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 체험기
언제부터였을까, 계속해서 그 동작이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한 건. 발을 차듯이 올린 뒤 한 바퀴를 뒤집어서 도는 움직임이 계속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여느 때처럼 무용 공연을 보다가 알게 된 동작인데 열심히 찾아봤더니 하우스턴이라고 했다. 멋있어 보였던 그 동작도 배우고 싶고 그날 본 공연에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행복하고 자유로워 보여서 홀린 듯이 현대무용 원데이클래스를 신청하게 되었다.
현대무용 수업에서 처음엔 다 같이 스트레칭하고 몸을 풀면서 몸의 온기를 높였다. 그 후 선생님이 음악에 맞춰 짜오신 안무를 구간별로 배우게 되었다. 이때까지 배워본 춤은 발레뿐이었는데, 발레는 정해진 틀에 내 몸을 맞추는 느낌이었다면 현대무용은 그 틀을 벗어나서 훨씬 자유롭게 온몸을 사용할 수 있는 느낌이었고 동작의 에너지가 이어지는 흐름을 중시하는 것 같았다.
온몸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온몸을 사용해야된다는 뜻이기도 해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그나마 가만히 있을때에도 쉬지 않고 코어에 힘을 줘서 밸런스를 잡고 버텨야 했다. 바닥에 드러눕는 자세에서는 드디어 쉬는 타이밍인가 하고 기뻐했지만, 다리를 회전하며 열심히 바닥을 닦고 후굴과 물고기 자세를 연달아 해야해서 오히려 바닥이 더 힘들었다. 바닥에서 다리를 360도로 빙글빙글 돌리는 동작을 선생님이 하셨을 땐 진짜 멋있었지만 내가 따라했을 땐 그저 신종 물걸레 청소기의 재현이었다.
자유로워서 오히려 그 자유가 주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프리랜서로 살면 언제 어디서든지 일할 수 있지만 언제 어디서라도 일해야 할 수도 있다는 함정이 있다는 점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함정을 컨트롤 할 수 있을 만큼의 숙련자가 되어야 비로소 그 자유를 온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초심자인 나는 잔뜩 비틀거리며 열심히 바닥을 닦았고 빡센 체험이 끝난 다음 날 나의 어깨와 무릎엔 자잘한 훈장 같은 멍이 잔뜩 들어있었다.
멍든 무릎에 약을 바르며 인간은 언제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을지, 태초의 춤이 어떻게 시작되었을지 궁금해졌다. 동굴에 모여 앉은 원시인들이 그날의 사냥감을 배부르게 먹고 나서 기분이 좋아져서 몸을 움직이다가 왠지 즐겁다는 걸 깨닫고 춤이 시작되었을까? 무용학원을 기웃거리고 발레 공연을 보러 다니고 현대무용 원데이클래스를 다녀오는 걸 보면 원시시대부터 내려온 춤을 사랑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가 내 몸 한구석에 남아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언어를 거치지 않는 많은 예술 중에 유독 춤이 이렇게 와닿는 이유 중 하나는 몸이라는 같은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덧붙여서 내가 느끼는 어떤 감정을 춤이 대리로 극대화시켜 주는 기분이라 해소감이 들어서 좋다. 그리고 시간의 축이 시각적인 축에 더해서 있는 점도 흥미로운데 음악이 흐르는 시간에 따라 인체가 흘러가며 그리는 곡선이 너무 아름다운 것 같다.
다 같이 춤을 추면서 유대감을 돈독히 했을 것 같은 원시시대 이래로 수만 년이 흐른 뒤, 어느 무용 연습실 안 다 같이 굴려진 수강생들 사이에서도 무언의 유대감이 어느새 흐른 땀처럼 생겨나는 게 느껴진다. 몸을 힘들게 움직이는 상황에서는 함께하는 사람들과 왠지 끈끈해진다. 말없이 옆사람 눈을 마주치며 '힘드시죠?'라는 텔레파시를 보내면 '네 죽을 거 같아요'라고 눈을 찡긋거리는 화답이 돌아온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옆사람과 함께 톰베파도브레 스텝을 밟다가 다 같이 휘청이며 도는 연습실에서 잠시 우리가 하나가 된 듯한 유대감을 느낀다. 춤도 종교와 비슷하게 호모 사피엔스들을 유대감으로 묶는 기능을 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빙글거리며 턴을 연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