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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완 Feb 20. 2018

잘하지도 못하면서




 이런, 또 글을 쓰고 있다.

 불과 몇 개월 전, 출판사에 에세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최종 원고를 넘겨주며 다시 글을 쓰기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던 내가, 이렇게 또 글을 쓰고 있다. 잘하지도 못하는 글쓰기 때문에 그 고생을 해 놓고 또. 그림 그리는 사람이 어쩌자고 자꾸 글을 쓰는 걸까.


 사실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글을 쓸 생각은 없었다. 처음 에세이 연재를 시작할 땐 지금과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글은 없고 그림만으로 이루어진 ‘그림 에세이’가 그것. 그림 한 컷에 웃음과 감동, 홍삼진액처럼 진한 인생의 페이소스까지 담아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 그게 플랜 A였다. 그림을 업으로 삼고 먹고사는 사람으로서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차! 내가 실력 없는 일러스트레이터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지 뭔가. 실력 있는 작가들이야 그림 한 컷으로도 그런 것들을 전할 수 있겠지만 내겐 무리라는 걸 연재를 하면서 느꼈다.   

 그렇다면 플랜 B. 그림만으론 뭔가 부족하니 그림 밑에 짧은 글을 적어 부연설명을 하면 어떨까. 뭔가 아포리즘적인 짧으면서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멋진 문장을 적는 거야. 그래 그거야!

 하아, 그런데 그것도 참 쉽지가 않더라. 그림도 그림이지만 내 글쓰기는 더 한심한 수준이었다. 글쓰기에 대해 배운 적도 없고 독서도 많이 안 했다. 대학까지 나와서도 맞춤법 검사기에 의지해 글을 쓰고 있는 수준이니, 정말 초등학생 때 배운 한글 실력으로 글을 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주제에 아포리즘은 개뿔. 부족한 글솜씨 덕분에 부연설명에 부연설명을 더하다 보니 글은 구차하게 점점 길어지게 되었다는. 그러니까 내 글은 그림으로 승부를 보지 못한 일러스트레이터의 구구절절한 그림설명인 셈이고, 그마저도 횡설수설이다. 그런데 왜 계속하는 거냐고? 이게 하다 보니 상당히 재미있다. 그래서 이걸 끊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이걸 계속해서 뭐하나 싶어.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언젠가 친구 녀석이 이런 푸념을 한 적이 있다. 뭐야, 나 들으라고 한 소린가. 괜히 찔린다. 그 친구뿐만 아니라 나 역시 그런 생각을 종종 하는데, 일단 그 생각이 들면 내가 하는 일들이 모두 의미 없게 느껴져 다 때려치우고픈 강렬한 기분을 느끼게 돼버린다. 맞다.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아도 세상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글을 쓰지 않는다고 출판계에 큰 손실이 오는 것도 아니고 내 글이 읽고 싶어서 미치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허접한 글과 그림을 보지 않게 돼서 속이 다 후련하군, 같은 반응이 나올지도. 이미 잘하는 사람들의 콘텐츠만으로도 세상은 차고 넘치며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하는 것들은 모두 쓰레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환경오염 측면에서도 나는 이걸 하지 않는 게 옳다.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분야는 이미 잘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미 전설이 된 사람부터 막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까지, 어느 분야로 눈을 돌려도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그런 논리라면 나는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다. 이거 좀 슬프지 않은가?

 만약 세계에서 소설을 가장 잘 쓰는 소설가가 있다고 치자. 그의 소설이 너무 뛰어나서 다른 작가들의 소설은 읽을 필요도 없으니 그 작가의 소설만 출판하도록 하면 어떨까. 아무리 뛰어난 소설이라도 평생 한 사람의 소설만 읽어야 한다면 고문과도 같을 거다. 나는 훌륭하진 않더라도 다양한 작가들의 소설이 읽고 싶다. 세상엔 많은 취향이 있고, 내 안에만 해도 많은 취향이 있다. 세상엔 무협소설도 있어야 하고, 추리소설도 있어야 하고 나는 안 읽을지언정 로맨스 소설도 있어야 한다. 노벨문학상을 받는 훌륭한 소설만 있는 세상은 얼마나 재미가 없는가. 몸에 좋은 음식도 필요하지만 불량식품도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 그러니 다양성의 측면으로 봤을 때 나 같은 불량한 글을 쓰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휴, 간신히 의미부여에 성공했다).

 게스트의 냉장고 속 재료를 가지고 유명 셰프들끼리 요리 대결을 펼치는 방송이 있다. 그리고 그 쟁쟁한 셰프들 틈에 만화가인 ‘김풍’이 껴있다. 김풍은 자칭 ‘야매요리전문가‘인데 이 프로그램에서 없어서는 안 될 대체 불가의 캐릭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풍은 전문 요리사가 아니므로, 셰프들은 그를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셰프들은 김풍과의 대결에서 져도(그런 일은 많지 않지만) 별로 개의치 않아한다. 오히려 김풍의 요리가 많이 늘었다며 칭찬하고, 이것저것 가르쳐준다. 게스트도 마찬가지, 김풍의 요리에 크게 기대를 걸지 않기에 김풍이 만든 요리를 먹고는 주로 이런 반응을 보인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랐어요!"

 김풍의 포지션은 여러모로 유리하다. 아무리 재미있자고 만든 방송이지만 다른 셰프들은 경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당연하다. 자신의 체면이 달린 일이니 말이다. 대결에서 지는 것은 둘째치고 음식이라도 망치면 즉시 요리실력에 대한 의심을 살 테니 긴장할 수밖에. 하지만 김풍은 아니다. 음식을 망쳐도 괜찮다. 원래 요리사가 아니니까 체면 구길 일도 없다. 오히려 그가 요리를 망치면 재미있다. 자칭 야매요리전문가라더니 이게 뭐야 하면서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반대로 어쩌다 김풍이 음식을 잘하는 날이면 사람들의 감탄과 칭찬이 이어진다. 망쳐도 좋고, 잘해도 좋고. 뭐 이런 꿀 포지션이 있는가 말이다.

 김풍은 승부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까불며 신나게 요리를 만들고 재미있게 방송을 한다(속사정이야 모르지만, 내 눈엔 그렇게 보인다). 그는 대결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프로그램에 숨 쉴 구멍이 되어준다. 다른 셰프는 얼마든지 교체 가능하지만 김풍의 역할은 대역을 찾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이유로, 나는 김풍처럼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원래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니 글을 못 써도 괜찮다고. 그렇게 뻔뻔하게. 야매가 좋은 점은 승부를 겨룰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글로 누구를 이길 생각도 없고 잘 쓴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거다. 야매니까 그래도 된다.

 사실 내가 겁도 없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몰라서 가능한 게 아닐까.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단 한 줄도 쓰지 못했을 거다.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마음껏 까불면서 재미있게 글을 쓸 수 있었으면 하는 것. 그래서 난 프로가 되기 싫다. 내 위로 몇 명이 있는지, 승부나 순위 같은 건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다. 그것이 바로 야매의 길. 나는 야매작가다.






하완의 인스타그램
instagram.com/hawann_ill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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