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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Jul 03. 2020

'김민아', '중학생', 그리고 '성희롱'

"(코로나19 때문에 화상 수업을 하는 것이) 답답해도 어쩔 수 없어요." (중학생 A군)

"음~. 맞아요. 엄청 에너지가 많을 시기인데. 그 에너지는 어디에 풀어요?" (김민아)


중학생 소년이 말없이 웃었다. "왜 웃는 거죠?"라는 질문에도 웃음만 이어가자, 방송인 김민아가 장난스레 이렇게 재차 물었다.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나?"라고. 사실 여기서 멈췄다면 유튜브 방송 특유의 '애드리브'라 치부됐을 수도 있다. 김민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인터넷으로 수업 들으니까 어때요? (김민아)

"빨리 학교 가고 싶어요." (중학생 A군)

"근데 집에 있어서 좋은 점도 있나요?" (김민아)

"집에 있으면... 엄마가 잘 안 있어서 좋아요." (중학생 A군)

"(웃음 후 장난스레) 그럼 혼자 집에 있을 땐 뭐해요? (김민아)


최근 논란이 된 유튜브 채널 '대한민국 정부'의 한 코너인 <왓더빽> 시즌2의 3화 중 한 장면이다. 해당 방송은 평소 방송인 김민아가 '가방 털기'란 콘셉트로 국민과 직접 소통에 나서는 코너다. 시즌2에선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주로 생활하는 남녀노소 일반인들과 화상으로 대화하는 콘셉트였다.


제작진에 따르면, 지난 5월 1일 방송에 출연한 중학생 A군 역시 자택 온라인 수업 등에 대해 이야기하던 차였다고 한다.  

   

▲ 정부 공식 유튜브 채널 <왓더빽> 한 코너를 진행하는 김민아. ⓒ 유튜브


논란의 시작, '김민아', '중학생', '성희롱'


논란은 7월 1일 오후 <스포츠경향>의 <결국 '선 넘은' 김민아, 중학생 성희롱 논란→정부 유튜브 채널 해명 無>에서 촉발됐다. 해당 기사는 "방송이 나가자 일부 시청자의 불편한 시선이 쏟아졌다. 김민아가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적 대화를 시도한 것은 명백한 성희롱이라는 지적이다"라고 보도했다. 


연이어 이 매체는 <'아슬아슬' 김민아, 선넘는 행보의 '나쁜 예'>란 기사에서 그간 유튜브 채널과 tvN 예능 프로그램 <온앤오프> 등에서 솔직하고 직설적인 이미지로 주목받은 김민아의 "선 넘는 멘트"가 "새삼 화제"를 모은다며 몇몇 사례를 열거했다. 1보의 힘은 셌다. 이후 각종 매체들이 '김민아', '중학생', '성희롱'이란 키워드로 기사를 양산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김민아는 이날 오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개인적인 영역을 방송이라는 이름으로 끌고 들어와 희화화시키려 한 잘못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며 "저로 잘못된 일, 제가 책임지고 상처받은 분들께 모두 직접 사죄드릴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해당 중학생과 부모에게도 직접 사과하겠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정부' 채널 역시 아래와 같은 사과문을 게재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학생 출연자와 코너 진행자인 김민아 님께서 나누는 대화 중 일부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있어 해당 부분을 수정해 해당 편의 완성도를 좀 더 높여 재게시 하고자 현재 영상을 잠시 비공개로 설정해 놓았습니다. 채널 시청하시는 국민 여러분들께 불편을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앞으로 유튜브 동영상 제작 시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럼에도, 논란이 여전히 이어지자 대한민국 정부 채널 측은 향후 김민아의 출연 여부 등을 포함해 향후 프로그램 방향을 숙고하겠다는 반응을 내놨다. 뒤늦게 '발굴'된 2개월 전 영상 하나가 JTBC 스튜디오 룰루랄라의 인기 유튜브 채널 <워크맨> 등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김민아의 이후 행보에까지 영향을 미칠 만한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그런데 논란을 촉발시킨 영상을 둘러싼 환경도 흥미롭지만, 이후 불거진 논란의 방향은 여러 문제점들과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논란의 영상이 던져 준 고민거리


'만약 남성 출연자가 10대 여성에게 그랬다면.'


일단 김민아가 책임을 짊어지고 응당 비판을 감내하는 것은 마땅해 보인다. 진행자의 성별이 여자든 남자든, 명확하다. 그걸 걸러내지 못한 제작진 역시도. 그간 유튜브 채널 특유의 '선을 넘는' 진행이 용인됐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하필, <왓더빽>은 '대한민국 정부' 채널이다. 성적 농담의 주체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여기까진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남성 출연자가 10대 여성에게 그랬다면'이란 전제가 개별 사안을 넘어 확장되고 있다. 인터넷 상에선 예컨대, 과거 물의를 빚었던 남성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언행들 몇몇이 소환되는 중이다. 


지난해 한 방송인이 10대 래퍼에게 "전화 번호 줄래요"라며 이른바 '번호따기'를 실행한 상황을 편집 없이 방송해 논란이 일었던 한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이나, 10대 여성 출연자에 대한 성희롱‧폭행 의혹이 일었던 EBS 프로그램을 언급하는 이들과 매체가 등장한 것이다.


풀이하자면, '만약 남성 출연자가 10대 여성에게 그랬다면'이란 가정이 '여자는 되는데, 왜 남자는 안 되나'를 넘어 '한국사회는 왜 여성에게 관대한가'란 일종의 남성 역차별에 대한 알리바이로 소구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여성을 향한, 혹은 10대 여성을 향한 성적 대상화는 여전히 대중문화의 주류적 시선이라 할 수 있고,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논란이 된 SBS <편의점 샛별이> 역시 남성 중심적인 시선이 작품 전체에 깔린 드라마다. 최근 들어 많이 개선됐다는 평가지만, 이런 예들은 '여전히' 차고 넘친다.


김민아의 성적 농담에 비롯된 논란이 '한국사회는 왜 여성의 성적 농담에 관대한가'에 대한 일반적인 사례나 남성 역차별에 대한 알리바이로 범용되기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한 방송인의 실수를 사회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애초 언론이 성적 농담(언동) 등과 같은 표현이 아닌 '성희롱'이라 규정한 것 역시 애매하다. 통상 '상대방이 불쾌하면 성희롱일 수 있다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대법원이 판단한 성희롱의 범주는 꽤나 구체적이고 객관적이다. 법적 처벌과 손해배상 여부 등 종합적인 판단과 대중의 인식은 분명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기사 속 김민아의 발언 몇 개와 상대가 중학생이었다는 사실 만으로 '성희롱'이라 간단히 규정한 것이 옳은 것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성희롱이란 규정은 전체 영상, 즉 대화의 분위기나 이후 상대 중학생의 반응 등 상황 전체를 놓고 판단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전직 기자 출신 유튜버가 이번 논란을 여성가족부 담당자에게 문의한 결과, "불편함을 느꼈다는 것은 충분히 문제제기할 수 있겠지만 이게 성희롱이라는 판단은 쉽지 않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역시나 고민을 던져주는 지점이다.


방송인 김민아가 인지도를 쌓은 <워크맨> 속 캐릭터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애당초 김민아는 이른바 '선넘규'로 인기를 얻은 방송인 장성규의 '성 역할 바꾸기'로 등용됐다고 볼 수 있다. 거침없는 입담을 넘나드는 (젊고 예쁜)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야말로 김민아의 '킬링 포인트'이자 <워크맨>의 '셀링 포인트'였다. 그런 가운데, 회차가 거듭될수록 '선을 넘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호불호도 커져갔다. 


길지 않은 방송 경력의 김민아 개인에 대한 호불호 일수도 있다. 그러나,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적 농담은 없었지만) 그간 남성인 장성규가 <워크맨>에서 보여준 '선을 넘는' 언동은 별다른 지적을 받지 않았고, 도리어 장성규가 지상파와 종편에서 맹활약하는 인기의 근간으로 작용했다. 


반면 그러한 장성규의 캐릭터와 닮은, 그러나 여성인 김민아에 대한 '불호'가 이번 논란의  비판에 기름을 부은 건 아닌지도 의문이다. 한국사회가 유독 여성 연예인을 향한 남성 중심의 가혹한 시선과 잣대를 자랑해 왔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더더욱 그러하고.  


그 장성규조차도 한 여성 인플루언서를 팔로잉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었다는 사실은 꽤나 상징적이다. 이렇듯 다른 '선넘는' 농담들은 용인되면서도 유독 성적 농담에 엄격한 분위기가 앞서 언급한 성적 대상화는 물론이요 남성 중심의 문화에 대한 경계와 비판에서 비롯됐으리란 점 역시 고민해 볼 지점일 것이다.  


이번 논란의 무대를 제공한 유튜브는 자체 규정을 제외하고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혐오 콘텐츠 등에 대한 사용자들의 신고를 강화한 '노란딱지' 정책을 강화했지만, 여전히 유튜브는 '별의별' 콘텐츠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성적인 콘텐츠가 그러하다. 구글의 성인 인증만 통과하면, 성적인 장면이 포함된 영화도,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에선 엄두도 못 낼 진행자들의 선정적인 춤과 토크도, 그 밖에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수위를 조절하며 성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들이 넘쳐 난다. 일본 AV(어덜트 비디오) 배우들이 진행하는 채널이 대표적이요, 이들 채널의 구독자도 수십만을 상회한다. 


지상파에선 엄격한 잣대가 유튜브에선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 용인하고, 어디까지 규제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어느 누리꾼의 주장을 그대로 기사화한 한 매체의 기사는 의외로 사안의 본질을 짚고 있었다. '케이블 TV에서 물의를 빚은 남성 연예인과 해당 프로그램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가 제재를 가했는데, 왜 '대한민국 정부' 채널'은 김민아를 하차시키지 않느냐'는 주장 말이다. 


전 세계가 유튜브란 플랫폼에서, 놀이터에서 재미를 찾고, 소통하며, 심지어 어마한 수익을 창출하는 시대다. 정부 역시 '대한민국 채널'을 통해 그러한 대세에 영합한 것일 뿐, 보호지침 등으로 구글을 압박하는 것 외에 정부나 관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그리 많지 않다. 최근 한 프렌차이즈 업체를 대상으로 조작 방송을 한 유튜버를 정부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제제를 가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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