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vefaith Nov 14. 2020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어떻게널사랑하지않을수있겠어


* 스포일러가 무척 많습니다.



무척이나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왓챠 고마워!) 줄거리만 봐도 친구에서 연인이 되어가는 우당탕탕 이야기인 건 알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이었다. 누구나 약간은 꿈꾸지 않을 수 없는, 누가 보아도 둘을 흐뭇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영화. 쉴 틈 없는 대화,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 않은 웃음, 시작부터 끝까지 재즈를 얹다니. 이거 노렸네 노렸어.



믿기지 않겠지만 이게 첫 만남

해리가 샐리를 처음 만났을 때는 친구의 남친과 친구의 친구였다. 아만다를 사이에 두고 남자 친구인 해리와 친구인 샐리가 뜬금없이 18시간 동안 차를 타고 뉴욕에 오게 된다. 관계 구도 상 될래야 될 수 없는 사이다. 아니면 파국행 예약이다. 물론 둘은 처음부터 서로 케미가 엄청나고 독특하다. 해리의 진심인 듯 농담인 듯한 말은 설득력이 있으면서도 궤변 같다. 처음 만나선 인생 이야기를 해보라는 둥, 나는 몇 날 며칠 죽음을 생각한다는 말을 던진다. 심지어 영화에서 어떤 남자를 선택할 거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19금 이야기로 넘어가는데, 진지한 모양새지만 묘하게 웃긴다. 신동엽급으로 자연스러운 이 흐름을 어떻게 해리가 20대에 마스터한 것인지가 의문.


You're attractive.

샐리도 질 수 없다. 자기만의 미식 세계가 견고하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인지 소스는 주로 사이드로 빼는 주문 방식을 애용한다. 주문받는 사람들이 골 때릴 정도로 상세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능력자가 아니면 그냥 녹음을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시작부터 아, 둘은 된다 싶다. 샐리가 그 엄청난 주문을 하곤 더치페이를 하는 걸 보고 해리가 묘하게 미소를 짓기 때문이다. 눈치채지 못해도 괜찮다. 심지어 해리는 바로바로 머리에서 생각하는 건 실천하는 캐릭터라 쐐기를 박아주니까. 샐리를 보면서 한다는 말이 글쎄, 되게 매력 있다는 게 아닌가. 킬링 포인트는 샐리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고마워요, 해놓고 다시 갑자기 내 친구인 너의 여자 친구를 두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며 놀라고, 해리는 매력적이란 말은 그럼 못하냐며 다시 무르겠다 하는 부분. 해리가 하는 '수작'은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아서 매력적이었다. 반응을 해주지 않아도 멋쩍게 보이지 않고, 너무 절박해 보이지 않고. 아마 해리에게 너도 매력적이라고 말해주었으면, 해리는 막상 눈썹을 들썩이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을 듯싶다. 뭐, 나도 안다는 표정이겠지.


이들의 첫 만남이 역사적인 건 무려 남녀 사이가 친구가 가능하냐는 인간의 10대 난제(일명 '해리&샐리 난제')를 남겼기 때문이다. 샐리는 친구가 가능, 해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 남자이지만 친구로 지내는 경우가 있다는 샐리와 섹스가 있는 이상 남녀 사이에 친구는 불가능하다는 해리의 말은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도 반복된다. 술과 밤과 분위기가 있는 이상 남녀 사이는 열린 문이라고들 하니 사실 둘 중 누구의 말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 사이에 무슨 정답이 있겠나. 친구가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 할 부분은 아닐까. 섹스 같은 대화도 있는 법이고, 독백 같은 섹스도 있는 법. 여튼 이 날의 결론은 매력적이지 않으면 친구가 가능하겠지만, 매력적이면 친구는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잊지 마시라, 해리는 이미 샐리에게 매력적이라고 말하고 나서 이 얘기가 나온 거란 점.



이후 둘이 어영부영 함께 하는데 걸린 시간은 자그마치 12년 3개월. 이유를 한 단어로 말하면 타이밍이다. 만날 때마다 한쪽에, 혹은 둘 다 늘 곁에 누군가 있었고 그때는 마음이 깊지도 않았다. 두 번째 만났을 때, 해리가 샐리에게 첫 만남처럼 수작을 또 시작하는 듯하지만 해리는 곧 결혼을 앞두고 있고, 샐리는 해리의 지인과 만나고 있다. 해리의 결혼 소식에 샐리는 정말 신기하다는 듯이 빵 터진다. 해리, 네가, 결혼?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으니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그렇게 어이없어했던 해리랑 샐리가 그렇게 될 줄 그땐 몰랐으니 일어난 일. 하지만 이때는 자기 말을 번복하고 친구로 저녁을 먹자는 해리의 제안은 보기 좋게 굿바이, 해리라는 샐리의 한 마디로 끝나고 만다. 샐리에게도 결혼을 앞뒀다는 말이 조금 더 걸렸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해리는 샐리 레이더가 있는 게 분명해

쓰다 보니 둘의 만남은 늘 해리가 다가가는 걸로 시작이 된다. 서점에서 그렇게 대놓고 쳐다보는 건 또 뭔가! 세 번째 만났을 때, 해리는 6년간 결혼생활을 끝내고 이혼했고, 샐리는 만나던 조와 헤어졌다. 둘이 헤어진 이유는 공통적으로 결혼생활 때문이었다. 해리는 결혼생활을 더 할 수 없어서 헤어졌다.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로 가버렸다. 거짓말하려던 것도 해리에게 딱 걸려버렸고, 6년 만에 알게 된 진실은 더 충격적이었다. 아내는 해리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뿐더러,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다는 말을 들은 층격 때문에 해리는 잠 못 이루고 힘들어했다. 샐리는 결혼생활을 원해서 헤어졌다. 남자 친구가 결혼을 원하지 않아서 끝이 난 사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운동을 하고 열심히 일하고 잘 먹고 잘 잤지만 해리에게까지 우울함을 숨기진 못한 듯하다. 샐리가 꽤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편이었던 건 아마 누군가에게 자기 속 이야기를 터놓고 하지 않는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드러나진 않지만 알고 보면 혼자서 마음고생이 심했을 듯하다.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지만 깨어있는 시간에 옛 생각이 더 났겠지.


봤노라, 들었노라, 이겼노라

둘은 이상하게도 꼭 사람 많은 식당에서 19금 대화를 자주 하는데, 샐리의 숨겨왔던 연기력과 깡이 돋보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여기서 다시 흥미로운 난제st 대화가 시작된다.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섹스는 가능한가로 시작하여 여자들이 가짜 오르가즘을 구사할 수 있나, 남자들은 가짜 오르가즘을 구분할 수 있나까지. 해리가 마음에 들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와 만나 잠을 잔 건 그렇다 치고, 섹스 후에 빨리 집에 가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고 집을 서둘러 나오는 것에 샐리가 분노한 탓이다.


거짓말에 미안해하지 않는 해리가 여자들도 만족했을 거라는 확신에 샐리가 보여주는 가짜 오르가즘 연기가 압권.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샐러드를 먹는 샐리의 표정, 머쓱하게 웃는 해리의 표정, 주변 사람들의 동공 지진하는 표정, 그리고 아마도 그 대화를 다 들었을 옆 테이블의 할머니께서 샐리가 먹는 걸 그대로 시키는 장면. 모두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면 거짓말의 범위도 정해진 건 아니겠지.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뼈도 못 추리겠다, 못 말리겠구나 생각했을 해리. 어쩌면 해리가 샐리의 그 모습을 보고 더 매력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어디 가서 모욕당하고 올 사람은 아니겠구나 하는 통쾌한 성격에.



해리와 샐리에게도 묘한 순간들은 있다. 서로의 상처도 알고 별별 이야기를 다 터놓고 하는 친구가 되고 나서의 문제는 연인이 되는 것 자체보다는 연인이 되어 헤어질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대체로 이쯤 되면 사람들은 어차피 남녀 사이는 한쪽이 임자 생기면 끝이니 앞뒤 가리지 말고 연인이 되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어차피 평생 가는 남녀 사이 친구도 거의 없고, 친구를 잃을까 두려워 만나지 못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아주 마음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저 말이 맞더라도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연인이 되면 헤어질 수도 있고, 헤어지면 친구로도 남지 못하고, 그 소중한 사람 자체를 아예 잃어버리게 된다는 상실의 악순환. 평생 못 가더라도 그래도 오래 볼 수 있는 사이를 내 손으로 망치는 게 아닌가 싶은 두려움. 그래서인지 해리와 샐리도 남들은 쟤네가 무슨 친구냐 했을지 몰라도, 서로 가까워지지 않으려는 노력도 열심히 한다. 서로에게 각자의 친구를 소개해 줬더니 웬걸, 그 친구들끼리 연인이 됐다. 각자 연인도 만들어보지만 괜히 또 그 연인에게 고운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갖기는 아쉽고 남 주려니 아까운 거랑은 좀 느낌이 다른 게, 가질 엄두를 못 내는 느낌이다.


그런 둘에게 남녀 사이 친구 가능하냐는 난제를 시험해볼 수 있는 어느 밤이 찾아온다. 샐리가 몹시도 사랑했던 전남친의 결혼 소식에 영화에서 거의 처음으로, 아마 해리에게도 처음으로 펑펑 울며 무너지는 밤이 찾아온 것이다. 사실 결혼 소식보다는 결혼하지 않겠다며 헤어졌던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혹은 자신이 매력이 없어서 결혼하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하는 괴로움이 컸던 모양이다. 해리가 샐리에게 위로해 주다가 잠깐만 더 안아달라는 말이 한밤중으로 이어지는 사단이 난다.


남사친/여사친과 연인의 기로에서 실수라며 도망친 둘에게 남은 건 전과 다른 어색함이다. 능수능란하게 말만 잘하던 해리가 샐리에게 개처럼 잊어버리자는 둥, 섹스 한 번이 전부는 아니라는 둥, 네가 슬퍼서 안아달라며 우는 데 내가 어쩌겠냐는 말들은 사실은 다 나름대로 잊고 넘어가자는 뜻으로 한 말이겠지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다. 샐리가 먼저 안아달라고 해서 동정과 연민 때문에 그랬다는 말이어도 상처고, 예전처럼 서로 만나는 남자/여자 이야기 등 온갖 이야기를 하고 혼자 있는 사람들끼리 심심풀이 땅콩 같아서 또 상처라고 느껴지는 건, 이미 샐리가 해리에 대한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샐리가 연락이 잘되지 않자 해리가 샐리에게 쉬지 않고 음성 메시지를 남기고, 전화해달라고 노래도 부른다. 저 정도면 이미 해리도 같은 마음이 아닌가 싶다. 차라리 집 앞에서 기다리거나 찾아가서 이야기를 좀 하는 게 낫겠다 싶더니 12월 마지막 날엔 쉼 없이 달려 샐리 앞으로 달려가 사랑한다는 고백을 한다. 달리는 사이에 흘러나오는 곡이 It had to be you인 걸 보면 해리의 마음은 역시 기정사실화. 새해 전날 하려고 아껴둔 건 큰 그림이었다. 평상시에도 말을 잘하더니, 본론부터 이야기도 잘하고, 샐리를 좋아하는 모습을 속속들이 말해주니, 샐리가 밉다고 하면서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 툭 나온 말이 저 정도라는 건 무의식적으로라도 샐리의 모습을 담아두었고 놓치지 않고 그녀와 앞으로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는 걸 테니까.


영화를  때는 해리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리뷰를 쓰는 동안엔 해리의 말에 약간은 거짓말도 있겠다 싶다. 바로  장면에 혼자라서 허전하고 외로워하다가 고백을 해놓고 연말이라 외로워서가 아니라니! 사실  허전했지. 하지만  덕분에 각성한 거니  정도는 넘어가기로. 가을부터 겨울, 연말 연초에 허전하거나 외로워지더라도  때문에 누군가에게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알지 않겠나. 해리가 샐리에게 고백한  오랫동안 품고 있던 마음이고 샐리가 해리의 고백을 듣고   같다고, 네가 밉다고  번이나 하는 말이  같은 마음이라는 .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있겠나. 해리와 샐리에게 앞으로도 흥미로운 대화와 솔직한 시간이 계속된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을 뿐이다.


Harry:I've been doing a lot of thinking. And the thing is, I love you.

Sally:What?

Harry:I love you.

Sally:How do you expect me to respond to this?

Harry:How about you love me too?

Sally:How about I'm leaving.

Harry:Doesn't what I said mean anything to you?

Sally:I'm sorry Harry, I know it's New Years Eve, I know you're feeling lonely, but you just can't show up here, tell me you love me and expect that to make everything alright. It doesn't work this way.

Harry:Well how does it work?

Sally:I don't know but not this way.

Harry:Well how about this way. I love that you get cold when it's seventy one degrees out, I love that it takes you an hour and a half to order a sandwich, I love that you get a little crinkle above your nose when you're looking at me like I'm nuts, I love that after I spend a day with you I can still smell your perfume on my clothes and I love that you are the last person I want to talk to before I go to sleep at night. And it's not because I'm lonely, and it's not because it's New Years Eve. I came here tonight because when you realise you want to spend the rest of your life with somebody, you want the rest of the life to start as soon as possible.

Sally:You see, that is just like you Harry. You say things like that and you make it impossible for me to hate you. And I hate you Harry... I really hate you. I hate you.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불한당>,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