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쓰는 이유 』

작가로서의 고백이자, 독자에게 전하는 진심 어린 말

by 가을꽃나무

이곳 브런치에서 글을 쓰며 지금까지 다른 분들의 글도 읽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글을 쓸까?

다른 사람의 글을 읽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을까 궁금해진다. 그 생각이 길어져서, 밤에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글을 쓰는 이유가 뭘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글을 읽기 전에 늘 작가의 소개를 먼저 본다. 이분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으로 글을 쓸까. 그렇게 소개를 읽고 글을 읽는 게 어느새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글쓰기가 어쩌면 조금 변질되어 있는 건 아닐까. 몇 명이 읽었을까, 몇 명이 좋아해줬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글을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겼다.


예전 카카오톡을 열어 메시지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확인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 시절의 나는 늘 조급했고,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며 모든 메시지를 지워버리곤 했다.

지금은 다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카톡 대신 전화를 건다. 받지 않아도 다시 전화가 걸려올 것을 서로 안다. 그게 우리의 방식이고, 나의 패턴이다.

이제는 카톡에 연연하지 않는다. 끌려다니는 기분은 나와 맞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자유를 꿈꾸게 되면서 나를 가두는 느낌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아마 그래서 이곳이 나에게 그런 느낌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치유의 행위이다.


나는 기억을 정말 심하게 못한다. 건망증이라 부르기엔 조금 심하다. 숫자는 돌아서면 잊고, 방금 품은 생각도 금세 사라진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메모와 음성 기록에 기대어 살고 있다. 그런 내가 이곳에 글을 남긴다는 건 참 반가운 일상이었다. 오래 남길 수 있으니까.


솔직히 처음 시작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내 생각을 남기고, 삶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언젠가 아이와, 내가 지나온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아이가 성인이 되고, 자기 삶을 살아가며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그날을 상상한다.

하지만 문득 생각했다. 내가 그 모든 이야기를 다 해줄 수 있을까. 그래서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내 삶을 남겨두고 싶었다. 아이에게, “엄마는 이런 일들이 있었고, 이렇게 살아왔단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나는 말로 감정을 전하는 데 서툴다. 그래서 아이에게 마음을 건넬 때 노래를 대신했다. 아이는 들을 수는 있지만, 글자를 읽을 수 없었으니까.

노래는 내 마음을 닿게 해주었다. 그렇게 흥얼거리며 불러주던 자장가들이 기록으로 남아 동화책이 되었다. 글은 다 썼지만, 그림 앞에서 멈춰섰다.


머릿속에는 그림이 있는데 손이 따라주지 않았다. 나는 화가도, 그림 전문가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외주를 맡기기엔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그냥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 아이에게 주고 싶은데, 아직 그게 잘 안 된다. 결국 그렇게 시작된 게 글쓰기였다.


지금 나의 삶을 기록하는 건 나의 치유이고, 나의 발디딤이다. 누군가에게 위로나 도움을 주려는 마음은 아니다.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위로할 자격 있는 사람도 아니다.

아이와 웃으며 대화하고, 자연스럽게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의무적으로 글을 읽고, 의무적으로 좋아요를 누르는 그런 글쓰기는 하고 싶지 않다. 그건 나의 글의 의미가 퇴색되고 변질되는 느낌이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 한동안은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쓰기로 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 조용히 말하고 싶다. 나는 더 이상 의무적인 좋아요나 구독을 하지 않는다. 내 글은 작가로서가 아닌,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읽어주셨으면 한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고마움을 느끼지만, 억지로 찾아가 좋아요나 구독을 누르진 못할 것 같다. 나도 한 사람의 독자로서 나에게 필요한 글을 찾아 읽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글을 지속적으로 읽고 싶다면 그때 구독을 누를 것이다.


요즘은 AI와 역사에 관심이 생겼다. 아무래도 아이의 영향이 크다. 지금은 학습법보다,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춰 살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의 미래는 다르다. 시대의 흐름을 보며, 그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의 문화와 경제, 그리고 세상의 변화를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의 미래를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시대라고 믿는다. 그 기준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싶다. AI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리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그리고 역사도 중요하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나는 아이가 우리 역사를 올곧게 알길 바란다. 왜곡이나 부정이 아닌, 그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눈을 키웠으면 좋겠다.


아픈 것은 아픔으로, 힘든 것은 힘듦으로 인정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들다. 그럴 땐 언제든 뒤돌아보면, 부모가 곁에 서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렇게 힘듦을 받아들이며 살 수 있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게 엄마로서의 마음이다.


그래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결국 이 모든 것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흔들릴 때마다 ‘내가 왜 쓰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르면 다시 이렇게 글을 쓰게 될 것이다.

내 글이 인기가 없어도 상관없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글이지만, 인기 없는 글이면 또 어떤가. 그래도 괜찮다. 부끄럽지 않다. 내 과거는 내가 받아들이며 지나온 시간이다. 잘못을 깨달았다면, 고치고 사과하고 배우면 된다.

글은 나에게, 아이와 대화하기 위한, 그리고 나의 삶을 들려주기 위한 기록이다. 그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이 글은 단순히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정리한 기록이 아니다.

이곳에서 내 글을 찾아와 읽어주고,

좋아요나 구독을 눌러주는 모든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 마음들, 정말 감사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좋아요나 구독의 숫자에 흔들리지 않으려 한다.

나의 글을 지금 읽고 있는 당신이 독자로서 읽어주길 바란다.

나 또한 이곳에서 작가가 아니라 독자로 남고 싶다.


좋아요나 구독이 아니라,

한 편의 글로 이어지는 마음이면 좋겠다.

그 마음이 내 글의 시작이었고,

지금도 내가 다시 글을 쓰게 만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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