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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Feb 10. 2020

'오스카 위너' <기생충>, 국뽕 아닌 현실이 되다

▲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제26회 SAG 어워즈(미국 영화배우조합) 시상식 참석에 앞서 포즈를 취한 박소담 배우와 봉준호 감독, 송강호 배우. ⓒ neon


"미국 일반 관객 사이에서 화제가 될 만큼 <기생충>은 돌풍이다. 현지 분위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한국 언론이 보도하는 내용만 보고 '국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기생충>에 대한 이곳의 관심은 한국 언론이 보도하는 것 이상이다." (영화주간지 <씨네21> 1241호, <한국 아카데미 회원으로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투표 참여한 정정훈 촬영감독, "<기생충>팀 만나 부럽고 자랑스럽다고 얘기해주었다"> 중에서>


9000명이 넘는 전 세계 아카데미 위원회 회원 중 불과 40여 명에 불과한 한국인이자 <올드보이>, <아가씨>로 유명한 정정훈 촬영감독. <그것>, <커런트 워>, <좀비랜드: 더블탭> 등을 작업하며 할리우드의 '잘 나가는' 촬영감독으로 안착한 그는 <기생충> 팀을 만나 직접 축하를 전했다며 이런 감상을 남겼다.


"<기생충>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작품상, 감독상 등 여러 후보에 오른 건 대단한 일이다. <기생충>을 계기로 한국인들이 문화적으로 미국 사회에서 존경받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점에서 기분이 좋다."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은 그렇게 불과 몇 해 전까지 '화이트 워싱' 논란에 시달렸던 보수적 '아카데미'(오스카)와 할리우드에서 이미 '새 역사'를 쓴 것과 마찬가지다. 현지 언론 역시 연일 "봉준호와 <기생충>이 새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헤드라인'을 내세우는 중이다.


이제 즐기는 일만 남았다


칸과 골든 글러브를 경유해 현재까지도 전 세계 50개가 넘는 영화상을 싹쓸이 중인 <기생충>은 지난 2일 영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각본상과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데 이어 아카데미 시상식 하루 전인 8일 열린 제35회 필름 인디펜던트스피릿 어워즈에서도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앞서 소개한 인터뷰에서 정 감독이 한 말마따나, 20여 년 전 북미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와호장룡>의 경우와도 다르다.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은 미 유학파 출신으로 이미 미국에서 주류 영화를 작업 중인 감독이었다. 우리 제작사와 우리 배우, 스태프들이 우리말로 제작한 <기생충>과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외국어영화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와호장룡>과는 "전혀 다른 사례"가 맞다.


사실 이미 다 이루었는지 모른다. JTBC <방구석1열>의 '아카데미' 특집에 출연한 변영주 감독은 "수상 결과를 떠나, 작품상 후보마다 뮤지컬과 다름없는 오마주 무대가 꾸며지는데 <기생충>이 무대에 오른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이미 축제나 다름없다"고 평했다.


맞다. 흥겹고 자유분방한 아카데미 특유의 분위기 속에서 <기생충>은 시상식 내내 언급되고 찬사받고 박수를 받을 것이다. 비록 최근들어 그 위세가 떨어지긴 했다곤 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인들이 가장 '애정'하며 생중계로 지켜보는 '엔터테인먼트 이벤트' 중 하나요, 전 세계인들이 생중계로 즐겨온 지 오래다.


봉 감독도 이미 그런 즐김의 여유를 자랑한 바 있다. 지난달 작품상 격인 '앙상블' 상을 수상했던 SAG 어워즈(미국 영화배우조합) 시상식에서 스마트폰으로 배우들의 수상 장면을 찍던 봉 감독은 해외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로부터 '빅 대디'란 별명을 얻었다. 이제 우리도 봉 감독과 송강호를 비롯한 <기생충>팀이 그 오스카 시상식에서 '작품상' 후보로 호명되고 할리우드 배우들의 박수를 받으며 즐기는 모습을 함께 기뻐해도 충분할 것이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이목이 쏠리는 것은 수상 결과일 터. 칸을 비롯한 국제 영화상은 올림픽은 아니다. 반면 아카데미 시상식은 조금 다르다. 수상 결과가 실질적인 흥행 수익으로 연결되는 것은 당연지사. 올림픽과 같은 경쟁 구도가 펼쳐질 수밖에 없다.


제한 상영으로 시작한 <기생충>의 경우가 딱 그랬다. 이미 3000만 달러 이상의 흥행 수익을 거둔 <기생충>은 이미 북미 지역에서 개봉한 외국어 영화 중 전체 흥행 7위를 기록 중이다. '오스카 레이스'를 거치며 북미 지역 상영관을 1000개 이상 늘린 <기생충>은 수상 결과를 떠나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더 많은 '흥행'을 기대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기생충>의 배급사 네온뿐만 아니라 유수의 할리우드 제작사와 배급사들이 엄청난 비용과 자원을 쏟아 부으며 '오스카 레이스'를 펼치는 이유는 자명하다. 여기에 후보로 지명되고 수상한 감독과 스태프, 배우 모두에게 '오스카 위너'라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것을 가리킨다.


<기생충>의 수상 여부에 쏠린 미 언론의 관심이 아카데미 위원회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다. 지난해 <로마>의 돌풍과 '넷플릭스 영화'들의 입성 이후 국제화를 요구받고 또 꾀하고 있다는 아카데미 입장에서도 <기생충>에 대한 북미 관객들의 자발적인 관심과 흥행은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터다.


오죽했으면 < LA 타임스 >는 "<기생충>보다 아카데미가 더 <기생충>이 필요하다"고 돌직구를 날렸을까. 그렇다면, 현지시간 9일 LA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개최되는 <기생충>의 실제 수상 여부에 대한 미 언론과 전문가들, 국내 관객들의 예측은 어땠을까. 작품상 외에도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오른 <기생충>에 대한 차고 넘치는 예측들 중 유의미한 분석들을 꼽아 봤다.


백중세 혹은 각축

   

▲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제26회 SAG 어워즈(미국 영화배우조합) 시상식에서 작품상에 해당하는 '아웃스탠딩 퍼포먼스 바이 캐스트 인 모션픽처'( outstanding performance by a cast in a motion picture) 상을 수상한 송강호와 출연 배우들, 봉준호 감독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 neon

 

"< 1917 >의 수상은 아카데미의 역사를 확증할 것이고, <기생충>의 수상은 아카데미의 역사를 새로 만들 것이다."


지난 5일 <기생충>의 제작자인 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본인의 페이스북에 소개한 미 <베네티페어>의 전망이다. 현지 언론은 이렇듯 2000년 제72회 시상식에서 <아메리칸 뷰티>로 감독상을 수상한 샘 멘데스의 전쟁영화 < 1917 >과 <기생충> 두 편으로 유력한 작품상 후보를 압축하는 분위기다. 영화기자 출신인 곽 대표가 요약 정리한 현지 언론의 분위기를 좀 더 들어 보자.


"아카데미 회원은 평균 연령이 53세인가 그렇고, 백인/남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어두운 영화를 선호하지 않으며 전쟁영화를 작품상으로 뽑는 걸 좋아해왔다고 해요. < 1917 >은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나뉘지만 아카데미의 기존 선향에 딱 맞는데다 막강한 파워와 네트워크를 보유한 스필버그 제작에 (배급사) 유니버셜 제공인 영국 영화고요.


그에 비해 <기생충>은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좋아하는(비평 99% 관객 90%대) 영화이지만 비영어/비할리우드 영화고, 이제까지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 받은 역사가 없으며, 다른 작품상 후보작들에 비해 극장에 젊은 관객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하네요.


이 두 영화가 가장 강력한 작품상 후보작이지만, 작품상 투표 방식의 특성상 '더 무난한' 제 3의 영화에게 작품상이 주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주요 조합상 시상식들도 끝났고, (조합상 개수는 기생충이 5개로 1위, 1917이 4개로 2위라고 합니다) 어제로 투표도 완전히 종료되었습니다."


최근 미 언론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두 편 다 작품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평가 속에 개별 언론의 예측은 조금씩 달랐다. 미 주요 영화-엔터테인먼트 전문지들 중 <버라이어티>는 작품상은 < 1917 >, 감독상은 봉 감독의 수상을 점쳤다. 이어 "<기생충>이 국제장편영화상(외국어영화상)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상은 봉준호가 아니라 한국에게 주는 상"이라는 부연과 함께.


<할리우드 리포터>는 <기생충>의 각본상과 국제장편상 수상을 예상했고, 편집상 수상을 강력 추천했다. 또 그간의 수상 이력 등을 감안한 <할리우드 리포터>의 '수학적 예측'에서 <기생충>은 각본상과 국제장편상 부문 1위였다. 작품상과 감독상 부문은 < 1917 >에 이어 간발의 차이로 2위에 올랐다. <타임>, <포브스> 역시 < 1917 >의 작품상 수상을 예상했다.


반면 우리에게도 친숙한 미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는 작품상 수상과 함께 편집상, 국제장편상 등 <기생충>의 3관왕 등극을 전망했고, AP 통신과 < LA 타임즈 >의 소속 평론가 역시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을 내다봤다.


한 마디로, '각축'과 '백중세' 속 < 1917 >의 얼마간의 우세로 요약된다. 개별 언론과 소속 평론가들 모두 < 1917 >과 <기생충> 사이에서 고심할 수밖에 없다. 다소 보수적인 시각에선 < 1917 >이 우세지만,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으로 아카데미의 기존 분위기가 '반전'됐으면 하는 바람섞인 전망도 적지 않았다.


봉 감독은 지난달 28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열린 로테르담 영화제 마스터 클래스 행사에 참석해 "오스카 작품상을 기대하느냐"라는 질문에 "< 1917 >이 받을 것"이라 예상한 바 있다. 그렇다면 봉 감독의 새역사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국내 전문가들과 영화인들의 시각은 어땠을까.


희망섞인 전망들


"봉준호의 <기생충>은 국제장편영화상(외국어영화상), 각본상, 미술상 그리고 작품상까지 4개 부문을 석권할 것이다. 감독상을 샘 맨더스가 가져가면 역설적으로 <기생충>에게 작품상의 기회가 돌아올 것이라고 본다."


지난 8일 오동진 영화평론가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한 예측이다. 결국 작품상 수상 여부는 9000명이 넘는 아카데미 회원들이 샘 멘데스 감독에게 어떤 부문을 안겨줄 것이냐에 달렸다는 분석이었다.


같은 날 KBS <심야토론> '기생충 쾌거! 한국영화 100년의 저력과 과제' 편에 출연한 영화인들 역시 적게는 2개, 많게는 3~4개 수상을 점쳤다. <신과 함께>를 제작한 원동영 리얼라이즈 대표는 작품상 수상을 예상하며 "지난해 멕시칸인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로마>로 감동상을 수상했다. 2년 연속 비영어권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하긴 힘들 것"이라 내다봤다.


반면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인 배우 김여진은 "작품상은 힘들지만 국제장편영화상, 각본상은 아주 유력해 보인다"면서도 "감독상도 욕심을 내볼만 하다"는 다소 상반된 예측을 내놨다. 영화 <범죄도시>의 강윤성 감독도 "아카데미가 (봉 감독에게) 감독상을 주면서 세계로 뻗어나가지 않을까"란 희망섞인 전망을 내놓은 반면 김영진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은 "2개 정도", 김효정 영화평론가는 "4개 정도" 수상을 점쳤다.


"<기생충>이 받아야 한다. 작품상 경쟁은 < 1917 >과 <기생충> 2파전으로 압축되는 모양새다. 올해 오스카가 남성과 백인 중심 후보 지명으로 비판받고 있는 만큼 아시아 감독이 만든 외국어영화 <기생충>을 향한 응원이 힘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다양성의 가치를 차치하고서라도 <기생충>은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스스로 영화적 가치를 증명해오고 있다. 아카데미 회원들의 과감한 선택을 보고 싶다."


영화주간지 <씨네21>이 9일 <씨네21의 선택 vs. 아카데미의 선택>이란 예측 기사에서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 가능성을 전망하며 내놓은 분석이다. <씨네21>은 이와 함께 <기생충>의 각본상 수상 가능성도 높게 봤다. 


영화제는 올림픽이 아니지만, 아카데미 영화상과 시상식 자체는 경쟁 구도와 이에 대한 중계를 통해 '장사'를 하는 공간이 맞다. '쾌거'란 언론의 수사가 과하다는 이도 없진 않지만, 이미 기정사실화 된 외국어영화상 수상을 넘어 봉 감독과 <기생충>의 작품상과 감독상 수상 여부가 한국영화계에 있어 북미와 전 세계 관객들과 '통'할 또 다른 '열쇠말'로 기능할 것이란 예상까지 부정할 순 없다. 


미 언론조차 경외를 보내고 "아카데미에겐 <기생충>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지금, 봉 감독도, <기생충> 팀도, 우리도 잔치상을 즐길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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