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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Aug 29. 2018

군 위문공연 성상품화 논란, 신화 김동완의 용감한 지적

만연한 성 상품화 분위기, 그 증거들... 어른들이 문제다



▲'신화'의 김동완이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의 한 웨딩홀에서 열린 20주년 스페셜 앨범 'HEART'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이정민


"아이돌들이 지금 일하는 세상이 과연 행복한 걸까, 그런 질문을 늘 스스로 하고 있어요. 자살하는 후배들을 봐도 그렇고, 너무 처절하게 상품화되는 여자 아이돌만 봐도 굉장히 가슴이 아프고. 저희 선배들도 반성을 하고, 제작자 분들도 자극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지난 28일 스페셜 앨범 <하트>를 발매한 신화의 기자간담회 자리. 멤버 김동완은 '아이돌의 정의와 의미에 대한 답을 하던 와중에 좀 더 큰 얘기를 꺼내고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임을 몇 번이나 강조하면서도 현 아이돌 산업과 성 상품화에 대한 날카로운 일침을 던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을 한다. 아이돌 산업이 너무 일본을 따라가서 가슴이 아프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시장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과연 페미니즘을 운운할 수 있는 것인가. 스스로 자각을 하고 고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쪽 업계에 있는 사람들, 저희 같은 선배들이."


데뷔 20년차 아이돌 선배로서 반성도 표했다. 진솔하고도 뼈아픈 고백이 아닐 수 없다. 김동완의 이 같은 반성이 가리키는 지점은 과거가 아닌 현재라 할 수 있다. 최근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군부대 위문공연 성 상품화 논란이 바로 그 증례다.


"21살입니다", "딸 보다 어리네요"

  

▲SBS <8뉴스>에 보도된 군 위문공연 성 상품화 논란.ⓒ SBS


  

▲SBS <8뉴스>에 보도된 군 위문공연 성 상품화 논란.ⓒ SBS


"군대에서 군인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행해진다고 주장하는 '성적대상화' 위문공연을 폐지해주시기 바랍니다. 여자아이돌 그룹이 반쯤 헐벗은 옷을 입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도 충분히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만(중략). 여성을 사람으로는 보는 건지 그저 진열대의 상품으로 보는 건지 기괴할 따름입니다. 군인을 위한 여성의 헐벗은 위문공연이 왜 필요한건지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꼭 폐지시켜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17일 <"성상품화"로 가득찬 군대위문공연을 폐지해주세요>란 제목으로 게시된 청와대 청원 글 내용이다. 여자 아이돌 그룹의 군 위문 공연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같은 내용의 청와대 청원은 5만이 넘는 청원자 수를 기록 중이다. 이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이 바로 지난 14일 육군 모 부대에서 행해졌다는 피트니스 선수들의 위문 공연이었다.


"올해 OOO 선수는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21살입니다."

"제 나이가 54세인데요, (제) 딸 보다 어리네요."


무대에 선 피트니스 선수의 대답이 떨어지자 무섭게 객석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마이크를 잡은 ICN 코리아 협회 회장은 "타고난 체형도 좋고 해서 트레이너 활동을 하면서 ICN 대회에도 입상을 했고"라며 피트니스 선수를 소개한다. 이 선수의 복장은 당연히 비키니 차림이다. ICN 코리아는 'I Compete Natural'의 약자로 이른바 '내츄럴 보디빌딩'을 표방하는 단체로 알려졌다.


지난 15일 이러한 위문공연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되면서 논란이 거세졌다. 급기야 육군은 지난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글을 게재하며 논란의 진화에 나섰다. 사과의 주체인 수도방위사령부는 이 공연을 '외부단체 공연'이라 소개했다.


"지난 14일 안양 소재 예하부대에서 '외부단체 공연'이 있었다. 당시 공연은 민간단체에서 주최하고 후원한 것으로 부대 측에서는 공연 인원과 내용에 대해 사전에 알 수 없었으나 이번 공연으로 인해 '성 상품화 논란'이 일어난 데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이어 수도방위사령부는 "공연은 약 1시간가량 진행됐으며 가야금 연주, 마술 공연, 노래 등 다양하게 구성됐고 이 중 피트니스 모델 공연도 포함돼 있었다"며 "향후 외부단체에서 지원하는 공연의 경우에도 상급부대 차원에서 사전에 확인해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수도방위사령부의 해명만 놓고 보면 그저 일상적인 위문공연이 왜 논란이 됐을까 의구심이 들 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공연이 '일상'이라는 데 있다. ICN의 피트니스 공연 자체도 문제지만, 군 위문공연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성 상품화'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먼저 문제가 된 공연을 좀 더 들여다 보자.


이어지는 항변, 그러나


"안녕하세요. 저는 15년 정도 현역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는 ***입니다. 제가 그 동영상을 봤을 때는 과연 그 시합의 목적이 아닌 보여 주기용으로써 장소가 적합한지 그 부분이 아이러니하고 약간 의문이 드는 현장이어서…."


지난 27일 논란이 된 위문공연과 관련 SBS와 인터뷰한 한 현역 트레이너의 말이다. 30분 여 지속된 이 공연에는 남자 선수 한 명과 여자 선수 세 명이 무대에 올랐다. SBS 뉴스는 ([모닝 스브스] 군 위문공연에 비키니 입은 모델이…계속되는 논란)이라는 보도를 통해 이 공연의 분위기를 아래와 같이 전했다.


"지난 14일 육군 모 부대에 비키니 차림의 여성이 등장하고 포즈를 취할 때마다 함성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옵니다. 피트니스 대회인가 했더니 플래카드에는 국군장병 위문 공연단이라 적혀있었습니다.


전 국민이 함께한다는 공연에 비키니 입은 여성 모델이 줄줄이 등장하는 것도 모자라 이런 질문을 합니다(중략). 민망한 듯 무대를 내려가려는 모델을 사회자가 붙잡기도 합니다.이렇게 30분 가까이 공연은 계속됐습니다. 4명의 모델 중에 남성 모델도 있었지만, 남성모델은 전체 공연 중 5분 정도만 등장했습니다."


실제 공연 영상을 확인하면, 앞 5분 간 무대에 오른 남자 선수는 들러리가 아닌가 하는 인상이 강하다. 더군다나 이날 다른 무대에 올랐던 한 걸그룹 소속사는 성 상품화 논란이 지속되자 지난 24일 공연 전체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며 '항변'에 나서기도 했다.


"2018년 8월 14일 안양 소재 군부대에서 국군위문공연이 열렸습니다. 트롯 가수 노래, 클래식 기타 연주, 첫번째 걸그룹 공연, 가야금 연주, 마술공연, ICN 코리아 퍼포먼스, 팝페라 가수 공연, 그리고 두 번째 걸그룹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이 영상은 ICN 코리아 피트니스 선수 퍼포먼스 풀영상입니다. 피트니스 모델 군부대 위문공연 영상을 보신 분들께서 많은 의견을 주셨는데요, 이 풀영상을 보시고 새로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연한 성 상품화 분위기, 그 증거들

  

▲군 위문공연 성 상품화 논란을 다룬 SBS <8뉴스>의 한 장면.ⓒ SBS

  

▲군 위문공연 성 상품화 논란을 다룬 SBS <8뉴스>의 한 장면.ⓒ SBS


안타까운 점은, 군부대 공연을 다수 이 여성 아이돌 그룹 역시 성 상품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섹시 걸그룹을 표방한 이 아이돌의 군부대 공연 모습은 선정적이고 적나라한 의상과 안무가 대다수였다. 과연 영상을 본 이들이 어떤 새로운 판단'을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논란이 거세지자 ICN 코리아나 행사를 주최한 기획사 측 역시 몇몇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일상적인 공연이었고 여타 다른 지자체나 피트니스 대회에서도 행해지는 무대인데 성 상품화 논란이 일어난 것은 '오버'라는 게 요지였다.


그렇다. 이들의 '의도'를 십분 이해한다면 '오버'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것이 '일상'이라는 점, 또 버젓이 '위문공연'이란 형태로 행해진다는 그 자체에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피트니스 모델 공연과 유사한 '직캠' 영상들 역시 만연한 '성 상품화' 분위기에서 파생된 그릇된 문화의 어두운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유튜브 상에서 이 피트니스 공연 영상과 엇비슷하게 받아들여지는, 그 공연의 다른 무대에 섰다는 그 아이돌 그룹의 여타 군부대 위문 공연 영상과 똑같이 닮아 있는 '걸그룹 직캠' 말이다. 다분히 선정적이고, 지상파 방송에서는 절대 전파를 탈 수 없는 수위의 걸그룹 공연들은 오늘도 군부대에서, 대학 축제에서, 각종 공연장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중이다.


그리고 '직캠'이란 형태로 유튜브와 동영상 사이트 등에서 공연 영상이 활발하게 유통되는 중이다. 이들 중 일부 걸그룹은 과거 이 '직캠'으로 화제를 모아 스타덤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또 이들 중 다수는 그저 선정적인 무대를 무한 반복하며 소속사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된다고 볼 수 있다. 선정적인 위문공연은 어찌보면 그러한 '만연한' 분위기의 일부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전부터 걸그룹 등의 위문공연 또한 굉장히 문제가 되었었는데 해당 위문공연의 노출 정도로만 고민하지 말고 여성이 남성(성적 욕망을)을 위문해야 된다는 그 사고방식 자체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라고 생각됩니다."


SBS와 인터뷰한 한 여성단체 활동가의 말이다. 이번 군 위문공연의 '성 상품화' 논란은 지엽적인 문제일 수 있다. 처절하게 상품화된 아이돌 그룹의 현재를 지적한 김동완의 반성이 좋은 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그 반성과 자각에서 비롯한 '공범의식'이 아닐까.


여성들의 선정적인 무대를 통해, 그 부산물들을 통해 누군가는 지속적으로 돈을 벌어왔다. 더욱이 그러한 성 상품화의 행태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에서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중이다. 누구에게는 "딸 뻘"인 여성이 그 수단으로 이용되고, 그걸 받아들이는 수용자들의 나이도 점점 어려지고 있다. '만연된'이란 표현이 그래서 가능한 것이다.


군 부대가 '억울'할 순 있지만, 성 상품화 논란 앞에서 자유로울 '어른'들이 얼마 없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김동완이 지적한 '자각'의 필요성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반성하고 자각할 '어른'들은 또 얼마나 될까. 그 반성과 자각이 힘을 발휘하기엔, 우리 사회가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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