위해서 푹 쉬어 주거나 미뤄 둔 것을 하고, 2주에 한 번은 화요일마다 예수전도단 부산 화요모임을 갈 계획이기도 하다.

나에게 맞는 루틴을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생각을 해봤는데, 3개월은 그렇게 열심히 하고, 1개월은 쉬고 힐링하며 여행을 가거나, 공부는 하고 싶을 때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세 번의 사이클을 돌면 1년이 지난다. 그렇게 2년을 공부하고 싶다.


내가 재즈 화성학 수업을 들었던 백반종 교수님이 내신 재즈 화성학 책이 있다. 2018년이었던가, 교수님 성함을 검색해 보고 책을 내신 걸 보고는 정말 기뻤다. 그래서 3권을 샀는데, 독학하는 것이 나는 정말 잘 안되어서, 몇 년 후에 겨우 겨우 1권을 다 읽고, 2권은 읽다가 말았다. 그것도 공부가 아니라, 독서 정도로 읽었다.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


나는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고, 멋진 무대에 서고 싶다.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는데, 나중에 선교를 하는데에 쓰일 수도 있을 것 같고, 일본 문화에 관심도 많아서이다. 매일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다 맡겨드리고 싶다.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할 수 있다고, 내가 너와 함께하니까 할 수 있다고 하시는 것만 같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가 없고, 행복하려면 내가 변해야 한다. 물론 나의 고유함은 변하지 않겠지만. 나는 끈기가 부족해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은 되지만, 계속 시도해 볼 것이다.



짧은 문장들.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많았는데, 들으면서 읽는 것이 나에게는 도움이 많이 되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4-5번 정도 읽은 것 같다. 알고 싶었고, 갈급했다. 대략적 줄거리 정도는 조금 알 것 같다. 성경은 읽어도 읽어도 품은 뜻을 다 알 수 없겠지만, 메시지는 명확하고 선명하다.


땅에는 높은 산도 있고, 낮은 들도 있고, 평지도 있고, 더 낮은 웅덩이도 있다. 사람이 선 곳이 높든 낮든 다 땅에 발 붙이고 산다. 나는 그렇게, 사람이 동등하다고 생각한다. 자리의 높고 낮음은 있을 수 있지만, 사람의 존귀함과 가치에는 높고 낮음이 없으며 비교할 수 없다.


아픔에는 의미가 있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누군가와 마음을 나눌 수 있다.

나는 많이 외로웠고, 두려웠다. 사람들과 나 사이엔 높은 벽이 있는 것 같았고, 나는 홀로 있는 외딴섬 같을 때도 많았다. 그러나, 어떤 시즌이든 내게는 힘이 되는 사람들이 꼭 있었다.


하사이 츠쿠루. 파쇄하며, 써나가다.

어두움을 파쇄하고, 빛을 써나가기를 기도하며, 한 걸음씩 정진해보려 한다.

그건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 내게는 생명을 창조할 능력이 없다. 나는 흔들리는 갈대처럼 연약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있으시고, 그분의 뜻이라면, 나를 통해서 일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삶 속에 써가시는 이야기. 사랑의 하나님은 지금도 곳곳에서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일하고 계신다.


지난날들이 나를 붙잡지 않고, 놓아주기를.

무언가가 나를 뒤에서 잡아당겨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는데,

이제는 나아가라고 등을 떠밀어주기를.


2019년에 내게 조언을 해주신 목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다.

너를 향한 하나님의 그림은 정말 멋질 거야.

지금은 어두워 보이지만,

어두운 퍼즐 조각은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거였던 거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3:16 (새 번역 성경)


네가 하는 일을 주님께 맡기면,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잠언 16:3 (새 번역 성경)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 2:10



뼈와 살을 깎는 고통으로.

이렇게 다짐을 하지만, 자신이 없다.

매일 도우심을 구하며..


내가 할 것은 한 걸음만 걸으면 된다.

그리고, 뒤돌아가지만 않으면 된다.

한 번에 두 걸음을 걸을 필요도 없고, 딱 한 걸음씩만 걸으며,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가장 좋은 길, 선한 계획을 품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