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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Jun 13. 2023

네덜란드에서 오리엔탈리즘을 경험하기

‘동양’(orient)과 ‘서양’(occident), 그리고 제국주의




네덜란드인 지인인 K와는 꽤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이다. 유학생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니 5년이 다 되어 간다. 엄청 가깝진 않지만 가끔 안부를 주고받고 종종 그의 본가에도 초대가 되기도 하여 그의 부모님들과 함께 두어 번 식사를 하기도 한다. 최근에 서로 바빠져 연락을 못하다가 본인도 본인 부모님을 본 지 오래되었는데 같이 식사를 하자는 초대를 받았다. 나도 마지막으로 K의 부모님 댁에 방문한 지 꽤 오래되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초대를 승낙하고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K의 부모님과 강아지, 즐거운 마음으로 아직 해도 쨍쨍하고 해서 그들의 뒷 정원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최근 부쩍 좋아진 날씨에 최대한 좋은 날씨를 만끽하려는 것이 요새 가장 흔한 광경이다. 


그런데 이분들의 뒷 정원이 1년 전에 비해 완전히 달라졌다. 그전엔 그냥 평범한 유럽 가정집의 정원 스타일이었는데 이번에 보니 일본풍의 느낌이 물씬 나게끔 공사를 해서 싹 바꿨다고 하셨다. 크기도 다양한 단풍나무가 심어져 있어 아는 체를 하니 "일본" 단풍나무라고 (Japanese maple tree) 강조하신다. 중앙에 위치한 연못과 그 속의 잉어들, 그리고 규칙적으로 딱- 딱-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대나무 장식품.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얼른 더 자세히 둘러보니 울타리 가장자리에도 대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 꽤 예쁘고 깔끔하다.라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는데 막상 앉고 나서 또 눈에 들어온 건 구석에 처박혀 있는 불상이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이긴 하나 검색만 해도 buddah statue home gardening으로 주르륵 뜨니 이해가 갈거라 믿는다. (출처: GEOFFS GARDEN)

그것도 그냥 불상이 아닌 부처의 머리만 뚝 떼어놓아 부처의 머리가 바닥에 놓여있는 것이었다. 뭐지? 싶어 저건 무엇이냐 당황스러운 마음에 물으니 최근 본인들이 일본식 정원 스타일에 흠뻑 빠져 정원을 재정비하는 중 가드닝 센터에서 팔던 그냥 말 그대로 장식품을 사 올것이는 설명을 들었다. 당연히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분들은 불자가 아니다.


나는 무교이지만 굳이 굳이 따지자면 불교와 조금 더 가깝게 자랐다고 할 수 있다. 매주 일요일 등산하던 부모님을 따라 산에 오르다가 중턱에 위치한 고즈넉한 절에 앉아 엄마 아빠와 내려다보던 울창하고도 고요한 나무들과 산들바람에 춤추는 풍경소리는 아직도 내 기억 저편에 자리 잡아 힘들 때마다 들여다보는 소중한 추억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좀 빠직, 했던 것 같다. 사실 전에도 가드닝 상점에 방문할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보이는 이 불상들에 대해서 짜증이 좀 쌓여있긴 했다. 그래도 누가 바보같이 이런 걸 사나 싶어서 애써 무시해 왔는데 이렇게 바로 내 눈앞에 보이니 요새 말로 '버튼'이 눌려버렸었나 보다. 


이분들이 의도적으로 내 기분을 상하기 위해 부처의 머리 조각상을 놓은 것은 절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K의 부모님들은 나쁜 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지자면 사실 좋으신 분들이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나를 위해 늘 서툰 영어로 소통해 주시고 맛있는 음식 및 음료도 늘 대접해 주신다. 이렇게 나를 저녁식사에도 초대를 해주시니 나쁜 분들은 절대 아니다. 심지어 멀리 나와서 사는 나의 고충을 안타깝게 여겨주시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분들이 다시 내게 질문을 하셨을 때 침착함을 끝내 유지할 수 있었다. 


커피를 내오시는 두 분에게 왜 하필 불상 전체가 아닌 불상 머리만 사셨냐고 하니 아무래도 뭔가 잘못됨을 감지하셨는지 차분히 앉아 무슨 일이냐 물으셨다. 기독교인들이 다른 집에 방문할 때 예수의 머리만 덜렁 있는 조각상이 있으면 어떻게 반응할 것 같으세요, 물으니 아차 싶은지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게 보였다. 혹시 내가 불자인지 물으셨지만 아니라고, 내가 불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K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그 조각상을 들고 차고로 가셨다. 그마저도 속이 빈 장식품이라 쉬이 옮겨지는걸 보고 헛웃음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도 괜히 일을 크게 벌였나, 싶어 뻘쭘해지는 찰나에 K가 나서서 본인의 엄마에게 질책을 한다. 그러니까 내가 저거 치우라고 했잖아. 


K의 가족은 부모님 및 조부모님, 그리고 그분들의 부모님들까지 대대손손 이 근방 지역에서 나고 자라신 100퍼센트 토종 네덜란드인들이다. 그중에서도 암스테르담같이 큰 대도시가 아닌 정말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쉽게 말하면 시골분들이시다. 그래서 나는 이 실수가 무시가 아닌 무지에서 왔음을 알고 있었다.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정확히 구분하시진 못해도 푸근한 마음과 인정은 있으신 분들이다. 마치 우리 엄마 아빠가 아직도 딸내미가 살고 있는 네덜란드의 지리상 위치를 헷갈려하시는 것처럼. 그래도 세대를 거듭하며 많이 좋아진 거라며 대신 사과를 하는 K에게 괜찮다고 말을 덧붙였고 차고에서 손을 털며 돌아와 사과를 해주시는 아버님께도 괜찮다며 웃고선 황급히 주제를 바꿨다. 그렇게 나는 불편한 마음을 구석에 담은 채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조각상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른다. 




이 이후로 운전을 하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업무를 하다가도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왜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버튼'이 눌렸을까? 그러다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되었다.


오리엔탈(Oriental)은 '떠오르는 태양'을 의미하는 라틴어인 'oriens'에서 비롯되어 해가 떠오르는 동쪽이라는 뜻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양'이라는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동양 하면 떠오르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중국, 일본 및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중앙아시아를 모두 포괄한다. 사실은 이 '동양'이라는 표현 자체부터가 서양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에 서양중심적인 사고로부터 이분법적으로 생성된 의미인데, 이렇게 서양을 기준으로 동쪽에 있는 나라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학술적 용어로 정립되었다 (백지호, 2017). 


이렇게 서양 중심적인 사고로부터 처음 오리엔탈리즘이 출현하며 서양 학자들은 본인들이 속해있는 서양은 이성적, 합리적, 및 능동적인 반면 동양은 비이성적, 관념적 그리고 수동적이라고 설명하곤 했다. 이는 제국주의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 쉽게 말해서 당시 서양인들은 그냥 자기들이 먼저 생각해 낸 이 편협한 사고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본인들이 더 낫다고 정의를 내리고 동양 국가들은 자기들처럼 교화가 되어야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전형적인 서양인들 생각이라 놀랍지도 않다..)


이렇게 오래전에 성립된 사고방식은 정말 참 오래도 지속이 되어 20세기가 되어서야 팔레스타인 출신인 한 학자인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Said)에 의해 실체가 폭로되었다. 사이드는 예루살렘 출생으로 이집트에서 자란 뒤 미국에서 능력 있고 인정받던 학자였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반이슬람 정서가 미국에서 강화되며 갑자기 자신이 미국에서 이방인이자 경계의 대상이 되었음을 느끼기 시작하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찰과 자각의 시간을 갖게 되는데, 그중에 탄생한 것이 그가 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이다. 


세이드는 이 책에서 오리엔탈리즘을 총 세 가지의 의미로 설명한다 (진태원, 2014).

1. 학문으로서의 오리엔탈리즘 - 즉 동양학, 동양학연구

2. 서양과 동양 사이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구별의 사고방식 - 위에서 언급한 서양은 동적이고 합리적이나 동양은 정적이고 감정적이라든지 하는 사고방식.

3.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조화하여 동양에 대한 권위를 갖기 위한 서양의 선택적 사고방식으로, 제국주의를 정당화시킨다. 안타깝게도 가장 지배적인 의미이다.




세 번째 의미인 오리엔탈리즘이 문명 사회에서 가속화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인데, 산업혁명 이후 제국주의가 확산되며 서양은 경제, 군사적으로 열등한 동양을 무능력한 존재로 정의하여 식민지배를 했고 오리엔탈리즘을 적용시켜 이를 정당화시키기까지 했다. 착취나 억압이 아닌 그 당시에는 정말 동양을 '구해' (save) 주는 사명이라고 여겼다. 영국의 인도 지배,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지배 등의 예시가 있지만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으니 세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왼: 영화 '오스틴 파워'의 아시안 등장인물들 / 오:모네의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


이러한 이분법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사고방식이 더 넓게 확산된 데에는 미디어의 몫이 크다. 이를 미디어 제국주의 (media Imperialism)의 영향으로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이는 한 국가에서 그 미디어의 내용이나 보급, 구조 등이 다른 국가의 미디어 영향에 의해 지배당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우실하, 2015). 예를 들어 얼마나 CNN이나 BBC같이 세계적으로 보급되는 뉴스들이 서양의 시각에서 만들어져서 방영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더불어 서양의 미디어에서 그들의 시각으로 비친 동양의 모습은 아직도 신비하고 흥미로운 타자화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아시안 인물들은 다 하나같이 앞머리를 내리고 브릿지를 한다거나 하는. 이렇게 미디어로 확산된 오리엔탈리즘은 동양국가에서도 내부화되어 동양인들 스스로조차도 스스로를 격하하고 서양을 우화하시키는 사대주의로 발현되기도 한다. 스스로 서양인에게 지배자, 동양인에게 피지배자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왼: 아시아 폰트 / 오: 끔찍한 오리엔탈리즘의 혼종 그 자체..

오리엔탈리즘은 현대까지도 제국주의의 근본적인 성질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상당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네덜란드에 거주하면서도 종종 보이는 일본의 욱일승천기를 모티프로 한 디자인이나 젓가락을 머리 장식용으로 쓰라는 광고, 맥락에 상관없이 쓰이는 일본어처럼 쓰이는 단어들, 그리고 한자나 일본어에서 따와 말 그대로 '아시아 폰트'로 보이는 글꼴까지 이 오리엔탈리즘을 일상생활에서 너무너무 쉽게 볼 수 있다. 머리만 뚝 떼어져 그냥 아무 가게에서 팔리는 불상도 그중 하나이다. 서양인들의 눈에는 그냥 장식품이다. 종교적인 의미는 전혀 본인들에게 무관하다. 


언급한 모든 예시들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기저가 깔려있다. 내가 대응한 것처럼 만약 입장 바꿔서 예수상이 머리만 잘려 바닥에 놓여있다면 기독교 비율이 압도적인 서양국가에서 이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나치 깃발이 모티브가 된 디자인을 배경으로 패키징을 만든다면 나는 곧장 국제법에 걸려 고소당할 것이다. 그냥 너희 문화가 좋아서 그러는 건데 민감하게 반응하지 마,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근거이다. 우리 문화를 좋아하 나면 그 문화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존중해야지, 제멋대로 재단하여 입맛대로 바꾸는 건 존중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 해외에서 살기 시작하기 전엔 막연하게 서양의 세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모두들 친절하고, 쏼라쏼라 영어도 잘하고 (영미권 = 서양인줄 알았던 시기), 다들 키도 크고 몸매도 좋고 스타일도 좋으며 (외적인 것에 대한 치중.. 10년 전에는 어렸고 아무것도 몰랐으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삶을 풍족하고 여유롭게 살고, 복지 좋은 나라에서 워라밸을 완벽하게 지킨다던가 등등. 이 모든 것들 또한 나의 사대주의적인 발상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기도 했다. 


이전의 포스팅에서 언급한 바가 있는 동양인 여성을 향한 판타지를 근거로 한 페티시, 그리고 인종차별 또한 모두 이 오리엔탈리즘에서 비롯되었기 나는 어쩔 수 없이 예민하게 반응한 거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다음부턴 왜 이것이 민감한 문제인지에 대해서 설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모쪼록 내 지인의 부모님께서 그 불상 머리 장식품을 잘 처리하셨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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