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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 Jul 27. 2020

우리는 "이별"이 아닌 "파혼"을 했다

결혼 5개월을 앞두고 예비신랑이 바람난 걸 알았다

지난 5월, 아직도 너무나 선명한 우리의 4주년. 심지어 그가 4주년을 축하한다며 직접 구운 스테이크와 근사한 와인과 샴페인, 그리고 나를 위해 백화점가서 혼자 골랐다는 선물을 준비한 그날.

거나하게 취한 그의 휴대폰에 이끌리듯 손을 뻗어 한 때는 내 남자친구이자 예비신랑이었던 그 사람의 불륜을 알게 된  날 이후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내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주고받았던 메시지를 정리하는 것도, 사진을 불태워버리는 것도, 그도 아니면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마음수련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 다음 달 예정이었던 제주 스냅 촬영 일정을 확인하고, 예식 당일 영상과 본식 사진을 예약했던 곳의 위약금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코로나19가 터지기도 전에 예약해두었던 스페인행 비행기표를 취소해야 했고, 호텔도 모두 취소를 해야 했다. 그리고 이제 막 신혼집에 들어간지 일주일 되어가던, 아직 포장도 다 뜨지 못했던, 엄마랑 내가 직접 가서 고르고 준비했던 혼수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산해 K에게 보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며 굉장히 이성적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를 잠깐이라도 직접 만나 몇 마디 나눈 사람이라면 나만큼 감정적이고 감성적인 사람도 없다는 걸 알 것이다. 그때의 나는 이성적으로 보이고 싶었다. 너네 둘이 무슨 짓을 저질렀고, 너가 나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어도 나는 당당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나를 포장했다. 적어도 보여 지는 모습만큼은 그래 보이고 싶었다.


그 보여 지는 것(ex. K에게 일주일 내로 정리할 모든 것을 리스트업해서 보낸 메일, 일이 있고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출근하기 등) 뒤에 가려진 진짜 나의 모습은 어땠을까?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회사에서는 직원들과 웃으며 밥을 먹을 수 없어 며칠을 엎드려 점심시간을 보냈고, 이후에는 도저히 일에도 집중이 안 되어 연차를 내고 집에서 쉬었다. 무늬만 신자였던 내가 친한 언니의 권유로 49일 묵주기도를 시작했고, 매일 밤 울며 성모님 앞에 무릎 꿇고 매달렸다.


이 정도면 정리가 끝난 걸까 생각하면 또 여기저기에서 자기도 확인해 달라며 마치 자기 존재감을 뽐내듯 내 머릿속을 헤집어댔다.


화장대 거울에 꽂혀있던 사진이 그랬고, 네 번째 손가락에 선명히 남은 반지 자국이 그랬다. 회사 모니터 옆에 놓인 우리 사진으로 주문제작한 달력이 그랬고, 옆으로 넘길 때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속 우리 모습이 그랬다. 우리가 만나는 동안 모든 흔적과 사진들이 담겨있는 휴대폰 3대가 그랬고, 출근할 때마다 자연스레 신고 있는 그가 사준 운동화가 그랬다.


사람은 떠났고, 이제 정말 마음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 보이지 않는 것 말고도 수많은 보이는 것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를 정말로 힘들게 한 것은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불쑥 불쑥 떠오르는 그들의 모습이었다. 아니, 이외에도 내 손길 닿는 곳곳, 눈길 닿는 곳곳마다 가득차버린 우리 둘의 기억들이었다. 이 모든 것들에 무뎌지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햇수로 5년, 우리가 함께한 그 시간만큼이면 될까?


모든 게 완벽할 줄 알았던 우리의 4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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