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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Aug 31. 2021

세계 최대 빈국이 맞은 코로나19 최악의 위기

EIDF 2021  <누가 영웅인가>와 <코로나 그리고 전쟁>

"지난 1년 7개월 동안 정말 인력을 갈아 넣는 식으로 일을 버텨 왔는데, 그러다 지금은 더 이상 못 버틴다, 바꾸기 위해 뭐라도 하자. 이런 마음으로 (파업을) 결단했는데, 실제로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지 저희는 너무나 절망스럽습니다." (29일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KBS <뉴스9> 인터뷰 중)


파업은 예고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파업이 목적이 아닙니다"라는 말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란 이중적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렇게 간호사 출신인 나 위원장은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에게 꼭 봐달라고 했다. '번아웃'에 시달리는 의료인력의 절규를, 간호사들의 눈물을 봐달라고.


간호사들 및 의료 인력들이 코로나 시대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영웅들이 '번아웃'에 시름하며 쓰러지고 일터를 떠나고 있다. 나 위원장은 "실제로 병원 근무 간호사 중에 5명 중에 4명이 사직을 고려하고 있고, 또 신규 간호사 중에서는 1년 이내 사직률이 42.7%에 달합니다"라고 토로했다. 정답은 나와 있다. 근본적인 처방은 의료 인력 및 공공병원 충원일 수밖에 없다.


그 1년 7개월 사이 꾸준히 제기돼 온 해결책이다. 하지만 이 영웅들은 K-방역에 '올인'하고 접종률 상승에 사활을 건 정부가 이를 해결한 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더 늦기 전에 국민들 전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안이다. 그렇다면 나라밖 영웅들의 처지는 어땠을까.


2021년 EBS국제다큐영화제(EIDF 2021)에서 상영된 <누가 영웅인가>(I Am Not A Hero, 2021)와 <코로나 그리고 전쟁>(Covid and War, 2020)은 우리를 유럽과 중동으로 초대, 벨기에와 예멘의 영웅들은 어떤 희로애락을 겪었는지를 생생히 경험케 한다.


특기할 것은 두 나라 모두 코로나19와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특히 예멘은 내전 및 외세와의 전쟁이란 이중, 삼중고를 치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지구 반대편 영웅들이 벌이는 코로나19와의 전쟁을 간접 경험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이중의 감정을 유발시킬 수밖에 없으리라. 팬데믹이란 동시대 경험에서 우러나는 공감대, 그리고 바이러스로 인한 죽음에의 공포에서 비교적 안전하다는 안도감 말이다.


벨기에의 경우, <누가 영웅인가>

   

▲ <누가 영웅인가>의 한 장면. ⓒ 누가 영웅인가

 

"박수는 멈추지 않았으면 해요 덕분에 동네 분위기도 좋아지고. 우리 아이들도 엄마한테 박수 쳐주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전 영웅이 아니에요. 내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그렇다고 영웅은 아니죠. 우린 항상 사람들을 돌봤는데 왜 지금이죠? 정체 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을 보살펴서인가요? 우린 항상 일했는데 이제야 간호사의 존재를 알아차렸나 봐요."


병동으로 전달된 "팬데믹의 피로와 스트레스에도 인간애를 가지고 일하시는 게 느껴져서, 여러분을 위해 매일 밤 박수를 칠 겁니다"란 이름 모를 시민의 응원 메시지. 이에 대해 벨기에 에라스무스 병원 코로나19 E병동 간호사 메리엠 벨 하지 타우자니는 '나는 영웅이 아니다'고 못을 박는다.


그도 그럴 것이,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 인력들이 코로나19 환자라고 더 열심히 간호하고 진료하는 것도 어불성설 아닌가. '코로나19와의 전쟁'이란 상투적 표현 역시 "전장에서 죽이는 군인과 사람을 돌보는 우린 완전히 다르죠"라며 웃어 보이는 모로코계 간호사 메리엠.


이렇게 <나는 영웅이다>는 지난해 확산세가 격화됐을 당시 4개까지 코로나19 병동을 운영한 벨기에 에라스무스 병원 의료 인력들이 어떻게 코로나19와 싸워나갔는지를 관찰하기 위해 병원 안팎을 정성들여 관찰한다. 간호사부터 기술팀까지, 아프리카 콩고인에서부터 유럽 이탈리아인까지 다문화가 넘실거리는 이들 벨기에 의료 인력들은 무엇과 싸워야 했을까.

   

▲ <누가 영웅인가>의 한 장면. ⓒ 누가 영웅인가

 

집에 못 가고 병원에 상주하는 일은 다반사다. 중환자실 전문의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악몽을 꾼다고 했다. 퇴원하는 환자들에겐 병원으로 다시 돌아오지 말라는 게 축하인사가 됐다. 그래도 하루에 3번은 아이들과 통화한다는 '엄마' 간호사는 미안함을 토로했다. 환자들과 접촉하다보니 의심 증상이 생긴 의료진은 스스로 검사소로 향해 검사를 받는다. 환자복 등 바이러스가 남아있을지 모를 폐기물을 담당하는 직원은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맞다. 벨기에의 종합병원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다른 점이 있다면 확산세가 거세졌을 당시 '록다운' 조치를 취했다. 좀비영화 <살아있다> 속 아파트 창 너머로 서로 인사하고 감사 인사를 전하는 풍경이 펼쳐졌던 것이다. 영웅으로 칭송받는 것과 별개로 죽음과 가장 가까운 의료 인력들 역시 고립감과 싸워야 했다.


물적 지원도 문제였다. 스태프 회의에서 한 노년의 의료진은 카메라를 향해 "돈을 풀어라. 약속한 수백만 달러는 어디 있나. 부끄러운 줄 알아라. 우리 모두는 분노한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나는 영웅이다>는 그럼에도 환자 하나하나에게 온 힘을 쏟는 의료진들의 고군분투를 담담한 듯 존경의 시선으로 견지한다.


태블릿 PC를 통해 말도 못하고 누워있는 환자와 가족들과의 만남을 이어주고, 임종을 앞둔 환자의 가족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방문을 안내하는 의료진의 노력 앞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유럽 병원은 죽어가는 환자와의 만남을 길게 허용하지 않지만 벨기에는 그런 비인도적인 처사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하는 중환자실 의사의 고뇌는 사망자가 급속도로 늘었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더 깊어 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메리엠은 "시작은 있지만 끝은 안 보이는 보건위기 속에 불확실성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털어놨다. 실제 벨기에는 지난해 10월 일일 신규 확진자가 2만 명까지 급증했다 현재 1천~2천 명대를 유지 중이다.


영화는 코로나19 병동 모든 환자가 퇴원하는 시점에 끝을 맺는다. 일종의 해피엔딩이지만 현실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가 경험 중인 것처럼 훨씬 끈질기고 독하다. 언젠가 지칠지 모르겠다던 메리엠 간호사와 에라스무스 의료진들은 '번아웃'을 이겨내며 여전히 잘 버티고 있을까.


예멘의 경우, <코로나 그리고 전쟁>

       

▲ <코로나 그리고 전쟁> 중 한 장면. ⓒ 코로나 그리고 전쟁

 

<누가 영웅인가>가 전 세계인 누구도 피할 수 있는 팬데믹 상황이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면 <코로나 그리고 전쟁>은 공포와 한탄을 동시에 자아낸다. 세계 가장 가난한 나라인 예멘의 상황은 현지 의사의 표현처럼 "재앙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상상해 보라. 2014년 시작된 예멘 전쟁으로 13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350만이 집을 잃었다. 전쟁이 가져온 참혹한 빈곤과 기아는 그대로인데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더해진 상황을.


관찰자는 BBC의 나왈 알 마그하피 기자다. 코로나19 발발 초기 수도 사나의 시장에서 만난 예멘인들은 "바이러스는 없다", "신성한 무슬림이라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는다"는 위험천만한 말을 내뱉고 있었다. 먹고 살 길이 없으니 시장에 나올 수밖에 없다는 그들은 바이러스 노출되기 쉬운 최악의 환경에서 살고 있는 듯했다.


2020년 7월, 다큐 제작진은 예멘 북부를 다시 찾았다. 이곳은 이란이 지원하는 정부 반군 후티가 지배하는 곳으로, 미국과 영국이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아랍동맹 및 예멘 정부군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지역이다. <코로나 그리고 전쟁> 제작진은 이 예멘 북부를 촬영한 최초의 취재진이었다.


<누가 영웅인가> 속 벨기에에서 확진자가 최대치를 향해 찍었던 지난해 여름, 후티는 코로나19 상황을 부정하는 중이었다. 그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반군 책임자는 카메라 앞에서 "우리는 잘 통제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군도 소셜 미디어를 막진 못했다. 코로나19의 공포에 휩싸인 예멘인들은 이웃들이 코로나19로 죽어 나가는 광경을 직접 촬영, 소셜 미디어에 게시했다.

   

▲ <코로나 그리고 전쟁> 중 한 장면. ⓒ 코로나 그리고 전쟁

 

망명 정부의 임시 수도인 아덴의 상황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여러 무장세력들이 속출하는 임시 수도의 병원들이나 의료 인력들도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장비와 인력이 부족하니 사경을 헤매는 환자들도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손도 못 써보고 목숨을 잃은 환자들은 장례식도 제대로 못 치르고 묘지로 직행해야 했다. 매일이 시체요, 장례식이었다. "묘지 오기가 겁날 정도"라던 묘지 관리인의 증언과 묘지를 담은 장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코로나 그리고 전쟁> 또한 아덴의 여러 의료진과 길게 인터뷰를 했다. 그중 병원 간호사는 "환자를 돌보고 싶어도 할 일이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쟁이 심화되며 구호물자가 끊긴 것은 병원도 마찬가지였다. 본인 스스로도 가족을 놔둔 채 병원에 출근하는 것이 겁났다는 이 간호사는 의사도, 환자도 모두 빠져나갔던 병원에 의료 장비와 함께 국경없는 의사회가 찾아왔을 당시 안도감을 표현하며 처음으로 웃어 보였다.


그 안도감도 잠시, 병원장은 국경없는 의사회가 구호물자를 빼돌린다는 이유로 그들을 퇴출시켰다. 아무리 전쟁과 빈곤에 허덕인다고 해도 정치는 살아 있는 법. 아덴의 주지사는 구호 자금을 빼돌리기까지 했다. 의료진의 월급으로 쓰일 돈도 그렇게 사라졌다. 방역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질 뿐. 확진자 집계도 제대로 되지 않는 그 곳엔 책임을 지는 이도, 계획을 세우는 정치가도 찾아 보기 힘들었다.


그리하여 <누가 영웅인가>와 <코로나 그리고 전쟁>의 결말은 극렬히 대비된다. 전자가 코로나19와 싸워나갈 수 있는 제1세계 유럽의 여력을 확인시켜준다면 후자는 제3세계 세계 최대 빈곤국가 국민들이 코로나19로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 그리고 전쟁>의 결말, 2020년 8월 예멘 북부 이슬람은 미국이 돈을 댄 사우디의 대규모 폭격으로 초토화된 지역이다. 그 폭력으로 인해 말을 잃고 장애와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마을의 유일한 의료 센터를 찾는 것.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미국 등 구호와 의료지원마저 줄어든 상태에서 아이도, 의료 센터를 운영하는 간호사도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평등하다. 코로나19가 빈부를 가릴 리 없다. 대한민국을, 벨기에와 예멘을 가리지 않는다. 각국의 영웅들은 오늘도 그렇게 바이러스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으리라. 불평등한 빈부 격차와 각자 주어진 한계를 딛고 인간의 존엄을 위해, 생명을 위해 싸우는 영웅들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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