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 살, 직장을 잃었다.
남편도, 자식도, 애인도, 통장 잔고도 없는 서른둘에서
그나마 매달 나오던 월급마저 없는 서른둘이 되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없는 것'뿐인 인생이니, 오늘 당장 죽는다고 해도 별반 아쉬울 것이 없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밑도 끝도 없이 생을 마감해야 한다면
몇 달째 치워야지 하고 생각만 하다가 결국 그대로 방치하고 만 방구석 꼬락서니와
그다지 보여줄 사람이 없어 엉망으로 대충 입은 속옷이 유일한 걱정으로 남는다.
아! 다리털과 겨드랑이 털을 제모하지 않았구나...
이런 상태로 갑자기 쓰러진 채, 누군가에게 발견된다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수치스럽다.
나는 고작 그런 인간이다.
고작 이렇게 살다 죽는다.
고백하자면, 내 삶은 늘 근근이 이어져 왔다.
초등학교 시절 밀린 탐구생활을 몰아하던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한 달치 일기를 개학 전날 한꺼번에 쓰면서 오늘의 날씨를 위조하던 때부터였을까?
벗을 수 없는 인생의 근근함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서른두 살쯤 되면 조금은 가닥이 보일 줄 알았지.
여전히, 이토록, 변치 않고, 빌어먹을, 염병하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인생일 줄은 몰랐네.
어떻게 보면 다행이다.
오늘이 마지막일지라도, 특별히 미련이 남는 것이 없는 인생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