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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완 May 04. 2018

하얀 공포

 





 심각한 병에 걸렸다.

 그 병의 이름은 바로 ‘글 못 쓰는 병’이다(맞아요. 몇 주나 연재를 못 한 이유가 이겁니다). 요즘 도무지 글이 안 써진다. 글을 쓰려 컴퓨터 앞에 앉아 새하얀 화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앞이 캄캄해진다. 뭘 쓰지? 깜박이는 커서가 어서 쓰라고 나를 재촉하지만 한 단어도 적지 못하고 일어서는 경우가 허다하니 아아, 역시 나는 재능이 없는가 싶어 극심한 우울과 자괴감에 빠져 지내고 있다.

 연재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소재도 떨어지고 방향도 잃어버린 기분이다. 무엇보다 억지로 쥐어 짜낸 이런 글을 누가 재미있어할까 생각하니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 이런 걸 두고 ‘백지의 공포‘라 부르는 거겠지. 무섭다. 어떤 암흑보다 더 무서운 밝음이다.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한 대학의 도예과 교수가 학생들을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눈 후 각기 다른 과제를 내주었다. A그룹에는 학기가 끝날 때까지 작품의 퀄리티는 상관없으니 무조건 많은 작품을 만들도록 하고, B그룹에는 많이 만들 필요 없고 최고의 작품 하나만 제출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A그룹 학생들은 닥치는 대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좋은 점수를 받을 테니까. B그룹 학생들은 딱 하나만 만들어도 되지만 남들보다 더 독창적이고 뛰어나며 모두가 인정할 만한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기가 끝나고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를 살펴보던 교수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뛰어난 작품을 만들라고 한 건 B그룹이었는데 오히려 A그룹에서 뛰어난 작품들이 많이 나온 거다. 심지어 B그룹 학생 중엔 작품을 내지 못한 학생들이 상당히 많았다. 딱 하나만 만들면 되는데도 말이다. A그룹 학생들이 B그룹 학생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일까? 아니다. B그룹 학생들이 작품을 만들지 못한 건 부담감 때문이다.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

 ‘아아, 겨우 이런 거로는 최고가 될 수 없어.’

 섣불리 작업할 수 없게 만드는 엄청난 중압감이 그들을 좌절하게 했다. 반면 A그룹 학생들은 작품에 대한 부담감 없이 마구잡이로 만들면서 이런저런 실험도 해보고, 실패도 하면서 더 괜찮은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내가 백지를 바라보며 느끼는 공포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나도 모르는 새 나는 욕심을 내고 있었나 보다. 더 좋은 글을 써야 해. 많은 사람이 공감할 글을 써야 해. 그렇게 글 쓰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건 아닐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 야매 작가임을 외치며 마구잡이 글쓰기를 지향하더니. 그러고 보면 인간이란 얼마나 흔들리는 존재인가.

 이제는 알 것 같다. 이 백지의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을. 그건 바로 백지를 더럽히는 거다. 잘하고 싶은 마음, 굉장한 걸 써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리기 위해선 일단 아무거나 써서 하얀 공간을 더럽혀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못 쓰는 거라면 아예 실패를 하면서 시작하는 거다.

 “에잇, 이왕 망친 거!”

 그러면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글을 쓸 수가 있게 된다. 거짓말이 아니다. 진짜 효과가 있다. 봐라, 글이 잘 안 써진다는 푸념으로 백지를 더럽히기 시작하다가 이렇게 한 편의 글을 뚝딱 쓰게 됐지 않나. 아, 망친 글로 이번 연재 잘 때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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