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반지하
반지하에 사는 나는 창문을 속 시원하게 열고 지내지를 못한다.
날이 좋을 때면 나가지 않고도 창문을 열어 좋은 날씨를 만끽하고 싶은데,
열게 되면 지나가는 이들에게 집 내부를 보여주며 이런 사람이 여기 살고 있다고 동네 주민들과 눈인사를 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차들이 길을 다니며 내 집안으로 바깥세상에 있는 먼지들을 끌어다 놓아줄 것이다.
그 꼴은 내가 차마 볼 수 없어 할 수 없이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나가야 한다.
오늘은 유독 날씨가 좋았다.
마치 모자이크가 된 듯한 창문 너머로 느껴지는 해의 손짓에 나는 나갈 수밖에 없었다.
걸어서 10분 정도 가면 꽤나 큰 공원이 나오는데 공원을 지나면 스타벅스가 있다.
오늘은 공원을 슬쩍 걷다가 스타벅스에서 말차 라테 한 잔에 책 읽다 오면 딱이겠거니 하고 책 한 권을 데리고 나섰다.
걷다 보니 슬슬 더워지기 시작했고 다리에서부터 스멀스멀 뜨거운 땀이 나올까 말까 간을 보았다.
그리 상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분명 바지가 땀에 젖는 것 같은 느낌인데 실상 땀은 아직 흐르지 않고 있었다.
처음 가보는 육교를 이용했다.
육교에 올라서자 시원한 바람이 잠시 쉬었다 가라는 듯 맞이해 주었다.
저 멀리 해는 슬슬 노을 질 준비를 하는 듯했다.
육교에서 보는 풍경이 너무 이뻐서 연신 두리번거렸다.
빼곡한 나무들과 짙게 뽐내고 있는 초록빛 잎들은 봐도 봐도 성에 차질 않아 아예 멈춰 서서 보았다.
그러곤 이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걸어서 도착한 공원은 또 어찌나 아름답던지.
이 풍경을 내 눈에 다 담고 말겠다는 욕심을 부린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드넓은 호수 안에 물은 잔주름이 지고, 풀잎들은 어서 오라고 손을 흔든다.
구름은 자기 몸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는지 아주 느긋하고 여유 있게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이 무섭지도 않은지, 익숙한 듯 잔디 이불을 깔고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청둥오리 두 마리도 보았다.
마침 전망 좋은 곳에 벤치들이 쭉 앉아있었다.
이 풍경에 홀려 목적지는 잊은 채 벤치에 가만히 앉아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멍하니 보았다.
그저 멍하니 눈앞에 자연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들을 보았다.
머리가 잘 되었거나 이쁜 옷을 입고 뽐내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이들도 마찬가지일까.
저물 때가 되었는데도 해는 이 아름답고 선선한 저녁의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초과근무를 한다.
산 너머에서 머리가 보일까 말까 하는 와중에도 안간힘을 다해 비추고 있는 걸 보았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이 날씨를 즐기고 있다는 걸 아는 건지.
빛이 얼마나 강한지 해가 산 뒤에 숨었는데도 아직 이렇게 환하게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실컷 구경을 다하고는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놓치고 있는 세상은 없는지 연신 두리번거리며.
놓치지 않으려면 정말 구름처럼 걸어야 했다.
아주 천천히 느긋하게.
그래도 놓치게 마련이다, 난 구름이 아니니까.
다시 반지하 속으로 돌아가는 길.
해는 내일을 위해 달에게 밤을 맡긴다.
해가 지고 나니 많은 것들이 가려진다.
나뭇잎들의 푸른 기운은 사라지고 시커먼 형체의 실루엣만을 남기고,
느긋하게 산책 중이던 구름들도 나처럼 반지하에 사는지 어둠 속으로 점점 들어가고 있었다.
전등에 의지한 채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는 나의 모습도 점점 어둠 속에 가려진다.
집에 들어서면 밀려오는 꿉꿉함, 해라도 쨍하게 비추어줬으면 덜 꿉꿉할까.
왠지 달빛은 집안을 더 습하고 축축하게 만들어 나까지 젖어들어간다.
집안의 모든 것들이 축축하게 젖어 곰팡이가 피기 전에 어서 조그마한 제습기를 가동한다.
물에 잠긴 듯 무거웠던 공기는 어느새 쾌적해졌다.
아쉽지만 젖어버린 나의 생각까지는 쾌적함이 닿질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며 이것저것 들쑤셔본다.
창 너머 희미한 달빛은 들쑤시고 있는 나를 방관하듯 그저 보고만 있는다.
그래봐야 어질러 질 뿐인데 하며.
내일 찾아오는 해에게 그것들을 말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