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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완 Mar 26. 2018

오늘 마실 맥주를 내일로 미루지 말자




 이번에 의뢰받은 그림들을 완성하고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는데 단번에 오케이가 났다.

 이렇게 기쁠 수가. 수정사항이 없는 건 드문 일이다. 그러니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나.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이었지만 결국 맥주 캔을 따고 말았다. 어쩌다 들어오는 일을 마쳤으니 당분간 할 일도 없고. 크으, 좋다. 아무래도 한 캔으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 내 배가 점점 나오는 건 축배를 들 일이 많아서다.


 프리랜서가 된 지 일 년이 조금 넘었는데 이 생활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가장 좋은 점은 아무래도 자유롭다는 거다. 몇 시에 일어나든, 어디에 가든, 언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든, 내 마음대로다. 할 일만 제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일의 양과는 상관없이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 갇혀 있던 삶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없다.

 어떤 이는 프리랜서야말로 시간 계획에 따라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한다 말한다. 그러지 않으면 일상은 무너지고 게을러진다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규칙적으로 생활할 거면 그냥 회사에 다녔지 뭐 하러 내가 프리랜서 하냐?‘라고 생각하는 인간이라 프리랜서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즐기고 있다.


 자유롭다는 것 말고도 마음에 드는 점은 혼자 일한다는 거다. 일의 특성상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하거나 이메일과 전화 등을 주고받으며 커뮤니케이션도 해야 하지만 그런 시간은 아주 잠깐이고, 작업은 온전히 혼자서 한다. 누구의 감시도 간섭도 없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일에 집중하는 시간. 혼자 일하면 되게 좋다. 직장생활이 힘든 이유는 업무 자체가 힘들어서라기보다 '관계'에서 오는 피곤함 때문이 아닌가. 요즘은 그런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일이 없다.

 혼자 일하면 외롭지 않냐고? 나는 외로움이 좋다. 인간관계의 스트레스와 외로움 중 고르라면 아마 일 초도 지체하지 않고 외로움을 고를 거다. 정말이지 주말에 부장님과 함께 등산하고 싶지 않다. 부장님이 없어도 하나도 안 외롭다. 인간관계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으로도 벅차다.

 

 이렇게 속 편하게 사는 어른이 또 있을까. 그러다 보니 당연히 돈은 많이 못 번다. 이 대목에서 다들 다행이다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으리라.(웃음) 맞다. 너무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편하게 사는데 돈까지 잘 벌면 너무 불공평하지. 그러니까 나는 돈을 조금 포기하고 편하게 사는 셈이다. 돈을 싫어해서 그런 거냐고? 그럴 리가. 나 돈 좋아한다. 아니, 환장한다. 오죽하면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회사에 다니며 투잡을 뛰었겠나. 그때는 지금보다 돈은 더 벌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돈이 싫어서가 아니라 돈을 좇는 삶이 너무 힘들어서, 그래서 관뒀다.  

 맘 편하게 살고 있지만 돈에 대한 불안은 늘 있다. 이번 달 월세도 걱정되고, 노후도 걱정되고. 그런데 생각해 보면 회사에 다니며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면서도 나는 늘 돈 때문에 불안했다. 투잡을 뛰어도 불안했다. 도대체 얼마를 벌어야 불안하지 않은 걸까. 나는 불안하지 않을 만큼의 돈을 벌어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런 돈은 못 벌지 싶다. 지금껏 해 봤으니 견적이 나온다. 그렇다면 선택은 쉬워진다.


내 하루의 시간 속에서 기분 좋은 시간이 길면 길수록 행복한 사람이다.
-다니엘 카너먼,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소파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며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게 무슨 복인가 싶다. 기분 좋은 하루다. 이런 하루하루가 모여 삶이 행복해지는 거겠지. 요즘은 기분 좋은 날들이 많다. 나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은 걸까.'

 행복한 순간에도 불안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렇게 편하게 살다간 나중에 힘들어질까 봐 솔직히 겁이 난다. 역시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고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는 걸까. 우리는 '마시멜로 이야기'의 교훈을 받들어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며 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현재는 미래를 위해 참고 견뎌야하는 인내의 시간일 뿐이라고. 그런데 인내하며 행복을 미루면 먼 미래엔 확실히 행복해지는 걸까. 도대체 언제까지 미뤄야 하는 걸까. 계속 미루기만 하다가 좋은 날들 다 가버리게 생겼다. 옛 현인들도 그러지 않았나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라고.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나도 ‘지금의 행복’을 위해 사는 건 처음이라 섣불리 뭐라 말하기 그렇다. 몇 년 더 살아봐야 알 것 같다. 너무 고민하지 말자. 그때 가서 이게 아니라고 생각되면 엄청 후회하면 된다. 일단 지금은 맥주 한 캔 더. 아, 행복하다. 어쩌다 맥주 한 캔에 행복해하는 쉬운 인간이 되어버렸을까. 어쩌면 행복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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