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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준 Jan 19. 2023

매년 가족사진 찍으러 토스카나에 가다

- 발도르차 평원

언젠가 어떤 사진을 봤다. 매년 같은 컨셉으로 찍은 가족사진 속에서 부모님들은 나이가 들어가고, 아이는 부모의 키만큼 자라는 동안 함께 찍은 사진이다. 그 사진이 너무 멋있고 마음에 들어서 나도 아기를 낳으면 매년 멋진 옷을 차려입고 우리만의 가족사진을 찍어야지 하고 다짐했다. 훗날 아이들이 크면 엄마아빠의 젊은 날에 너희랑 이렇게 행복한 시절을 함께 보냈다며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결혼을 했고 내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우리의 첫 토스카나 가족사진

우리의 첫 가족사진은 몰디브 태교여행이었다. 당시 나는 27살 남편은 29살 참 어리고 예뻤다. 태교여행의 목적이 가족사진인 냥 리조트 여기저기를 삼각대 기사님과 함께 다니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두 번째 가족사진은 둘째의 태교여행으로 갔었던 괌에서 찍었다. 22개월 아들과 만삭의 몸으로 역시나 삼각대 기사님께 의존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무사히 사진을 잘 찍었다. 우리가 묵었던 괌 리조트에서 하얀 원피스를 입고 사진을 찍었는데, 우리가 웨딩촬영을 하는 줄 아는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박수와 환호까지 보내줬다. 그 당시에는 부끄러웠지만, 역시 남는 건 사진. 결과물을 보니 역시나 찍기를 잘했다 싶었다. 그 이후에도 거의 매년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었다. 장소는 달랐지만, 같은 원피스를 입고 찍어서 나름 통일성이 있었다. 몇 년 동안 찍은 사진들을 보니 제법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은 자라고 우리의 얼굴에는 세월이 묻어나긴 했지만, 그게 마음에 들었다. 이탈리아에 와서도 마음에 드는 장소를 하나 정해서 우리가 지내는 4년 동안 매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기로 했다.


2020년 6월 이탈리아의 코로나 정책이 완화되어 주가 다른 도시도 여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주간 이동이 불가능해, 주 내에서만 이동이 가능했다) 우리의 첫 번째 여행지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베네치아였다. 2주 뒤에는 1박 2일 동안 1000km를 운전해 토스카나에 다녀왔다.


- 우와, 윈도우 화면 안에 들어온 것 같아!

- 이건 너무 비현실적인데? 텔레토비 동산에 온 것 같아!

- 엄마 여기 정말 멋지다

- 엄마 저기 양이 있어!!


발도르차 평원에 도착하자, 우리는 저마다 토스카나의 첫인상에 대해서 뱉어내기 시작했다. 발도르차의 경관은 시에나 내륙 농업 지방의 일부가 14, 15세기에 도시 국가의 영토로 통합되었을 때, 훌륭한 통치의 이상을 반영하고 미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조성하기 위해 재설계하여 개발한 지역이라고 한다. 토스카나에 도착하자마자 든 생각은 그래, 여기다. 여기서 매년 가족사진을 찍어야지.


우리의 두 번째 토스카나 사진

우리가 찍고 싶었던 장소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S자로 줄지어진 평원이었다. 이곳은 한 농가민박의 사유지로 우리가 처음 갔던 3년 전에는 지금처럼 공개된 곳이 아니었다. 분명히 블로그에서 봤을 때는 S자로 늘어진 사이프러스가 보이는 아름다운 경관에서 멋진 사진들을 찍었는데! 들어가는 문이 막혀있다니. 그냥 돌아가야 하나라는 찰나에 마침 다른 관광객이 왔고, 샛길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잘됐다 싶어서 우리도 그 관광객을 따라갔더니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갔는지, 작은아이의 허리춤까지 자란 보리들이 사람들의 발자취에 따라 밟혀서 길이 나있었다.  


셀프 가족스냅사진을 찍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삼각대에 의존해서 꽤나 귀여운 꼬맹이들 둘 과 사진 찍기란 쉽지 않다. 아빠는 열심히 구도를 잡고, 나는 두 녀석들에게 가만히 서 있어 봐라. 잘 찍으면 칭찬스티커 10개! 줄게 라며 온갖 환심을 샀다. 게다가 날씨는 어찌나 더운지 어르고 달래도 아이들은 땀을 흘리며 짜증을 냈다. 어른인 나도 덥고 짜증이 나는데 어린아이들은 오죽할까? 순간 이게 잘하는 건가? 여행에 왔으면 그냥 즐기는 게 맞나 싶으면서도 나중에 결과물을 보면, 역시 남는 건 사진이고 찍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사히 사진을 찍으니 미션 성공이라는 성취감과 함께 드넓게 펼쳐진 보리밭과 S자 길의 사이프러스 나무가 보였다. 아이들은 사람이라고는 우리 가족과 아까 그 관광객을 빼고는 없는 넓은 평야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신나게 뛰어다녔다.


- 엄마!!! 이것 좀 봐!!!!

- 으악, 뭔데!! 엄마는 벌레가 싫어!

- 아니야, 벌레 아니고 귀뚜라미야!

- 형아, 어디 봐바. 멋지다 어디 가면 잡을 수 있어?


아이들은 내가 발이 많이 달린 친구들을 싫어하는 것을 아주 잘 안다. 이탈리아에 막 이사 왔을 때도 우리 집은 50년도 더 된 집이라 그런지 나무바닥에서 개미가 끝도 없이 나왔다. 집 안을 최신식으로 리모델링했어도 건물이 오래된 거라 개미집이 있었나 보다. 개미 약을 사기 전까지 큰 아이가 나의 히어로였다. 나는 개미가 나올 때마다 기겁했고, 큰 아이는 자신의 개미 잡기 실력을 뽐내면서 엄마를 구해주곤 했다.  

큰 아이는 엄마를 또 한 번 놀렸다는 성취감으로 작은 아이와 보리밭 사이로 사라져 갔다. 한참이 지나도 귀뚜라미를 잡지 못하자 아이들은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열심히 귀뚜라미를 찾아 보리밭을 헤매는 나의 세 남자를 보고 있으니 이 찰나가 정말 행복했다. 이게 내가 원하는 여행육아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너무 더워서 숙소에 가고 싶었다.

- 이제 집에 가자!! 제발!!


세 번째 토스카나, 아이들이 많이 자랐다.


* 토스카나에서 인생 사진 찍을 수 있는 장소 3곳 추천!

산퀴리로 발도르차 / Val d'Orcia

막시무스의 집/ Farmhouse Poggio Covili

S자 발도르차 길/ Agriturismo Baccoleno


* 인생사진을 찍기 위한 꿀팁

1) 토스카나를 방문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5월에서 6월 초 사이이다. 6월 중순도 나쁘지 않은데, 그때는 날씨가 덥기도 하고 우리가 상상하는 초록색 평원이 아니라 금색으로 물든 보리밭을 볼 수 있다. 6월 말부터는 보리밭 수확을 시작해서 황량할 수 있으니 시기를 잘 보고 가야 한다.

2) 평원지대라 주차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냥 차가 세워진 곳에 요령껏 세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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