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성태의 시네마틱 Jun 15. 2017

<델타보이즈> 고봉수 감독 인터뷰

관객 웃기고 울린 저예산 괴물 영화의 탄생

영화 <델타 보이즈>의 스틸 컷. 감독의 독특한 스타일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인디스토리


처음엔 스타일에 놀란다. 무심한 듯 대놓고 하고픈 이야기를 뻔뻔하게 내지르는 그 스타일에. 그 다음엔 배우들의 연기에 놀란다. 현실에서 튀어나온 듯한 다섯 캐릭터의 가감 없는 생활연기에 어디서 웃고 어디서 울어야할지 감을 잡기 힘들다. 그리고 마지막, 네 남자의 4중창이 주는 묵직한 울림에 또 한 번 놀란다. 

<델타 보이즈>는 그렇게 놀라움의 연속이다. 고봉수라는 느닷없는 신인감독의 출현이 놀라울 뿐더러, '고봉수 사단'이라 부를만한 무명에 가까운 배우들의 진심어린 연기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더욱이 이 120분짜리 장편영화의 제작비는, 너무 적어서 '도대체 어떻게?'의 연속이라 밝히고 싶지 않을 정도다. 이 예상치 못한 드라마는 의외의 장면에서 의외의 진심을 전하고, 의도치 않은 것 같은 장면에서 감독의 야심만만한 의도를 독창적으로 드러낸다. 

시작은 많이 본듯한 '루저' 드라마다. '열정제로'의 일록(백승환 분)에게 '미쿡'에서 온 버터발음 가득한 친구 예건(이웅빈 분)이 찾아온다. 돈 없고 꿈도 없는 둘은 매끼 라면을 섭취하는 나날을 반복하고, 무슨 깨우침이었는지 예건은 미국에서 못다 이룬 자신의 꿈을 지금, 여기서 이루자고 제안한다. 

그 꿈은 바로 남성 사중창 대회. 그리하여 이 둘은 무작정 '델타 보이즈'란 이름의 사중창 그룹을 결성하고, 일록이 내건 허접스러운 전단지를 보고 찾아온 '생선 가게 청년' 대용(신민재 분)과 무턱대고 의기투합을 선언하는 세 사람. 급기야 대용의 후배이자 아내 지혜(윤지혜 분)와 트럭에서 도너츠를 파는 준세(김충길 분)까지 자의 반 타의 반 합류하면서 델타 보이즈의 꿈은 영글어가기 시작한다.

"독학으로 습작용 단편영화만 200편 넘게 찍었다"고 말하는 고봉수 감독. 그의 장편 데뷔작 <델타 보이즈>(8일 개봉)는 낯익은 듯 전혀 새로운 소재와 캐릭터, 호흡으로 무장한 채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부문 대상과 CGV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 그해 인디포럼과 무주산골영화제 등에서 관객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지난달 30일 배우들과 함께 고봉수 감독을 만났다. 기자 시사 이후 만난 고봉수 감독은 "지금의 성과도 감사하다"라면서도 각기 다른 여러 차기 프로젝트를 줄줄이 소개하는 활력의 소유자였다. 그만큼 <델타 보이즈> 이후 물을 만난 것 같은 '창작력'에 자신도 즐거운 듯 보였다. <델타 보이즈> 식구들과의 인터뷰를 배우들과의 인터뷰와 나누어 소개한다.

초저예산으로 완성한 '고봉수 사단' 영화, 관객 웃고 울리다 
  

영화 <델타 보이즈>의 고봉수 감독과 신민재 배우.ⓒ 인디스토리


<델타 보이즈>는 '시나리오 30%, 애드리브 70%'로 구성됐다는 사실만으로 여러 영화제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줬던 작품이다. 생생하다 못해 엉뚱하고 생뚱맞은 대사와 상황이 적지 않은 만큼 연극적인 계산과 더불어 독립영화만이 가능할지 모를 즉흥 연기와 연출이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합'은 아마도 고봉수 감독과 배우들의 믿음에서 비롯된 앙상블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터다. 고 감독이 미국에서 독학으로 공부하던 시절 만나 오랫동안 함께했다던 이웅빈을 비롯해 백승환, 신민재, 김충길 배우는 고 감독의 단편 <쥐포>(2015)와 <델타 보이즈>, 그리고 차기작 <튼튼이의 모험>까지 모두 함께한 영화적 동지라 할 수 있다. 

백승환, 신민재 배우는 동지이자 이 초저예산 장편영화의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고, 투자부터 현장 통제 등 영화의 완성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여력을 기울였다. 고봉수 감독 역시 각본은 물론 촬영과 편집까지 도맡았다. 

'고봉수 사단'의 즐거운 작업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상영된 '함평중학교 레슬링 부 이야기' <튼튼이의 모험>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델타 보이즈>는 영화 안팎으로 '앙상블'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그래서 고 감독에게 배우들과의 작업에 대해 먼저 물었다. 다음은 고봉수 감독과의 이어진 일문일답이다. 

- 배우들과의 호흡이 무척이나 궁금한 영화다. 각 배우와의 작업에서 받은 인상은 어땠나.
"윤지혜 배우는 당차고 대찬 느낌이 좋았다. 유일하게 영입된 건데, 주눅 들지 않고 대차게 연기해줘서 참 고맙게 생각한다. 신민재 배우는 코미디 감각이 굉장히 좋다. 평상시 얘기를 할 때도 지루하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말을 센스 있고 재미나게 하는 캐릭터다. 영화에서 그런 성격이 십분 활용된 것 같아 마음에 든다.

백승환 배우는 우직한 느낌이라고 할까. 책임감도 있고, 딱 보면 뭐든지 맡길 수 있는 느낌이라 주인공 역할을 줄 수 있었다. 김충길 배우는, 저 배우는 진짜 특이하다. 애드리브를 저렇게 잘하는 배우를 처음 봤다. 즉흥적으로 상황을 줬는데, 몇 초도 안 되는 상황에서 감정이입을 하더라. 그게 굉장히 특이했다. 이 배우와 즉흥연기를 하면 뭔가 재밌는 상황이 많이 나오겠다는 생각을 촬영 전에 많이 했다.

이웅빈 배우는 교포 출신이기도 하고, 영어 발음도 워낙 좋다. 라디오 DJ 출신이기도 하고 행사 MC도 많이 했다. 그런 진행 능력, 많은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이 영화에 많이 반영된 듯하다."

"힘겨운 청춘들의 이야기? 제가 그런 청춘이니까" 
  

<델타보이즈>의 고봉수 감독과 신민재 배우.ⓒ 인디스토리


- 흑인 중창단인 델타리듬보이즈의 'Joshua Fit the Battle of Jericho'를 듣고 <델타보이즈>를 만들게 됐다는 건 이미 영화제 관객들에게 유명하다. 저도 영화를 본 뒤 바로 찾아봤는데, 그 영상과 영화를 어떻게 접목시켰는지 궁금하다. 
"이 시대 청춘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소재를 찾던 와중에 유튜브로 영상을 보게 됐다. 사실 남성 사중창이란 소재를 가져온 결정적인 이유가 이웅빈이란 배우가 실제로 그걸 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그러면 니가 배우들과 같이 노래 연습 좀 하고 연기를 하면 어떨까 그런 얘기를 했는데 이웅빈 배우가 오케이를 한 거다. 다른 배우들도 오케이를 해줬고.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 미국에서 꽤 오래 생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습작들을 굉장히 많이 했다. 학교를 따로 다닌 건 아니고. 습작들을 많이 만들고 또 애틀랜타로 넘어가서 라디오 DJ도 하고, DJ를 하는 와중에 영상을 계속 찍었다. 200여 편 습작도 그때 찍고. 편집연습도 많이 했고. 제작비 없이 영화를 만드는 법을 많이 공부했다(웃음)." 

- 제작비 없이? 대부분의 영화들이 제작비를 투자 받아서 진행이 되는데.  
"그렇게 되면, 진행이 느려지니까. 제가 성격이 급해서 빨리빨리 뭘 해야 된다. 제가 만약 미술하는 사람이라면 편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한다. 미술처럼 개인 작업이라면 그나마 편했을 텐데…. 영화를 미술처럼 할 수 없을까, 에이 그냥 찍자. 방안에 카메라 놓고 혼자 연기도 한 번 해 보고, 그런 식으로 영화를, 습작을 계속 만들었다." 

- 이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장편을 완성했다. 영화를 전공하거나 상업영화에서 경력을 쌓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전공자가 아니다보니,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공부를 제대로 하기에 많이 늦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실전을 더 겪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디지털 캠코더도 있었고…. 그냥 찍으면 되는 거 아냐? 그랬던 거다. 

사실 중간에 상업영화 연출부를 하려고 했던 적도 있다. 28살 때였는데, 연출부 면접을 봤는데 조감독이 25살이더라. 저한테 몇 살이냐고 물어서 '스물 여덞입니다' 그랬더니, 막내부터 해야 되는데 상관없냐고, 그래서 상관없다고 하니까 내가 불편할 거 같은데 그러더라. 이후에 연락이 없더라. 그 이후로 쭉 혼자 한 거다."

- 생활이 녹록지 않은 청춘들의 이야기다. 주요 캐릭터는 어떻게 잡았는지.  
"제가 그런 힘들어하는 청춘이었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굳이 남성 사중창단 얘기를 한 건, 마침 그 네 명이 모여서이기도 했다. 이 네 명이면 뭐든지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마침 사중창 영상을 본 거다." 

- 공장이라는 공간이나 옥탑방, 노점 트럭 등 제작비나 제작 여건에 맞춘 공간이 캐릭터나 주제에 잘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캐릭터 한 명 한 명을 만들어가는 건 좀 다른 얘기였을 것 같은데. 
"사실 배우들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지고 왔다. 신민재라는 배우를 예로 들면, 이 장면에서 이런 연기를 신민재란 배우가 할 때 어떤 장면이 나오겠다하는 예상이나 상상을 한 게 있었다. 그런 걸 믿고 맡겼다. 예를 들어서, 김충길 배우는 스페셜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워낙 감정이입도 빠르고, 정말 메소드 연기를 하는 배우다. 그래서 이런 배우가 당찬 여성과 싸움을 하고 하는 장면은 어떨까 예상을 했다. 욱해서 나오는, 어떤 시너지, 어떤 폭발이 있을까 예상하고 촬영을 했는데, 제 기대를 뛰어넘는 장면이 나오더라. 

이 배우가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으니까 배우와 배우의 성향이 충돌했을 때 과연 어떤 케미가 나올까. 그걸 기대하는 마음으로 간다. 기대 이상으로 어떤 장면이 나왔을 땐 쾌감을 느낀다."

차기작 <튼튼이의 모험>도 올 전주국제영화제에 선보여 
  

지난달 열린 기자시사회 당시 (좌로부터) 백승환, 김충길, 신민재 배우, 고봉수 감독, 윤지혜 배우.ⓒ 인디스토리


- 장면마다 길이도 길고, 상영시간도 120분으로 독립영화치곤 꽤 길다.
"원래는 120분 이상이었다. 줄이고 줄여서 120분이 된 거다. 장면을 들어내진 않고 앞뒤로 잘라냈다. 저는 영화가 120분 이하면 감정이입이 떨어지지 않나 하는 개인적인 판단이 있다. 그래서 계속 120분을 고수한다."

- 어릴 적부터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고 들었다. 영향을 받은 감독이랄지, 그 감독들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소개해주신다면.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감독들을 많이 따라 하려고 노력했는데, 이게 따라 한다고 될 게 아니더라. 주성치라든지, 샘 레이미라든지, 피터 잭슨, 넓게 보면 코엔 형제…. 또 뭐 못 오를 나무를 쳐다본 적도 있었다. 폴 토마슨 앤더슨이라든지.

그런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서 좌절도 많이 했다. 이렇게 천재적으로 영화를 만들어 내는데, 내가 영화를 만들 수 있나 이런 생각도 했고. 그런데 어느 순간 저만의 영화 문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그런 과정인 것 같고. 그리고, 자존심이 있는데, 나도 감독인데, 나만의 문법을 만들어보자는 욕심은 있다."

- 그럼에도, 이건 진짜 부럽다 그런 감독도 있었을 텐데.
"웨스 앤더슨 영화를 보면 깜짝 놀란다. 어떻게 그 나이에 이런 유머 감각과 순수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을까. 저도 그런 감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감독이 되고 싶다."

- 영화제에서 관객상도 많이 받았고, 코미디드라마로 많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형식이나 연기나 진지함이 꽤 많이 함축돼 있다. 슬픈 감정도 많이 깃들어 있고.
"맞다. 저도 그 부분이 미스터리다. 이렇게까지 웃기려고 노력하지는 않았거든. 저도 그렇고 배우들도 그렇고, 다들 슬픈 감정으로 몰입이 되더라."

- 마지막 사중창 장면은 감정이 집중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사실 노래하는 장면을 한 번 정도는 더 넣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연출 의도가 있나.
"마지막 장면 의도는, 상황은 이래도 우리는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음악이 한 번 나오는 건 관객들이 감정적인 울림? 감정적인 충격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음악 전체를 삽입한 거다. 그리고 마지막에 탁하고 끝나 버리는 장면은, 고민을 많이 했다. 열린 결말로 가는 게 맞을 것인가,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할 것인가 했을 때, 제 성향상 열린 결말로 가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영화 <사만번의 구타>처럼. 그 뒤의 상황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 뒀다."

- 차기작인 <튼튼이의 모험>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미 상영을 마쳤다. 그 작품을 포함해서 차기작 계획은?
"일단 <튼튼이의 모험>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다. 일전에 아는 분을 통해서 함평중학교 레슬링부를 소개받았다. 그래서 함평에 갔는데, 마치 다른 세상에 간 것 같더라. 거기 계신 감독님과 코치님과 아이들 모두 인성이 그런 사람들을 전 처음 봤다.

감독님은 아예 사비를 털어서 아이들을 케어해주고 계시더라.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나는 이 아이들이 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러시더라. 소외된 아이들이기도 하고. 그런 감독님과 코치님, 아이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건 꼭 영화화해야겠구나 싶었다."

- <델타 보이즈> 보다는 좀 더 나은 제작 환경이었다고 들었다.
"사실 레슬링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그분들을 보고 '우와' 이런 마음이 들었고, 그러고 나서 바로 영화화를 시작하게 된 거다. <델타 보이즈>의 배우들하고 같이 하니까 마음도 든든하고, 되든 안 되든 같이 해 보자. 그 말이 씨앗이 돼서 우리가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촬영하게 됐다. 함평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해서 2천만 원이란 돈이 들었다. 그래도 여유롭게 촬영할 수 있었다. 카메라도 업그레이드했고.

차기작은 멜로영화를 준비 중이다. 신민재 배우를 주인공으로(일동 웃음). 우리 사단 그대로 갈 것 같고, 다른 배우들도 영입해서 또 다른 '케미'를 보여줄 수 있을 거다. 또 좀비 영화 3부작도 준비 중이다. 한국형 슈퍼히어로 무비도 초고가 나왔다. 초고 가지고 탈고할 때까지 좋은 시나리오를 만들어가는 것이 계획이다. 앞으로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다양하게 해 보려고 한다."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홍보 포스터.ⓒ 고봉수 감독

매거진의 이전글 <1987>, <택시운전사>, <군함도>의 공통점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