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의 죽음]

[장 그르니에]

by 묭롶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읽고 어린 시절 길렀던 '백구'가 떠올랐다. 하얀 털로 덮인 진돗개 혼혈(흔히 잡종

똥개)인 '백구'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의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목에 묶인 줄이 팽팽해지도록 내게 오려고

버둥대며 반가움을 표시했었다. 더운 김이 나는 분홍색 혓바닥으로 나를 핥는 것도 좋아했는데, 평소 된장국에 만 밥(멸치가 많이 든)을 좋아하던 식성 탓에 축축한 침에서는 언제나 된장 냄새가 감돌았다.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온 나는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역시 묶여있어야 할 백구가 안 보이는 것이었다. 울고 불면서 엄마한테 백구 어디 갔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대답을 안 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백구를 자바서 큰아빠랑 몸보신하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두 분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나는 그 이후로 '개'는 키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당시 나는 누군가에게 넘치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인간관계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침이 되면 동물들은 당신을 찾아와서 애정을 표시한다.


동물들의 하루 일과는 이러한 사랑과 신뢰의 실천으로 시작된다. P57



물론 지금 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사랑'이라는 감정이 온전히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그렇게 맹목적인 감정을 보여준 존재를 또 한 번 잃는 경험은 두 번 다시 감당해 낼 자신이 없다.


장 그르니에는 타이오를 안락사시키기로 결정한 뒤 그 결정이 과연 타이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것인지, 결국 고통받는 '개'를 봐야만 하는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한 것인지에 혼란을 느꼈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은 타인의 고통보다는 자신의 고통을 우선시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는 사랑했던 '개'의 죽음을 자신이 죽음처럼 여기는 글쓰기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계기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 혹은 우리 자신을 가엾게 여길 때, 우리는 삶이 마련해 준 기쁨들을 잊고 있다.

고통이란 기쁨의 결핍에서 비롯될 뿐인데, 삶의 기쁨을 모른다면 어떻게 고통을 알 수 있겠는가?

동물들은 삶을 행복한 것으로 여긴다.


나중에 겪은 고통에 연연하며 일생 동안 누렸던 기쁨을 부정할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P67



~우리는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살아남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꽃들, 가축들, 우리의 부모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훗날 우리는 미래에 대한 꿈과 추억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그러고서도 우리는 <산다>라고 말한다. P84



"너, 나 사랑해?"라는 질문을 나는 해본 적이 없다. 난 사실 자신이 없다. 상대방을 정말 백 퍼센트 사랑만 할 자신이 없어서이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그런 걸 묻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다. 물론 상대방이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백구'가 지금이라도 돌아와서 나와 눈을 맞춘다면 난 나를 향한 '백구'의 사랑을 100% 확신할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개만큼 느끼지 못한다.

얽히고설킨 감정 때문에 우리는 개가 느끼는 것과 같은

절대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P20




난 그래서 TV드라마에서 하는 사랑놀음에 언제나 조소를 던지게 된다. '니들이 사랑을 알아?', 그러고 보면 우리 인간은 사랑을 '개'에게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주는 것도, 사랑을 받는 것도......


장 그르니에.... 이 노친네의 책을 읽을수록 이미 고인이 되신 이분이 너무 좋아진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살처럼 어느 한 곳에 얽매임 없이 자유로운 구름처럼 떠도는 이분의 정신이 나에게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아마도 그분은 이제.. 사랑하는 타이오와 함께 그들만의 천국에 계시겠지.....'오! 타이오야! 저기 봐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정 아무개가 우리 이야기를 읽고 있구나' 이렇게 말하며 웃음 지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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