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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Feb 03. 2021

'무엇이든 물어보살', 그 강은 건너지 마오

▲ <무엇이든 물어보살>의 한 장면 ⓒ KBS JOY

 

아내가 사라졌다. 아니, 도망갔다. 아이를 두 명이나 내팽개치고 자취를 감췄다. 이 아빠는 이제 고작 23살이다. 근데, 알고 봤더니 두 아이가 친자가 아니란다. 맞다. <사랑과 전쟁>에나 나올 사연이다.


사연은 이랬다. 17살 때부터 만난 여자친구가 19살에 출산을 했다.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교제를 시작했다. 당연히 제 아이라 생각하고 키웠는데, 주변에선 자꾸 안 닮았다고 성화였다. 어쩔 수 없이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내 아이가 아니었다.


이 청년은, 아니 이 아빠는 이혼 절차를 밟던 도중 군 입대를 해야 했다. 아이는 처가에 맡겼다고 했다. 처가 어른들은 매정하게도 아이를 보육원에 보내버렸다. 그런데도 아이 생각이 자꾸 나더란다. 전역을 해서는 보육원에 찾아가 아이 얼굴도 봤다고 한다. 


그 와중에, 둘째가 생겼다. 아이 엄마가 둘째를 낳아 키웠단다. 그것도 모텔에서, 보모를 고용한 채로. 당연히, 본인 아이가 아니었다. 보모가 찾아와 비용을 청구하지 않았다면 언제 알게 됐을지 모를 일이었다. 심지어 본인 호적에 버젓이 두 아이가 자신의 친자로 등록돼 있었다. 드라마에나 나올 얘기였다.


어떻게 된 일일까. 실상은, 이혼 절차를 밟던 변호사 사무실에서 법원에 서류 제출하는 걸 누락시키면서 발생한 일이었다고 한다. 혼인 상태였으니, 아내가 혼자 아이들을 호적에 올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가능했던 것이고. 그렇게 이제 갓 군 입대를 마친 청년이 졸지에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다시 말하지만, 이 아빠는 이제 스물 셋이었다.


<사랑과 전쟁> 속 이야기가 아니다. 실화다. 지난달 18일 방송된 KBSjoy <무엇이든 물어보살>(이하 <무보살>) 속 의뢰인이 본인 입장에서 털어 놓은 사연이었다. 고민 상담 프로그램인 <무보살>에선 종종 어느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 속 사연이 펼쳐진다.


그것도 본인들이 스스로 방송 출연을 의뢰, 카메라 앞에서 고민을 털어 놓고 해결책을 물어본다. 이 스물 셋 아빠 역시 행방이 묘연한 아내를 향해 "제발 돌아와서 해결을 해 달라"고 읍소했다. 2019년 3월 첫 방송을 시작한 <무보살>은 때때로 별의별 상상도 못한 의뢰인이 등장, '막장'급 사연을 '셀프 폭로'해 왔다. 이 스물셋 애 아빠만이 아니다. 또 이런 사연은 어떤가.


'웰컴 투 막장 리얼 월드'

   

▲ <무엇이든 물어보살>의 한 장면 ⓒ KBS JOY


다섯 살 아이의 엄마가 의뢰인으로 출연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단다. 대학생 때 남편과 결혼, 아이를 키우느라 공부도 제대로 못 마치고 겨우 졸업만 했다는 이 엄마. 결국 합의이혼 끝에 한 달에 양육비 70만 원, 분할한 위자료 60만 원을 받게 됐는데, 그 돈으론 아이를 혼자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아 양육권을 가져와야 하나 고민이란다.


문제는 집안이 파탄 나버린 이혼 사유였다. 애초 사촌 동생들, 그러니까 친이모의 딸 둘과의 왕래가 잦았단다. 인근에 살기도 했고, 사촌동생들이 아이도 자주 봐주면서 남편과도 허물없이 친하게 지냈다.


짐작했겠지만, '그러던 어느 날'이 문제였다. 코로나19로 인해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더 친해진 것이 화근이었다. 친정과 시댁이라 동향이라 남편과 사촌 동생들이 동시기에 고향에 내려갔고, 거기서 부쩍 가까워진 둘째 사촌동생과 남편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친동생의 제보를 받았단다.


결국 의뢰인은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사랑과 전쟁>에 나올 만한 '모텔 현장 급습'을 직접 실천했단다. 남편과 사촌동생은 처음엔 불륜 관계를 부정했고, 이모네 식구들도 적반하장 펄쩍 뛰었다. 의뢰인의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며 집안을 들썩이게 만들자 그제야 불륜 관계를 시인했고 사과도 받았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 됐고 합의 이혼도 했지만, 아이 때문에 고민일 수밖에 없다는 의뢰인. 연이은 출산과 양육으로 겨우 대학만 졸업했기에, 이제와 이렇다 할 취직자리를 마련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아이를 꼭 키우고 싶지만, 양육비와 위자료로는 생활이 버겁다고도 했다. 지난달 11일 방영된 사연이었다. 


그런 의뢰인에게, <무보살>의 진행자인 서장훈과 이수근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렇다. <무보살>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여기에 있다. 피해를 입었거나 약자인 의뢰인에겐 되도록 의뢰인의 입장에서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조언과 충고를 건넨다.


다소 얼토당토않은 고민이거나 비현실적인 고민을 털어 놓는 의뢰인(이거나 의뢰 대상인 출연자)에게는 따끔한 일침과 생활밀착형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이 비록 성공한 방송인이자 주류 중년 남성들의 시선에 입각한 들려주는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일지라도 말이다.


유튜브 시대의 '충조평판'

   

▲ <무엇이든 물어보살>의 한 장면 ⓒ KBS JOY


그 '충조평판'에 대한 평가 역시 천차만별일 수 있다. 누구는 아재들의 '꼰대질'이라 치부할 수도, 누구는 그게 어디냐고,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공감을 보낼지 모른다. 맞다. <무보살>은 진지한 고민 상담 프로그램이 아니다. 케이블 방송의 예능 프로그램일 뿐이다. 게다가 상담을 받아주는 이들은 다름 아닌, 개성과 캐릭터가 뚜렷한 이수근과 서장훈이다. 상담의 수위나 '충조평판'의 성격, 프로그램의 분위기가 예상되지 않은가.


물론 여타 프로그램에서 일반인들의 고민 상담은 소위 '먹히는' 소재다. KBS <안녕하세요>는 햇수로 10년째 장수했다. 채널A는 <아이콘택트>를 방영 중이고, MBN도 오는 2월 김성주를 MC로 내세운 <극한 고민 상담소-나 어떡해> 방송을 예고했다. <사랑과 전쟁>의 20대 버전이라 할 만한 <연애의 참견>도 <무보살>과 같은 채널에서 3시즌째 이어지는 중이다.


여기에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종편 토크쇼는 열거하기 벅찰 정도다. 완벽한 타인의 인생사 희로애락을 멀찍이 들여다보면서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욕하는 상담 프로그램은 라디오 전성시대부터 지속돼 왔고, 그건 유튜브 시대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고.


<무보살> 역시 케이블이 아닌 유튜브에서 날개를 달았다. <무보살>은 1%만 넘겨도 최고 시청률을 넘보는 정도다. 하지만 '윤종신 회사'로 유명한 미스틱스토리가 제작하고, <무릎팍도사>의 여운혁 프로듀서가 기획한 <무보살>은 불과 2년 만에 KBS 유튜브 채널 'kbsN'과 미스틱스토리 채널 'MYSTIC TV'를 통해 개별 의뢰인의 영상 당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조회 수를 올리는 중이다.


kbsN 채널의 <피할 수 없는 운명.. 귀신(鬼神) 보는 남자>(2019년 11월) 영상은 870만, <유명한 엄마를 둔 딸의 흔한 고민>(2019년 5월) 영상은 82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MYSTIC TV' 채널의 <30살 시한부 암환자... 보살들을 오열하게 만든 그의 버킷리스트는?>(2020년 5월) 영상도 550만 조회 수를 돌파했다.


편집 분량에 따라 10~15분가량인 출연자 당 영상은 유튜브로 시청하기 최적화된 분량이고, 조회 수나 소재의 선정성, 출연자들의 화제성 등에 따라 수백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린다. 포털 연예면의 댓글 창이 유튜브로 옮겨 온 듯한 '유튜브 시대'의 풍경이다.


꼭 '막장' 사연이 인기 있는 것도 아니고, 사연이 모두 '막장'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실제로 <무보살>의 의뢰인들은 실로 다채롭고도 소소한 고민을 안고 '보살' 서장훈과 이수근을 찾아온다. 왜 아니겠는가. 나는 고민이 아닌데 상대방은, 남들은 불편하고 이상하게 여기는 것, 나는 대수롭지 않은데 남들은 침소봉대하는 것들이야말로 '나만의 고민'이지 않은가.


막장과 고민 상담, 그 경계에서

   

▲ <무엇이든 물어보살>의 한 장면 ⓒ KBS JOY

 

<무보살>은 여전히 그 경계를 넘나든다. 그것도 아주 잘, 매우 능수능란하게. 앞서 소개한 '막장급' 불륜과 이혼과 같은 사연은 사실 일부다. 대부분 주변에서 대수롭지 않게 봤거나 들어봤음직한, 혹은 '그럴 수 있겠다' 싶은, '그래도 참 힘들겠다' 싶은 고민의 변주가 대부분이다. 물론 '세상에 이런 일이'라거나 '역대급 분노'를 자아내는 사연도 빠지면 섭섭하다.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이를 테면, 누구는 어릴 때 헤어진 부모를 찾고 싶고, 다른 누구는 그렇게 헤어졌던 부모가 이제 와서 돈 때문에 접근하기도 한다. 어떤 탈북민은 래퍼가 되고 싶고, 어떤 탈북민은 생계가 걱정이다. 말 그대로, '세상만사 요지경'이다. 이야말로 일반인 고민 상담 프로그램의 묘미 아니겠는가. <무보살>의 세계에서 성형 중독은, '모솔' 고민은 '세상의 흔한' 고민이다. 홍보하러 나온 연예인은 찬밥 신세인 건 당연지사일 테고.


문제는 어디를, 무엇을 지향하는 가다. 방영된 지 2년을 넘고 유튜브를 기반으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무보살> 역시 주요 시청 층의 요구에 복무할 수밖에 없다. 앞선 두 사연 모두 20대 의뢰인의 사연이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튜브를 통해 <무보살>을 소비하는, 어리고 젊은 의뢰인이 삼촌뻘인 서장훈과 이수근에게 고민을 털어 놓고 방송의 영향력을 통해  현실 속 실제 고민을 해결하려는 패턴이 최근 몇 회째 도드라진 건 사실이다. 


연장 선상에서, 시청률이 오르고, 조회 수가 오를수록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사연에 대한 유혹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앞서 소개한 사연이 이른바 <사랑과 전쟁>급이란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을 것이고.


이에 발맞춰, 일반인들이 익명으로 고민 상담을 올리는 소위 '네이트 판' 수준의 독한 사연들이 연예면 기사로 활발히 소비되는 중이다. 언뜻 후반으로 갈수록 논란을 자처했던 <안녕하세요>가 연상된다. 점차 자극적이다 못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때때로 '이건 방송사가 아니라 경찰서를 찾아가야 될 사연'이라는 반응을 심심치 않게 이끌어내며 논란을 자처했던 바로 그 '대국민 고민 상담' 예능 말이다.


물론 <무보살>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의뢰인들의, 출연자들의 쉬이 경험하지 못할 힘겨운 고민을 웃음의 소재로 활용하지도, 선정적인 대상화로 전락시킬 생각은 없어 보인다. 적어도 일대일 대면 상담이란 형식이 그걸 허용치 않는다. 적지 않은 출연자들의 의도 또한 현실에서 절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예컨대 헤어진 부모를 찾고 집나간 아내에게 돌아와 달라 호소하는 등의 고민을 방송의 힘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순수함이 엿보이고.


<사랑과 전쟁>도 그랬다. 비단 '불륜'과 같은 선정적인 소재만으로 인기를 얻은 건 아니었다. 적재적소 동시대와 호흡하는 명민한 감각이 있었다. 영화 <타짜>가 흥행하면 도박에 빠진 아내 때문에 이혼한 커플이 등장했고, 소위 '강남엄마'의 자식교육이 뉴스에 오르내리면 정확히 같은 소재를 극화했다. 어떤 면에선 다채롭기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소재와 함께 동시대 조류를 읽는 감각이 뛰어났기에 장수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무보살> 역시 자막과 편집에서, 의뢰인들의 선택 면에서, '충조평판'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면에서 그런 명민한 감각이 요구되고, 또 지금까진 일정정도의 성과를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필터링이 관건일 게다. 더 심한 사연, 더 자극적인 고민들이 넘쳐나는 게 '리얼 월드'다. 도를 넘지 않는 선에서 그런 타인의 삶을 엿보고 싶어 하고, 남의 불행 역시 어느 정도는 즐기거나 반대로 동정을 보내기도 한다.


그런 이중적이고도 일정정도는 간사하기도 한 시청자들의 욕구를 어느 선까지 만족시키고 또 어느 선까지 제어할 것인가. 그건 오로지 의뢰인들의 사연을 고르고 사전 인터뷰를 진행하는 제작진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결국 <무보살>이 '막장' 사연에의 유혹을 어떻게 잘 버텨낼지, 또 그 경계 위의 줄타기를 얼마나 현명하게 끌고 갈지 지켜보도록 하자. 그 헷갈린다는 '충조평판'의 늪을 잘 헤쳐나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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