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하완 Aug 21. 2018

내가 알아서 할게요



 “야! 어차피 그만두려고 했잖아. 걱정 좀 그만하고 놀아.”

 

 최근 친구 놈 하나가 갑작스레 직장을 잃었다. 자세히 얘기하면 너무 구구절절하니 요약해서 말하면, 짤렸다. 그는 오랜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부당한 처우에 불만이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휴식이 간절했다. 내가 당장 그만두라고 옆구리를 그렇게 찔러대도 딱 일 년만 더 다니다 그만둔다더니,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계획했던 것과 다른 전개에 그는 몹시 당황했고 불안해했다.


 아, 큰일 났다. 이제 뭐 먹고살지?

 

 불안한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내가 보기엔 퇴사 시기가 조금 앞당겨졌을 뿐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만약 일 년 후에 그만두었다면 불안하지 않았을까? 그럴 리가. 일 년 사이에 뾰족한 대책이 생길 것도 아니고, 통장 잔액이 조금 더 있다고 불안이 사라지진 않는다. 아마 일 년 후에도 그는 그만두지 못했을 거다. 어떻게 아느냐고? 내가 많이 해봐서 안다. 그러니까 이건 결정장애를 겪는 그를 위해 하늘이 준 선물이나 다름없다. 미리 경험해 본 선배로서 어찌 한마디 안 할 수 있겠나. 이왕 이렇게 된 거 원하던 대로 일단 쉬자.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다시 뛸 마음도 생기는 것 아니겠나, 친구. 그도 동의했지만 마음이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불안한 그를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네가 걱정돼서 하는 소리야'로 시작하는 걱정인 듯 걱정 아닌 걱정 같은 충고들이었다. 그에게 쏟아지는 충고는 대충 이런 거다.

 “네 나이를 생각해야지. 이제 어쩌려고 그래? 이렇게 속 편하게 쉬고 있을 때가 아니야. 40대에 승부를 보지 않으면 그냥 끝이라고 봐야 해. 너 하완 인가 뭔가 하는 그런 놈이랑 어울리니까 물들어서 이러는 거야. 정신 차려!”

 와 씨! 내가 거기서 왜 나오냐? 내가 뭘 어쨌다고……. 뭐, 영향이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없으니 입이 열 개라도 후다닥 넘어가자. 아무튼. 여기저기서 하도 충고를 듣다 보니 그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온 모양이었다. 어느 날 그는 술자리에서 선언하듯 외쳤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나는 그가 누구보다 자기 일을 알아서 잘하는 친구라 생각해왔다. 지금까지도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해 나갈 거로 생각한다. 그런데 남들이 보기엔 문제가 많은 인간인 모양이다. 아니면 이런 상황이 되기만을 기다렸던 것일까. 친구, 선배, 후배, 그를 아는 모두가 그의 인생에 훈수를 못 둬서 아우성을 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그 친구가 조금 안쓰러웠다. 그리고 뜨끔했다. 나도 걱정해 준답시고 그에게 뭔가 조언을 한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들은 나이 처먹어가지고 아저씨 되면 아무한테나 조언하고
충고하고 그래도 되는 자격증 같은 게 국가에서 발급되나 봐.  
-영화 [이 층의 악당] 중에서


 흠흠. 죄송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저씨의 입장에서 변명하자면, 꼭 아저씨만 그런 거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남의 인생에 참견을 많이 한다. 젊으면 젊은 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 조언과 충고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나라다. 자기 인생도 어려워하면서 남한텐 쉽게 쉽게 얘기도 잘한다. 나라고 안 그랬을까? 살아오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이래라저래라 참견 많이 하며 살았다. 부끄럽다. 내 인생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면서 잘도 지껄이며 살았구나. 성경에 장님이 장님을 이끄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딱 그 꼴이 아닌가. 그래서 충고를 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물론 잘 되진 않지만). 그리고 남의 충고도 안 듣기로 했다. 어차피 그들도 잘 모른다. 특히 내 인생에 대해선 더더욱.

 많은 충고를 하고, 들으며 살아온 경험상 쓸만한 충고는 별로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대부분의 충고는 진심 어린 고민이 동반된 걱정이라기보단 겁을 주는 협박에 가깝다. 자기 마음대로 살지 못하게 만드는 협박. “너 그러다 큰일 나. 내가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해 줄게.”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불행한 시나리오가 그때 다 나온다.

 언제나 비판은 쉽다. 무언가에서 장점과 가능성을 찾는 것보단 단점과 위험요소를 찾기가 훨씬 쉬우니까. 어쩌면 우리는 충고와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위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 수는 없다고. 그게 가능할 것 같냐고. 아아, 이 끈끈한 유대. 이 환장할 집단 지성으로 우리는 갈수록 쫄보가 되어간다. 안 그래도 겁이 많아 도전 같은 건 못해보고 사는데, 원 참. 이걸 누구에게 따질까. 우리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직장을 잃은 친구의 뒷이야기가 궁금할 테니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지금 아주 잘 놀고, 아니 잘 쉬고 있다.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본인도 모르는 눈치다. 마흔이 넘은 남자가 저러고 있어도 되나? 뭐라도 한마디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꾹 참자. 아아, 벌써 입이 근질거린다. 충고를 안 하는 건 역시 무리인가. 충고 아니고 조언 정도는 괜찮지 않나? 아니다. 그것도 하지 말자.

 충고나 조언도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 나의 생각일 뿐, 모두에게 들어맞는 진리가 아니다. 인생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 각자의 인생이다. 대신 살아줄 거 아니면 알아서 살게 내버려 두자. 내 인생도 내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는데, 말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남의 인생 신경 쓸 처지가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척하면 망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