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박국 Aug 02. 2016

너무 힙스터 같지 않나? 현대카드 바이닐 & 플라스틱

<파운드> 2016.8 기고

얼마 전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Life is Strange)>라는 어드벤쳐 게임을 했다. 예술 고등학교에 다니는 주인공 맥스 콜필드(Max Caulfield)는 독백을 통해 예술가의 스테레오타입을 비웃고 자신도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의 독백 중에 이런 게 있다. "언제 한번 중고품 할인점 가서 LP 레코드 하나 사야겠어. 음, 그건 너무 힙스터 같나?" 여기서 힙스터는 멸시의 대상이다.

전 세계에서 LP 레코드가 가장 많이 팔리는 곳은 어반 아웃피터스(Urban Outfitters)다. 레코드숍이 아닌 큰 규모의 셀렉트 숍이다. 현재 이곳에서 'Girls Night'이라는 테마로 셀렉트 해 놓은 레코드는 왕년의 스타인 스파이스 걸스(Spice Girls)와 마돈나(Madonna)부터 비욘세(Beyonce)와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같은 현재의 팝스타 그리고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와 캣 파워(Cat Power) 같은 인디 아티스트까지 다양하다. 사회학자 리처드 L. 피터슨(Richard L. Peterson)의 "최근에는 사람들이 속물이라는 꼬리표를 피하고자 문화 소비에 있어 잡식성 동물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지적처럼 인디만 듣는 건 너무 속물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맥스 콜필드의 대사를 옮기자면 '너무 힙스터 같'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한 달에 커피 몇 잔의 비용이면 언제라도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 시대다. 지금 LP 레코드는 본래의 의미인 음악을 듣기 위한 미디어로만 여기기에는 다양한 맥락 안에 놓여 있다. 누군가는 원래부터 LP 레코드로 음악을 들었고 지금도 그렇게 한다. 다른 누군가는 디지털화 되지 않은 음악을 찾기 위해 LP 레코드를 뒤진다. 어떤 이는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기 위해 LP 레코드로 음악을 듣고 다른 이는 좋아하는 음악가의 뭔가를 소장하고 싶어 산다. 일부는 LP 레코드를 사는 자신이 음악 마니아처럼 보이는 걸 즐길지도 모르고 구입한 한정반의 가격이 오르는 것을 기대할지도 모른다. 개중에는 엘피는 장식만 해 놓고 편한 스트리밍으로만 음악을 듣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LP 레코드를 사고 모은다.


<레트로 마니아>에서 사이먼 레이놀즈는 ‘시간이 흘러 물체로서 음악에 관한 대중의 기억이 희미해지면, 음반 수집은 점점 더 비정상 적인 생활 방식, 즉 이해하기 어려운 노력 낭비와 돈 낭비에 가까워질 것’이라 이야기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노력 낭비와 돈 낭비는 한편으로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구별 짓는 좋은 수단 중 하나다. '다르다'가 브랜드의 키워드인 현대카드가 한남동에 국내 최대 규모의 레코드 숍 바이닐 & 플라스틱(Vinyl & Plastic)을 연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바이닐 & 플라스틱은 현대카드 공식 웹사이트의 컬쳐/라이프스타일 메뉴에 있다. 하위 분류로는 컬쳐, 스페이스, 라이프, 디자인드 바이 현대카드가 있으며 바이닐 & 플라스틱은 스페이스에 있는 곳 중 유일하게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다. 다른 곳이 공연장, 라이브러리, 전시장 등 경험을 선사하는 곳인데 왜 유독 바이닐 & 플라스틱만 레코드를 판매할까. 현대카드가 바이닐 & 플라스틱을 론칭하며 만든 3개의 CF는 '가지다', '만지다', '읽다'다. 이 CF는 모두 "요즘 음악 가져본 적 / 만져본 적 / 읽어본 적 있어?"라는 카피로 끝난다. 영상은 인스타그램의 정사각형 프레임으로 제작됐다. 등장하는 이는 젊은 층으로 보인다.


현대카드는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 젊은이들에게 바이닐을 구입하는 '남들과 다른'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웹진 비즐라(Visla)의 인터뷰에서 현대카드 측은 "상업적 목적이 아닌, 아날로그 감성과 다양한 음악 경험을 제안하는 브랜딩 공간으로서 바이닐 앤 플라스틱을 오픈했다."고 오픈 목적을 밝혔다. 그 뒤로는 "한 번도 바이닐을 접하지 못한 젊은 층을 대상으로 전체적인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며, 동시에 음원 유통 중심의 시장에서 음반 소유의 시장으로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안타깝게도 바이닐 & 플라스틱은 시장을 확대하기 전 기존 시장부터 침해했다. 다른 현대카드 컬쳐 프로그램이 그랬던 것처럼 바이닐 & 플라스틱 역시 현대카드로 결제하는 이에게 20% 현장 할인을 제공했다. 이 것만으로도 바이닐 & 플라스틱의 산 너머에 있는 오랫동안 중고 LP 레코드를 취급해온 숍의 매출이 10-30% 정도 감소했다. 이 사건은 국내 레코드 LP 시장이 얼마나 작고 특수한지 보여주는 예가 됐다. 새 편의점을 오픈하는 일이었다면 위의 조건이 다른 편의점에 크게 타격이 되는 일은 없었을 거다. 수도권의 중소 레코드숍 사장들이 바이닐 & 플라스틱 앞에 모여 규탄 집회를 열었다. 현대카드가 LP 레코드라는 매개를 통해 구축하려던 맥락과 이를 통해 얻으려 했던 브랜딩은 미처 고려하지 못한 맥락에 의미를 잃었다. 바이닐 & 플라스틱은 중고 음반 판매를 중단하고 할인율을 20%에서 10%로 낮추는 대책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카드는 거듭 '상업적인 목적은 없다'고 밝혔다.

이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바이닐 & 플라스틱이 레코드를 20%나 할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상업적인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이닐 & 플라스틱은 현대카드를 브랜딩하고 소지한 이에게 프리미엄을 주기 위한 공간이다. 그들이 기대한대로 시장 확대가 정말 잘 돼서 바이닐 & 플라스틱의 매출이 어마어마하게 오른다고 하더라도 현대카드 전체의 매출에 비하면 미미할 것이다. 반면 중소 레코드숍은 상업적인 목적을 가진 곳이다. 수익을 내지 않으면 운영될 수 없다는 의미다.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현대카드는 금융사다. 금융과 관계없는 사업은 모두 마케팅과 브랜딩을 목적으로 한다. 대부분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기업을 을로 고용해 현대카드의 이름으로 진행한다. 회사의 이름을 알리고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일이다. 현대카드의 경우 '다르게' 만들려고 했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바이닐 & 플라스틱은 이런 면에서 실패한 사업이다. 현대카드는 이번 사건으로 늘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문화 시장에서 시장을 교란하고 기존의 문화를 파괴하는 대기업과 다를 바 없게 됐다. 문화에서 다름을 만드는 건 다양성이다. 이제 현대카드도 모든 걸 자신들의 이름으로 하려는 전략은 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대신 문화를 융성하게 만드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계속 자신의 브랜드를 갖고 그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뒤에서 후원하는 건 어떨까. 예를 들어 올해로 6회째를 맞는 서울 레코드 페어는 매회 적자를 내며 운영되고 있다. 현대카드가 이를 후원한다고 나섰으면 어땠을까? LP 레코드 하나를 사려고 하더라도 너무 힙스터 같지 않을까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이제 현대카드도 명분을 내세워 하는 일이 그저 티만 내는 일 같지 않은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