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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Jun 21. 2020

할머니의 고봉밥

흰 쌀 밥은 귀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나에게 10년 동안 흰쌀밥을 주셨다


 “민우야. 우리 당분간 떨어져 지내야 해” 엄마가 말했다. 그때는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엄마는 엄마 친구의 가게를 도와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통보였지만 며칠 동안 엄마와 아빠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으니까. 이따금 방에선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고 아빠는 말없이 밖으로 나가 몇 시간이 지나서야 들어왔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지고 궁금했지만 물어보기가 무서웠다. 방 안에 나보다 2살 어린 여동생과 틀어박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인 척을 했다. 


 꽤 오랫동안 살았던 집을 비우는 건 순식간이었다. 처음 보는 아저씨들이 우리 가족의 쉼터에 들어와 물건들을 기계처럼 빼서 나갔다. 이사를 가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너무 어릴 때의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학교를 갈 준비를 하며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가족사진을 가방에 챙겨 넣고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이 아닌 할머니 댁으로 갔다. 이제는 여기가 나의 집이었다. 


 하루아침에 많은 게 변했다. 나의 방은 사라졌고 방 한 칸에 아빠와 나 그리고 여동생이 함께 지내야 했다. 할머니는 우리를 보며 말없이 담배만 피우셨고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내뱉었다. 아마 욕 비슷한 단어들이었던 것 같다. 많은 것들이 창고에 처박혔다. 방 한 칸에 걸맞은 물건들만 가져와야 했으니까. 영어 선생님이었던 아빠의 책들과 책상 그리고 컴퓨터 정도만이 살아남았다. 침대도 사라졌고 나의 책상도 사라졌다. 쓸모없다며 버리라고 잔소리를 들었던 장난감 비슷한 물건들도 전부 사라졌다. 머리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짐을 싸들고 말없이 한참을 나와 여동생을 껴안고 있었다. 아주 예전에 내가 집에서 달고나를 해 먹는다며 설치다가 손가락에 화상을 입었을 때 보았던 그때처럼 엄마의 표정에는 빛이 없었다. 

 “조만간 보러 올게, 그때까지 동생 잘 챙기고 있어. 알았지?”엄마의 말에 여동생은 울음을 터트렸다. 우는 여동생을 두고 엄마는 뒤를 돌았다. 나의 기억이 왜곡되었는지 모르지만 5분 정도 되는 일직선의 거리를 돌아나가는 동안 엄마는 단 한 번도 우리를 쳐다보지 않았다. 여동생의 울음소리는 더 커졌고 나는 꾹 참았다. 아마 엄마 역시 울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는 갑자기 할머니 댁에 살게 되었다. 가방 속에 숨겨둔 가족사진을 꺼내어 아빠의 책상 위에 조심히 올려놓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우리 가족의 얼굴이 어쩐지 어색해 보였다. 거실에서 할머니의 한 숨소리가 방 안으로 새어 들어왔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부도’라던가 ‘사기’ 같은 단어들이 들려왔다. “그러게 왜 쓸데없이 도와줘서는...”할머니는 울고 계셨는지 화가 나신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나의 삶은 많은 게 변할 것이라고 느꼈다. 울다 지쳐 잠든 여동생은 옆에서 잠에 들었고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노란 가로등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며 어딘가로 가고 있을 엄마를 생각했다. 


 "일어나 - 밥 먹어라" 그렇게 나는 하루아침에 할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게 되었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밥그릇이 넘치도록 담긴 새하얀 쌀밥을 보며 투박한 모양의 쇠숟가락을 사용해 묵묵히 밥을 먹었다. 할머니는 내가 밥을 먹는 내내 앞자리에 앉아 나를 쳐다보며 "어휴-어휴-" 하는 한숨을 내뱉으셨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10년이란 시간을 할머니 밥을 먹으며 자랐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청국장, 버섯찌개, 육개장, 알 수 없는 재료들이 들어간 각종 찌개들을 일주일 간격으로 만들어놓으셨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그때만 해도 처음 보는 각종 나물들까지 밥상까지 하루아침에 달라져버렸다. 


 전라도 출신인 할머니는 음식을 정말 잘하셨다. 내가 보기엔 풀 같은 재료도 할머니 손을 타면 새콤달콤한 맛있는 반찬으로 변했다. 엄마가 해주는 스팸이나 소시지 같은 반찬 하고는 완전히 달랐던 탓에 사실 할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에 완전히 적응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티를 내지 않고 언제나 맛있다는 말을 내뱉으며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건 할머니가 해놓은 음식들을 먹는 나를 쳐다보며 지으시는 할머니의 표정 때문이었다. 


 내가 반찬을 집어 들고 입으로 가져갈 때만 입에 넣고 씹기도 전에 "맛있어? 안 맛있어?" 하며 물어보셨다. 그러면 나는 웃으며 " 할머니, 진짜 맛있다. 이 나물은 뭐야?"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느 날은 내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 할머니 왜 이렇게 밥을 먹으라고 하는 거야? " 그러자 할머니는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이야기해주셨다. 예전에는 할머니께서 흰쌀밥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고 하셨다. 집에 귀한 손님이 오거나 아빠를 위해서만 흰쌀밥을 지으시던 어머니 밑에서 자란 할머니는 그렇게 흰쌀밥이 먹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밥이란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할머니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었다. 


 뻔한 이야기지만, 매일 10년 동안 나는 할머니 밥을 먹었고,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지금은 상황이 좋아져서 할머니와 함께 살진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면 " 우리 강아지 밥은 먹고 다니냐? "라고 말을 건다. 아침에 라면을 먹고 나왔지만, 할머니에게 그렇다고 답한다. 언제나 할머니는 내가 가는 날이면 밥을 한 솥 가득해놓으시고는 기다리신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고봉밥을 내놓으시며 나를 앞에 두고 앉아 내가 밥을 먹는 것을 지켜보신다.  


 10년을 먹은 할머니의 밥은 나의 피가 되어 흐른다. 어쩌면 그 힘든 시간을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나를 위해 흰쌀밥을 만들고 찌개를 끓이시던 할머니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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