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노희남
매주 2회 야간에 홍천 비발디파크를 다녀오는 겨울 운동을 어제로 마감하였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스킹의 감을 잡은 것 같은데 시즌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많이 아쉽다. 다음 시즌에는 이 감을 잘 살려서 더 다듬어 봐야겠다. 돌아오는 길에 락카에 보관하던 스키 장비를 모두 수거해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오늘 아침에 스키복을 세탁 맡겼다. 장갑은 오래 사용하여 낡아 보이긴 하지만 가죽이라 상한 곳이 없어 버릴 상태는 아니었다. 다만 장갑을 조여주는 찍찍이가 불량해서 수선을 맡겨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세탁소에 문의를 해 봤더니 수선이 어렵다 한다.
그래서 몇 년 전 스키복을 수선했던 송우리에 있는 수선집을 찾아갔다. 허름한 가게의 문을 여니 나이가 지긋한 노인분이 맞아주셨다. 바구니에서 찍찍이 재료를 꺼내서 장갑에 맞는 수선 방법을 제시하신다. 나는 맡겨놓고 내일 찾으러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노인분이 곧바로 작업을 하시기에 기다렸다가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업하시는 동안 집에 전등을 교체할 일이 있어 전등을 사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장갑 두 짝의 수선을 다 마치시고 수고비로 나는 만 원 정도를 생각했는데 5천 원만 달라고 하셔서 내심 기쁜 마음에 5천 원을 내어 드렸다. 주차를 애매하게 해 놓아서 혹시 주차단속에 찍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어 곧바로 감사드린다 인사하고 나오려 했다.
그런데 주인장이 자신의 나이가 어떻게 되어 보이냐고 묻는다. 나는 한참 응시를 하다가 70 중반은 되어 보이신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하다고 한다. 그러더니 자신이 올 해 84세라 하신다. 그런데 자신은 시집을 4권이나 냈고 시인 등단을 서울에서 했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테이블에 놓여 있는 자신의 시집 1권인 <노인과 낙엽>을 보여 주신다. 내가 너무 멋있으시고 훌륭하시다고 말씀드렸더니 차 한 잔 같이 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신다. 너무나 뜻밖이고 해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면서 같이 앉아 말씀을 나누었다. 글에 대한 깊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학력이 부족하여 자신감을 갖기가 많이 어렵다고 토로하셨다. 청소년과 기성 정치인들의 잘못된 역사인식, 문화에 대한 생각 등 소도시 시장 한 구석에서 옷 수선하는 촌노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 깊은 식견과 철학을 가지고 계셨다. 내가 짓고 있는 <Space Ark>에서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인데 완성되면 글 쓰시러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기회가 되면 시 낭송회를 비롯한 특강도 마련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나오면서 시집을 사진을 찍겠다고 했더니 시집에 사인을 해서 한 권 주신다. 이 시집 가운데 한 편만 꼽아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중간쯤에 있는 <종이 컵도 분수를 아는데>라는 시를 꼽아주신다.
<종이컵도 분수를 아는데>
노희남
일회용이지만
자기 분수만큼 받고
그 이상은 넘침으로
거절을 표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면서
가져야 할 욕심
버려야 할 욕심
아는지 모르는지
그 욕심 때문에
만인의 입방아에 오르고
사후(死後)까지 평가의 대상
그런 사람 분수는 종이컵보다
나을까요, 못 할까요?
감사드린다고 악수하고 나오려 하는데 한 수의 시를 읊어주신다.
글을 쓸 때 시집을 살펴보니 시집의 제목인 <노인과 낙엽>이었다.
<노인과 낙엽>
노희남
산전수전 고생 또 고생 산을 넘고 강을 건너다보니
젊은 청춘 나도 모르게 남의 이야기가 되었고
인생의 황금기란 50-60대도 왔었는지 갔었는지
무엇이 그리도 바빠 84세를 바라보는
노인이라는 닉네임을 얼굴로 받았네요
4계절에 비유한다면 엄동설한 겨울이지요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을 지나고 보니
지난 봄 태어난 그들 익어가는 여름을 거쳐
농부의 피와 땀인 수확까지 끝나고 보니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낙엽
떨어지지 않으려 몸부림쳐 보지만
바람이란 저승사자가 끌고 가 버리네
종착역을 향한 막차에 탑승한 우리와
무엇이 다르고 또한 얼마나 다를까요!
문 앞까지 나와서 건강하시라는 말씀에 내가 더 시인에게 드려야 할 말씀인데 내가 더 무안했다. 그나 저나 주차위반 사진은 분명 찍혔을거야. 수선비가 5천 원이라 싸다고 생각했는데 주차딱지 56,000원이면 61,000원짜리 수선비?
그래도 숨은 고수를 알게된 것에 비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