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성태의 시네마틱 Feb 10. 2020

봉준호 '오스카 수상'이 가져올 어마어마한 변화


▲ 9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과 작가가 영화 <기생충>으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Bong Joon Ho, Parasite"


시상자로부터 'Parasiet'과 'Directed Bong Joon Ho'가 호명될 때마다, 가장 큰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TV 생중계를 지켜 본 이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의 인기를, 아카데미 시상식 참석자들조차 열광하는 이 뜨거운 열기를.


그리고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수상자로 무대에 섰다. 한진원 작가와 함께였다. 9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 감독이 거머쥔 '첫 번째' 트로피이자, 한국영화 사상 첫 번째였다.


'봉준호'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한국계 배우이자 지난해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TV 부문) 수상자인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호했다. 비영어 영화가 각본상을 수상한 것은 페드로 알마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 이후 무려 17년 만이었다.


"땡큐, 그레잇 아너. 영화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고독하고 외로운, 어려운 작업인데, 국가를 대표해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이 상은 한국이 받은 최초의 오스카 상입니다. 언제나 많은 영감을 주는 제 아내에게도 감사하고 제 대사를 멋지게 화면에 옮겨주는 멋진 배우들에게도 감사합니다." (봉준호 감독)


"미국에 할리우드가 있듯이 한국에는 충무로가 있습니다. 저의 심장인 충무로 모든 필름메이커, 스토리텔러들과 이 영광을 나누고 싶습니다."(한진원 작가)


한 작가가 수상 소감을 이어가는 동안, 뒤로 한 발짝 물러난 봉 감독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오스카 트로피'를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한국영화 최초'라는 사실을 강조한 봉 감독이나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 위에서 '충무로'를 실제로 '발성'한 한 작가의 수상 소감은 감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어 봉 감독은 시상자로 나선 배우 키아누 리브스와 악수를 나누고 또 다른 시상자인 다이앤 키튼을 에스코트하는 여유도 잃지 않았다.


이날 < TV조선 > 생중계로 시상식 지켜본 이들이라면, 심장이 더 쫄깃해질 수밖에 없었다. 봉 감독도 언급했듯, 알파벳 P로 시작하는 터라 <기생충>은 매 부문 후보작(자) 호명에서 5번째로 불렸고, 시상식 초반 각본상 수상 이후 5개 부문의 결과 발표가 더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SNS상에서는 시상식을 지켜 본 영화인들의 "각본상 수상만으로도 많은 것을 이뤘다"는 평과 "앞으로 더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는 희망 섞인 전망이 교차했다. 이후 편집상과 미술상은 수상에 실패했지만, 수상이 유력했던 국제장편영화상과 주요 부문인 감독상, 작품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각본상 이후 많은 이들이 품었던 희망과 기대는, 현실이 됐다.


주요 부문 휩쓴 봉준호 감독의 선물


"오늘 밤 취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내일 아침까지도요."


봉준호 특유의 유머는 아카데미 시상식 내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국제장편영화상 수상 직후 봉 감독은 각본상 수상 때보다 좀 더 길게 소감을 이어갔다. 봉 감독은 수상 소감에도 다 '계획'이 있었다.


"이 상의 카테고리 이름이 바뀌었잖아요. 국제장편영화상으로 바뀌었는데, 첫 번째 상을 받아서 더더욱 의미가 깊은 것 같고, 이름이 상징하는 바가 있는데 오스카가 지지와 성원을 보냅니다."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이란 이름을 국제장편영화상으로 바꾼 아카데미 위원회의 결정을 향후 '다양성'을 더 고려하겠다는 제스처라 다시금 강조한 봉 감독. 그는 "이 영화를 함께 만든 배우와 멋진 스태프들이 와 있다"며 <기생충>의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 들의 이름을 열거했고, "모든 예술가들에게 찬사를 보낸다"며 기쁨을 함께했다.


그러자 객석에 앉은 이선균이 나란히 앉아서 박수를 치던 배우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날 것을 권유했고, 송강호와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박명훈, 이정은 등 <기생충>의 배우들 모두가 봉 감독과 함께 박수를 받았다.


무대 위 봉 감독은 "저의 비전을 실행할 수 있게 해준 바른손과 CJ, 네온에게 감사한다"며 제작사와 투자배급사, 북미 배급사에도 인사를 잊지 않았다. "내일 아침까지 취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마지막 유머와 함께.


봉 감독이 이후 감독상과 작품상을 받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 준비해 놓은 감사 인사를 모두 방출한 것이다. 하지만 훨씬 더 감동적인 순간이 남아있었다. 봉 감독의 유머와 센스를 전 세계인이 확인하는 순간이자 한국영화 사상 다시 보기 어려울 감동적인 명장면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전한 '엄지척'의 감동

   

▲ 10일(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했다. ⓒ AP-연합뉴스


"좀 전에 국제장평영화상 수상하고 오늘 할 일은 끝났구나 릴랙스 하고 있었는데... 너무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 제가 영화공부 할 때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책에서 읽은 말인데, 누가 하신 말이냐하면... 존경하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하신 말입니다.


제가 학교에서 마틴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했던 사람인데, 같이 후보에 오른 것 만으로도 영광이고, 상을 받은 줄 전혀 몰랐습니다. 제 영화를 미국 사람들이 모를 때, 리스트에 뽑아 좋아해줬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게도 감사하다. 아이 러 브유. 함께 후보에 오른 샘(멘데스)과 토드(필립스)도 너무나 존경하고 멋진 감독입니다. 아카데미 측에서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서 나누고 싶습니다."


예상치 못한 수상에, 생중계를 진행하던 이동진 평론가는 그저 탄성만 질렀다. 오래도록 기립박수가 이어졌고, 봉 감독 역시 무안해 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소감을 이어갔다. 봉 감독이 자신에게 존경을 표하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엄지척'을 해보이며 함께 뭉클해 했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도 연신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렸다.


아마도 92회를 맞은 아카데미 시상식 사상 통역사가 가장 오래 수상 소감을 통역하는 장면으로 기록될 만했다. 재차 "내일 아침까지 술을 마실 것"이라며 특유의 위트를 자랑한 봉 감독을 시상자이자 올해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인 스파이크 리 감독이 격려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 시간 넘게 이어진 시상식의 마지막, 명배우 제인폰다의 입에서 <기생충>이 호명됐다. 각본상을 시작으로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에 이어 작품상 등 <기생충>이 총 4개 부문, 남녀 주조연 연기상과 촬영상을 제외한 주요 3개 부문을 휩쓰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명배우 캐시 베이츠가 "오, 마이 갓"을 연발하고,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가 '물개 박수'를 칠 만큼. 


봉 감독과 송강호를 비롯한 <기생충>의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무대 위에 올랐고, 마이크 앞에선 바른손이앤에이의 곽신애 대표가 소감을 이어갔고, 이어 이미경 CJ그룹 부회장도 영어로 봉 감독과 한국의 영화 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말이 안 나온다. 상상도 해 본적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니 너무 기쁘고 너무 기쁩니다. 지금 이 순간에 뭔가 의미 있고 상징적인,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여진 느낌이 든다. 이러한 결정을 해 준 아카데미 회원분들의 결정에 경의와 감사를 드립니다.(곽신애 대표)"


봉준호 감독이 전한 놀라운 뉴스 이후


시상식 직전 "<기생충>보다 아카데미에게 <기생충>이 더 필요하다"던 < LA 타임스 >의 촉구(?)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주요 외신이 최대 경쟁자로 꼽았던 샘 멘데스의 < 1917 >은 기술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하는데 그쳤고, 그 자리를 비영어권 작품이자 '한국'영화인 <기생충>이 채웠다.


92번째를 맞은 아카데미의 이변 아닌 이변, 의도한 변화이자 선택이었다. 이날 시상식은 인종과 여성, 환경 등 다양성을 좀 더 고려하겠다는 아카데미의 다짐과도 같았다.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겨울왕국2>의 축하공연에 일본의 마츠 다카코 등 10여 개 국의 '엘사'(를 목소리 연기한 배우)들이 직접 오른 것이 대표적이었다.


또 <에일리언>의 시고니 위버와 <원더우먼>의 갤 가돗, <캡틴마블>의 브리 라슨이 나란히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장면도 인상적이었고, 봉 감독에게 감독상을 시상한 이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흑인 감독' 스파이크 리였다.


봉 감독이나 곽신애 대표의 언급처럼, 무엇보다 최우수외국어영화상 명칭을 국제장편영화상으로 바꾼 것이나 외국어영화 최초로 <기생충>에 작품상을 안긴 것 자체가 보수적인 아카데미로서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기생충>은 이러한 전 세계의 트렌드에 발맞춘 오스카의 변화의 제스처에 더 없이 안성맞춤인 대단한 '작품'이었던 셈이고.


<기생충>의 4개 부문 수상, 특히 작품상 수상 이후 여러 분석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 중 으뜸은 결국 인종에 대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기생충>의 수상이 북미와 전 세계에서 한국영화는 물론 아시아계 영화와 영화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상쇄하는데 일조하리라는 분석 말이다.

   

▲ 9일(현지시각)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주요 부문 4개 부문을 휩쓴 직후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이 공식 소셜 미디어를 통해 "Thank you, TheAcademy"라는 내용의 자축 게시물을 게재했다. ⓒ 네온

 

단순한 호들갑일 수 없다. 이미 북미 주요 언론들이 이런 전망을 내놨고, 이제는 그러한 실질적인 상쇄가 어떻게 이뤄질 것이냐, 또 이뤄가느냐를 고민하는 일만 남았다. 전 세계에서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 수상 효과'에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1962년 신상옥 감독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처음 오스카의 문을 두드린 이후 근 50 여년 만에 작품상을 비롯해 최초로 4개 부문을 수상한 한국영화 101년의 최대 선물이기도 하고.


한국영화 101년에 찾아 온  이 놀라운 소식에 탄성을 지른 이가 어디 이동진 평론가 뿐이겠는가. 우리 관객들이, 한국 영화인들이 충분히 감격하고 감동해도 좋을 만한 소식이 맞다. "내일 아침까지 마시겠다"는 봉준호 감독에게, <기생충>의 배우들과 제작진에게 더 없는 격려와 박수를 보내면서.


애초 '오스카 레이스'에 뛰어들며 "아카데미 시상식은 '로컬'"이란 말로 자신감을 드러냈던 봉준호 감독. 이제 '칸'에 이어 '오스카 작품상'을 품에 안은 그가 북미란 지역을 넘어 전 세계에 '한국영화'와 '봉준호'란 이름을 드날리는 일만 남은 듯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