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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측면이 좀 더 낫습니다만
by 하완 Mar 12. 2018

05_미혼 아니고 비혼


 



 비혼주의자.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응? 당연히 결혼은 선택 아니냐고 화들짝 놀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 흔히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미혼’이라 부르는데 이 말을 풀어보면 ‘아직 결혼하지 않음’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직’이다.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란 편견이 들어있는 단어다. 그래서 ‘비혼’이란 단어가 나오게 되었다. 비혼은 ‘결혼하지 않음’이란 뜻이다. 아직 안 한 게 아니고 본인의 선택으로 결혼하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렇다. 나는 비혼주의자다.


 “도대체 결혼을 왜 안 하겠다는 거야?”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무수히 많은 사람과 언쟁을 벌였다. 이유를 아무리 설명해 줘도 그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므로. 그 짓을 20년 넘게 하다 보니 이젠 싸우는 것도 지쳤다. 그래서 요즘은 비혼 의지에 대해 강하게 얘기하지 않는다. 결혼은 왜 안 하느냐는 질문엔 ‘그러게요. 해야 하는데.’ 정도로 마무리 짓는 게 훨씬 편하다. 그들을 설득해서 뭐가 달라지겠나. 그냥 대충 넘어가는 게 정신건강에 좋더라.

 현재 비혼이고 웬만하면 앞으로도 비혼일 거라 생각하지만 결혼을 절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나 그것이 내게 엄청나게 큰 이득이 된다면 언제든지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달까. 문은 활짝 열려있다. 문제는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여전히 들지 않는다는 거지만.


 그동안 만난 여성들이 이득이 되지 않아 결혼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그랬다면 진짜 쓰레기다). 나는 한 번도 이 사람이 내게 이득인가 아닌가를 생각한 적이 없다. 오히려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 그런 걸 더 따지더라. 내가 얘기하는 이득은 사람이 아니라 '결혼제도'가 가진 장점을 말하는 거다. 결혼은 장단이 있다. 단점에도 불구하고 장점 때문에 결혼을 하느냐,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 때문에 안 하느냐, 결혼은 선택의 문제다. 내가 비혼을 선택한 이유는 결혼생활의 안 좋은 면을 너무 많이 봐버린 탓이다. 분위기를 우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나는 결혼이 만든 지옥 속에서 자랐다. 그러니 ‘결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리가. 좋은 모습을 봤어야 하고 싶을 거 아닌가. 어린 시절의 난 이렇게 마음먹었다.

 '나는 절대 저렇게 살지 않을 거야. 만약 내 삶이 지옥이라면 나 혼자 지옥을 살아갈 거야.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모두를 지옥에 빠뜨리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아.'

 이 얼마나 인류애적인가. 나는 예감할 수 있었다. 내 삶이 지옥까진 아니더라도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을. 궁핍하게 자란 사람의 촉이랄까. 옛날 노래 가사처럼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어서 나 혼자 먹고살기도 벅차 휘청거리고 방황하며 살아왔다. 이런 불안정한 내가 결혼을 했다면 분명 또 하나의 지옥을 만들어 나 자신과 가족을 괴롭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리 결혼의 단점을 강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장점이 더 크다면 결혼을 했을 거다. 그런데 내겐 그 장점이 단점을 감수할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솔직히 결혼하면 희생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그런 희생 덕분에 내가 존재하는 거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이기적인 나에겐 비혼이 딱이다. 가족을 위해 희생할 필요도 없고, 누굴 괴롭게 하는 일도 없다. 이렇게 혼자 자유롭게 사는 게 맘 편하다.

 누군가는 '선택'이 아니라 능력이 안 될 거 같으니까 '포기'한 게 아니냐 묻고 싶을 수 있겠다. 능력이 안 되는 건 맞다. 하지만 엄연히 포기와는 다르다. 포기는 결혼을 하고 싶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마음을 접는 건데, 나는 애초에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본 적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예전 같으면 이 문제에 대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싸웠겠지만 이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나의 선택에 '포기'라는 프레임을 씌워야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 어쩌면 포기가 맞을 수도 있다. 뭐 나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결혼과 출산은 할 생각이 없어도 연애는 했다. 비혼이 사랑을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니까. 나는 20년간 꾸준히 연애를 했다. 연애를 시작할 때는 당연히 결혼 생각이 없다는 걸 밝힌다. 상대도 동의해야 연애가 시작되기에 결혼문제로부터 자유로울 것 같지만 내 연애의 발목을 잡은 건 언제나 결혼이었다.

 "몇 년이나 만났는데 여전히 나랑 결혼할 마음이 없다는 건 나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잖아. 나를 진짜 사랑하지 않는 거야."

 응? 사랑과 결혼이 동의어였던가? 비혼주의라도 진짜 사랑한다면 결혼하고 싶어 지는 거란다. 사랑은 곧 결혼이라는 공식 앞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럼 비혼주의인 여성과 사귀면 문제가 없을까?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런 충고를 해준다.

 "너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냐? 결혼할 마음도 없으면서 그렇게 오래 사귀는 건 상대에 대한 실례야. 그 친구는 너랑 몇 년간 연애하면서 혼기를 놓치게 되는 거라고. 여자는 남자랑 달라서 나이 들면 결혼이 힘들어. 아기 문제도 있고. 결혼할 수 있게 네가 도와줘야지. 결혼할 거 아니면 더 늦기 전에 헤어지는 게 그 친구를 위하는 거야. 진짜 사랑한다면 헤어져."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 아닌 걸까. 연애의 목적은 결국 결혼인 걸까. 결혼하지 않는 연애는 시간낭비인 걸까. 나로선 조금 억울한 마음도 있지만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다. 어떻게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 대부분 사람은 결혼을 하고 싶어 하고,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자연스럽다. 오히려 사랑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내가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면 그냥 내가 쓰레기거나.    

 

 비혼주의자의 연애는 이래저래 죄스럽다. 내 사랑이 누군가에겐 시간낭비이고 혼삿길을 막는 행위였다니. 결혼할 게 아니면 연애도 끊어야 할 모양이다.




덧,

이 글이 이렇게 엄청난 논란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결혼하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사회적인 문제가 될 줄은...
오해가 있는 부분에 있어서 변명을 하자면

1.

과거의 연애(10년도 훨씬 지난 일입니다)는 많이 서툴렀습니다.

비혼을 밝히고 시작했으니 나는 아무 잘못 없어, 라고 생각했던 이기적인 인간이었습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죠.(사실, 꼭 결혼문제 때문에 헤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었죠)

그 후론 ‘비혼’의 무게가 느껴지더군요. 사람을 만나는데 조심스럽고 연애에서 책임감도 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무나 못 만나겠더군요. 흔히 비혼주의자들은 책임감도 없이 자유분방하게 여러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다행히 지금은 결혼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과 10년 넘게 잘 만나고 있고, 같이 살고, 앞으로도 같이 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결혼제도’는 아닐 뿐입니다.


2.

결혼을 계획하시거나 하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릴 의도는 절대 없습니다.

결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저 개인적으로 좋다라고 느껴지지 않을 뿐입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해서 행복하게 살면 되고, 하기 싫은 사람은 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자유주의 국가인데 그 정도 자유도 없다면... 좀 슬플 것 같습니다. 이런 글을 쓰면 비혼주의자들이 더 힘을 얻고 결혼을 하지 않게 되니 다른 글을 써달라 하시는 분도 있는데,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파워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제 글이 설득력이 있는 편도 아니니 제 글 하나에 비혼주의자가 늘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재 비혼주의가 늘어가는 이유는 그 만큼 결혼제도가 많은 문제점이 있고(경력단절, 독박육아, 시집살이...), 결혼과 출산을 하기에 현실이 너무 팍팍한 이유이지 이런 글 때문은 아닙니다. 결혼해서 살기 좋은 세상이 되면 많은 사람이 결혼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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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놀고 가끔 그림을 그립니다.  에세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instagram : hawann_illust / email : hawan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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