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대한 단상

굿바이 2020

by 서원경 변호사

2020년에는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영향받지 않은 단 한 사람도 없을 만큼, 생활 속 깊숙이 구석구석 침투했던 초유의 코로나 사태가 있었다. 어릴 적 보았던 <2020 원더키디>라는 만화에서는 지구를 대체할 새로운 행성을 탐사하기 위해 '독수리호'를 우주로 파견하게 되는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2020년에는 우주선을 타고 외계인과 조우하게 되는 공상과학 소설 같은 미래가 펼쳐지는 줄 알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를 맞닥뜨리게 될 줄이야. 2020이라는 숫자는 기억하기도 쉬운 데다가, 코로나 사태까지 겹쳤으니 평생 잊지 못할 1년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집콕 생활을 오랫동안 하게 되면서, '자아'와 '관계' 그리고 '위기'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다.

우선 '자아'에 대한 생각은 아무래도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갖게 되니,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 예상보다 (초반에는 저항감이 있었지만) 나라는 존재가 의외로 정적이고 조용한 생활에 만족하였다. 외부활동이 멈춰 버린 시간 속에서도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편인 내가 지루함과 답답함을 심하게 느끼지 않았다. 소설을 위주로 독서도 많이 하고, 여러 미디어도 접하면서 내 안의 내향적인 면을 발견했다고 해야 하나. 누구에게나 양면성이 있으니 나 또한 어딘가에서 직접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으면서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지내는 게 좋았다.

그리고 내 삶에서 벌어졌던 의미 있는 사건들은 무엇이었는지 한참 생각하게 되었다. 축구경기로 치자면 하프타임 동안 전반전의 내 경기를 분석

해서, 후반전에 역전을 하거나 전략을 다시 구상해

볼 수 있는 시간도 되었다. 내 삶의 이 모습 저 모습이라는 단편들이 연결되어 지금의 내가 있을 텐데, 코로나로 인해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늘면서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나의 모습을 정비하게 되었다(후일이라고 해서 무슨 거창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생각하는 나는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른지, 그 속에서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서 나답게 사는 것이 정답이었다.

두 번째로 '관계'에 대한 생각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인간관계의 획기적인 변화에 대한 것이다. 비대면, 언택트, 온라인 회의, 웨비나라는 용어가 익숙해진 만큼 그동안의 '대면 인간관계'와 비교를 해보게 된다. 직접 대면해서 인간의 온기와 정을 느끼는 관계에서 에너지를 얻고, 진정한 내 모습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깊이 있고 편안한 관계를 맺는 건 너무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데 비대면으로 인간관계를 조금씩 해보니 오프라인에서의 떠들썩한 소리나 오감의 작용, 감정, 눈빛, 표정의 변화가 없는 느낌이 들긴 한다. 그러한 단점이 있으면서도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고, 애써 형식이나 예의를 갖추며 의무적으로 만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었다. 코로나 핑계로 불필요한 인간

관계의 단계별 거리두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잠시 내 주위의 사람들과 인간관계에 대해서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게 된다. 주기적인 모임들도 다 사라지면서,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니 심리적 거리도 멀어진 사람이 있고, 오히려 더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도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내 삶에 영향을 주었던 인물들, 나를 성장시켜준 사람, 힘들 때 도움을 준 사람, 나와 맞지 않은 사람, 같이 있으면 기분 좋은 사람, 별로 연락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동안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복합적인 차원의 분석을 하게 된다. 그동안 나는 제대로 된 필터로 사람을 볼 수 있었는지, 코로나라는 위기상황에서도 반드시 대면 만남을 해야 할 만큼 나에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구수한 말솜씨와 친근한 캐릭터로 대표 유튜버로 자리매김한 70대의 박막례 할머니는 “왜 남한테 장단을 맞추려고 하나. 북 치고 장구치고 니 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여.”라고 하셨는데.. 재미있으면서도 촌철살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라는 존재와 조화를 이루어 서로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인간관계만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위기'에 대한 생각은 내가 열심히 대비한다고 위기와 고난이 안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불현듯 찾아온 코로나 같은 역경은 앞으로도 언제 어디서든지 다가올 것이다. 예상치 못한 불확실성으로 개인이나 사회 전반에 불안감을 조성하고, 인생의 내리막을 제대로 경험하게 해 준다. 1년 간 일일 확진자의 숫자에 일희일비

하면서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냈다. 이런 어려움에 직면하고 나서야 그동안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여행을 자유롭게 갈 수 있을 때,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때,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을 때,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을 때.. 미래의 특정한 때를 한없이 기다리지 말고 그 순간순간 현재를 즐겨야 한다는 진리를 새삼 느꼈다.

나라는 개인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위기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 때문에, 위기를 다시 기회로 만들 수 있을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모두가 합심해서 코로나라는 위기에 맞서고 성숙한 의식으로 바람직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차분하게 대응해야 했다. 코로나로 인해 위기의 의미와 영향에 대해, 위기에 대응하는 자세에 대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학습할 수 있는 시간도 되었다.

2020년 코로나19는내 삶에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건이었다. 1년 동안 생각이 많아지니 갑자기 내가 명상가나 철학자가 된 듯한 착각도 한다. 오롯이 나를 마주하고 찬찬히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인생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그동안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맺어 왔는지, 위기에 대응하는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깊이 있게 고민해 보았다. 그러면서 코로나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더라도 넓은 시선을 유지하면서 크게 생각하기로 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유연하게 적응하고 언제나 현재에 충실하기로 했다. 원더키디의 주인공 13살 소년 아이캔(I can)은 우주 대모험 끝에 세상을 구했다. 원더키디의 해 2020년이 지나가면, 2021년에는 2021년만의 태양이 떠오를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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