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기 싫다면 이렇게
술을 마시다 보면 소주가 한 병쯤 남을 수 있다. 다시 마시기엔 김이 빠져 맛이 없고, 버리자니 왠지 아까운 술. 대부분은 며칠을 냉장고에 두다 결국 싱크대에 버리고 만다. 그러나 이 평범한 투명한 액체는 알고 보면 ‘살림의 숨은 고수’다. 알코올이 가진 살균력과 휘발성 덕분에, 소주는 세정제이자 탈취제, 섬유 복원제, 심지어 조리 보조제까지 된다. 버리는 대신 써보기로 한다면, 그 한 병은 집안을 새것처럼 바꿔놓을 수 있다.
소주의 첫 번째 쓰임은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청소다. 냉장고 안에 밴 음식 냄새는 대부분 세균이 남긴 흔적이다. 물과 소주를 8대 2 비율로 섞어 분무기에 담고, 냉장고 선반과 문틈에 뿌려보자. 5분쯤 두었다가 닦아내면 냄새가 말끔히 사라진다. 굳이 힘을 들일 필요도 없다. 알코올이 냄새 입자를 분해해 휘발시키기 때문이다. 전자레인지 역시 마찬가지다. 소주와 물을 2대 1로 섞어 3분간 가열하면, 뜨거운 증기가 찌든 때를 녹인다. 이후 마른 천으로 닦아내면 새 제품처럼 깨끗해진다. 세제를 쓰지 않아도, 냄새 없이 산뜻하다.
다음은 주방의 기름때다. 요리를 자주 하는 집이라면 프라이팬, 타일, 가스레인지 주변의 끈적함이 골칫거리일 것이다. 이럴 때 소주 한 컵이면 충분하다. 요리가 끝난 따뜻한 프라이팬에 소주를 살짝 붓고 5분간 두면, 알코올이 기름을 분해한다. 키친타월로 한 번 닦아내면 기름때가 사라진다. 후드나 벽면처럼 손이 잘 닿지 않는 부분은 분무기로 소주를 뿌려 몇 분 두었다가 수세미로 문지르면 된다. 세제를 쓰지 않아도 얼룩이 사라지고, 남는 건 알코올의 산뜻함뿐이다. 아이나 반려동물이 있는 집에서도 안심할 수 있는 천연 세정제다.
소주는 섬유 복원에도 쓸 수 있다. 오랫동안 입어 무릎이 늘어난 청바지나 뻣뻣해진 수건을 살리는 데 의외로 효과적이다. 물과 소주를 2대 1로 섞어 분무기에 담고, 청바지의 늘어난 부분에 뿌린 뒤 다림질을 하면 섬유의 탄력이 돌아온다. 세탁기의 마지막 헹굼 단계에 소주를 한 숟가락 넣으면 수건이 부드럽고 보송보송하게 마른다. 소주 속 알코올이 섬유 사이의 단단한 결합을 풀어주는 덕분이다.
마지막으로, 밥 짓기에도 소주는 쓸모 있다. 현미나 잡곡을 지을 때 물에 소주 한두 숟가락을 넣으면 밥알이 부드럽고 윤기 있게 완성된다. 알코올이 쌀의 수분 흡수를 도와주는 것이다. 조리 중 알코올은 모두 증발하기 때문에 냄새나 맛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밥의 향이 깔끔해지고 질감이 좋아진다.
이쯤 되면 남은 소주는 더 이상 ‘버릴 물건’이 아니다. 냉장고의 냄새를 없애고, 기름때를 지우고, 섬유를 복원하며, 밥까지 윤기 나게 만드는 만능 액체다. 화학 세제도, 고가의 청소용품도 필요 없다. 단지 버리려던 술 한 병이 있을 뿐이다.
남은 소주 한 병은 그저 마시다 남은 술이 아니라, 생활 속 작은 혁신의 시작이다. 냉장고 구석에 있던 그 투명한 액체를 다시 꺼내 보자. 취하지 않아도 충분히 기분 좋은 이유를 곧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