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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Sep 05. 2017

'1200만' <택시운전사>가 써내려간 어떤 정점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1200만 명 돌파가 바로 눈앞이다.ⓒ 쇼박스


1200만 돌파가 목전이다. 지난달 2일 개봉한 <택시운전사>가 4일까지 1189만 명을 동원했다. 역대 박스오피스 11위인 <태극기 휘날리며>를 뛰어넘었고, 10위인 <왕의 남자>의 1230만 명 기록에 다가가고 있다. 평일과 주말 4~5만에서 9만까지 동원한 지난주 관객 동원 평균 추이를 봤을 때, <택시운전사>의 역대 박스오피스 10위 진입은 도달 불가능한 수치로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최근 영화진흥위원회는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출품작으로 <택시운전사>를 선정했다.

여느 '천만 영화'와 달리, 이 같은 <택시운전사>의 흥행 결과와 그에 따른 파급효과는 아마도 '실화영화'와 '근현대사' 소재의 영화가 다다를 수 있는 어떤 '정점'으로 기록될 만하다. 비단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란 한국현대사의 비극이자 민주화의 정신적, 운동사적 측면의 분수령을 외부인과 목격자(그리고 외국 언론인)의 시각으로 그린 영화적인 소재를 염두에 둬서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파급효과'라는 측면에서 그러하다.

역대 박스오피스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들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 도드라진다. <명량>이 '이순신에 대한 재평가'를 끌어냈고, <국제시장>이 '아버지 세대'의 멘탈을 현재에 되살리는 방향으로 그 '파급력'을 전파했다면(또는 <베테랑>이 '악한' 슈퍼 갑 재벌을 응징하는 액션 영화로서의 쾌감을 전달했다면), <택시운전사>는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실질적인 사회적인 '액션'들을 끌어내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개봉 한 달간의 궤적, 그중에서도 몇몇 주목할 만한 장면들을 짚어 보면 이 <택시운전사>의 혁혁한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 한 편의 '천만 영화'가 '5.18 광주'와 민주화 운동에 대한 사회적인 환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그 시작은 아마도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다시 보는 '푸른 눈의 목격자'와 위르겐 힌츠페터 

  

'80년 5월, 푸른 눈의 목격자' 속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 KBS


"나는 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모두 들었다. 너무 슬퍼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는 기록했다. 한국 언론에서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진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내 필름에 기록된 모든 것은 내 눈앞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 피할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에서 서울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간 며칠 후인 수요일 21일 다시 광주를 찾아 '80년 5월 광주'를 계속 기록했으며, 이후 그해 9월 열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취임식도 직접 카메라를 들고 취재를 했다고 한다.


2003년 5월, 노무현 정부 당시 KBS1에서 방영됐던 <KBS 일요스페셜> '80년 5월, 푸른 눈의 목격자' 편이 지난달 19일 오후 KBS1 '특선다큐멘터리'라는 제목을 통해 다시 전파를 탔다. 이튿날인 20일 오전엔 <택시운전사>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지난 정부에서 '부역 언론'으로 낙인찍힌 KBS의 눈치 빠른 편성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지만, '푸른 눈의 목격자'의 재방영은 그 자체로 의미를 부여할 만했다.

<화려한 휴가>가 개봉하기 전인 2007년 이전, 이 '푸른 눈의 목격자'는 아마도 힌츠페터를 소개하는 것은 물론 '1980년 5월 광주'를 다룬 유의미한 TV 다큐였다는 평가다. 아니, 광주 관련 충격적인 진실이 민주 정부 시기 공영방송에서 전파를 탄 아주 특별한 방송이었다고 할 수 있다(이 방송은 지금도 '공영방송' KBS 홈페이지에 가입만 하면 '저화질'의 다시 보기 영상으로 시청할 수 있다. <택시운전사>를 관람한 관객들에게 추천하는 바다).

특히나 힌츠페터가 1980년대 한국을 취재하면서 전두환 정권의 감시를 늘 당해야 했고, 특히나 1986년 서울 광화문에서 시위를 취재하던 중 사복경찰에게 끌려갔다 노상에서 집단 구타를 당해 목뼈와 척추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다시 들어도 마음 아픈 대목일 수밖에 없었다.

힌츠페터는 이때 입은 부상으로 인해 목뼈에 의료용 플라스틱을 심은 채로 살아갔다고 한다. 더군다나, 하필 '푸른 눈의 목격자'가 방영됐던 2003년 5월, 힌츠페터는 목뼈에 심어 둔 플라스틱을 교체하기 위해 병원 신세를 졌다고 한다. 확실히 '1980년 5월 광주'는 그의 심신에 깊게 새겨진 상처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보다 앞서, 힌츠페터는 '5.18 광주'를 취재했던 그해 1980년 9월 '전두환 대통령 취임' 시점에 맞춰 독일에서 방영된 <기로에선 한국>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바 있다. 이 다큐 또한 독일은 물론이요 유럽과 영미권, 그리고 전 세계에 광주의 실상을 알리는데 일조했던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 더해, 이 다큐에 '광주사진집' 등을 편집해서 더한 이른바 '광주 비디오'는 1980년대 중후반 이후를 통과해온 한국의 지식인과 대학생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하며 5.18 광주의 실상을 늦게나마 광주 밖 국민에게 알리는 데 크게 공헌한 바 있다. 이게 무려 30여 년 전이다. 알면 알수록 힌츠페터가 끼친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곱씹게 되는 대목이다. 그건 이 '광주비디오'를 직접 접한 이들이라면 더더욱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실일 것이다.

브람슈테트 여사도 알고 있는 '진실'과 '이해' 

  

한국을 찾은 고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 여사.ⓒ 쇼박스


"광주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야기가 한 줄도 보도되지 않고, 그저 나쁜 놈들로, 폭도로 취급되는 것이 정말로 억울했고, 또 게다가 다친 사람들이라든가 감옥에 간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은 그랬습니다. 이런 정도 세상이 올 거라고 당시 생각한 사람은 거의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마 우리가 죽고 다음 세대에 제대로 평가받았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생각했을 거예요. 워낙 그때 내리누르는, 그야말로 폭압이라는 힘들이라는 게…."

당시 '광주사진집'을 발간했던 김양래 당시 광주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은 '푸른 눈의 목격자'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광주 MBC'가 불타는 장면을 포함해 <택시운전사>가 품고 있는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 할 만하다.

인터뷰 시점을 고려하면, 2003년 5월 참여정부 당시만 해도 "이런 정도 세상이 올 거라" 생각했던 이들은 많지 않았던 셈이다. 이 '푸른 눈의 목격자'에 생전의 남편과 함께 출연했던 위르겐 힌츠페터의 부인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 여사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하다.

최근 <택시운전사>의 개봉과 함께 지난 8일 방한한 바 있는 브람슈테트 여사는 지난 17일 일정을 모두 끝내고 독일로 돌아가기 전 윤장현 광주시장에게 "광주를 정말 방문하고 싶었지만 가지 못해 안타깝다"는 심경이 담긴 편지를 보낸 화제를 모았다.

앞서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기도 했던 브람슈테트 여사는 이 편지에서 "남편의 노력이 '5.18민주화운동 진실규명 특별법' 제정으로 결실 맺을 수 있도록 한국 국민과 국회의원들 모두 특별법 제정을 지지해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브람슈테트 여사는 "남편의 말처럼 5.18민주화운동은 광주만의 사건이 아닌 민주주의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위해 싸웠던 중요한 시민운동"이라고 규정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전 세계적 가치는 물론 '5.18민주화운동 진실규명 특별법'의 필요성까지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브람슈테트 여사는 더욱이 편지 말미 "하지만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고 종종 폭동으로 왜곡되는 일이 있다"며 "진실을 아는 한 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전했다.

'5.18민주화운동 진실규명 특별법'은 물론이요, 마치 '전두환 회고록' 등을 염두에 둔 '왜곡' 운운까지. 힌츠페터 기자와 브람슈테트 여사가 광주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이해하고 공감했는지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고민과 염려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와 공감이야말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개봉한 <택시운전사>의 흥행 여파와 맞물려 현실 사회적인 영역에서 퍼져나가고 있는 5.18 재조명 분위기와 핵심이라 할 것이다.

'문재인 시대'와 <택시운전사> 신드롬 그리고 진상규명
  

영화 <택시운전사>의 흥행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쇼박스


다시금 발의된 '5.18민주화운동 진실규명 특별법'은 자유한국당을 제외하고 이미 너르게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공군 전투기 부대에 광주를 향한 출격 대기 명령이 내려졌다는 주장과 당시 광주 시내 전일빌딩을 향한 헬기 사격(기총소사) 관련해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특별조사를 지시한 바 있다.

정치 영역에서의 움직임과 함께 시민사회는 물론 일반 국민 역시 5.18 재조명과 추모 분위기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택시운전사> 흥행이 '5.18 신드롬'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5·18 묘지에 추모객이 급증하고 있고, 역사현장과 전시회에도 발길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립 5·18 민주묘지관리소에 따르면, <택시운전사> 흥행이 한창이던 지난달 묘지 참배객 수가 전년 대비 66%가 늘었다고 한다. 7월 대비는 물론이요, 평일과 주말 일일 추모객 수 또한 큰 폭으로 늘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러한 참배객 수 증가에 대해 묘지관리사무소 측은 묘지에서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망월동 5·18 옛 묘역에 영화 속 독일 기자의 실존 인물 위르겐 힌츠페터 추모비가 마련돼 참배객 숫자도 덩달아 늘어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또한, 5.18 역사의 현장인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역시 시민들의 발길이 늘었고, 광주광역시청 1층 시민 숲에서 열리는 힌츠페터 추모 사진전도 성황을 이뤄 이달 8일부터 다음 달 23일까지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다음 달 16일부터 20일까지는 국회의원회관에서 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와 함께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리는 '5·18 위대한 유산 : 시민, 역사의 주인으로 나서다' 전시 역시 9월 15일부터 목포 김대중 노벨평화상 등 전국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올해 5.18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광주정신을 새 헌법에 새기겠다"고 공언했다. 촛불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지 않았다면, 그러니까 정권 교체가 없었다면 <택시운전사>의 운명은 또 달랐을지 모른다. 영화계의 오래된 속설 하나. 한 편의 영화는 타고난 제 '운명'대로 평가받고 사랑받기 마련이다.

'천만 영화' <택시운전사>는 자신의 '운명'대로 개봉 후 한 달 넘게 관객들을 만났다. 영화의 완성도와 예술성에 대한 평가는 관객 개개인이 다를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실화영화'로서, '근현대사' 소재의 영화로서 "광주의 진실을 알려달라"던 영화 속 당시 광주시민들의 목소리를 왜곡 없이 대변해 냈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에 뒤따르는 '신드롬'과 진상 재규명의 움직임을 이제 <택시운전사>를 본 관객 한 명 한 명이 동참하면서 이뤄내고 있다. 그렇게, 세상은 영화 그 자체가 아니라 결국 영화를 본 관객 한 명 한 명이 바꿔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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