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먼저 이 글은 양극성 장애 환자의 보호자, 그 중에서도 부모들을 위해 쓰였다.
별다른 사유가 없는 한 환자와 함께 양극성 장애 최전선에서 맞서는 사람들은 부모이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한 환자의 경우 배우자도 중요한 보호자에 포함되지만, 양극성 장애의 발병 시기가 대체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임을 감안해 부모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일반적인 주의사항:
1) 양극성 장애는 환자마다 증상과 진행 양상(예후)이 천차만별이다. 조증과 우울증이라는 완전히 상반된 증상이 공존하는 질환의 특수성이 양극성 장애 환자와 보호자를 혼란의 늪으로 빠트린다. 여기에 다양한 요인들-환자의 유전적 요인, 성장과정, 성별, 학력 수준, 사회경제적 수준, 발병 당시의 나이, 대인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같은 밀가루 반죽이라도 요리법에 따라 부침개가 될 수도, 피자 도우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같은 양극성 장애라 하더라도 다른 질환처럼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내가 어떤 글을 읽었는데 이렇다더라~"는 식의 반응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글을 환자를 이해하는 첫걸음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2)조증 삽화, 우울 삽화가 정확한 표현이기는 하나 삽화보다는 조증/우울증으로 표기하는 것이 이해하는 데 조금더 편할 것 같아 그렇게 썼다.
+삽화란, 정신과 행동에 명확한 문제를 일으키면서 그 시기가 구분이 가능한 특정 성향이 짧게 발현하는 것을 말하는 용어다.
"엄마, 교수님이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뭔가 말을 하는데 그게 제대로 들리지 않고 아득하게만 들려.
내가 외계인이 된 것만 같아."
-복학한 첫날, 수업을 듣고와서
조증의 광란의 시기를 보내던 나는 4학년 2학기를 약 한 달 남겨 둔 시점에 돌연 휴학을 결정해 버리고 만다(원래는 자퇴였는데 전공 교수님과의 타협 끝에 휴학으로 바뀌었다). 복수전공과 학사 장교를 비롯해 대학원 진학이라는 청사진에서 완벽하게 엇나간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딱히 부모님과 상의하진 않았던 거 같다. 아빠야 어렸을 때부터 양육에는 관심이 1도 없었고 걸핍하면 폭력을 휘둘렀기에 차라리 무관심한 게 나았다.
엄마는 상황이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내가 조증 초기에 무작정 집을 뛰쳐나와 가출 같은 독립을 한 이후로 그 누구보다 괴로웠을 사람이었으니까. 특히 엄마가 받은 충격은 아주 컸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빠를 제외한 나와 형, 엄마는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고 내밀한 이야기까지 주고 받을 정도로 친밀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아들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화를 내고 짐을 싸서 나가버렸으니...
조증은 약 6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한 여름에 시작했던 태풍은 겨울의 중간 즈음에서야 자취를 감췄다. 모든 것을 집어삼킨 광풍이 지나가고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박살난 대인관계와 경제적인 손실(다행히 감당할 만큼의 수준이었다), 중단된 학업, 꼬여버린 미래 계획, 조증의 여파로 제로가 된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 등 삶의 모든 부분이 철저히 파괴된 상태였다.
불행 중 다행히도 내 전공은 심리학이었고 엄마는 대학 시절 작업치료를 전공하며 정신과와 관련된 수업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미술치료사로 상담한 경력이 있었다. 그래서 였을까. 엄마는 깽판을 제대로 치고 나가버린 나를 잘 다독이며 언제든 돌아오고 싶을 때 다시 집으로 들어와도 된다는 말을 종종 했었다.
명확하게 엄마의 말을 기억한 것은 아니지만, 완전히 그로기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뛰쳐나온 집으로 다시 기어들어간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정확히는 수치스러웠다.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수치심'은 양극성 장애 환자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핵심 감정이자 중요한 문제다.)
끝이 없는 것처럼 상승하던 조증의 시기가 끝나고 바닥을 향해 가는 우울에 빠지게 되면 엉킨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듯 광란의 순간들이 서서히 기억나기 시작한다. 플래시백처럼 말이다. 자책과 후회, 절망이 나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서서히 우울의 심연으로 빠져들어가면서 제일 먼저 무기력함이 찾아왔다. 이제까지 날 뛴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해야할까. 정신과 신체 모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다. 사회복지학과를 복수전공을 하고 있던 터라 당장 1학기에 복학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그나마 남은 에너지를 그쪽으로 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복지학과 전공 수업 첫 시간에 내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이전에도 신체적인 이상 말고도 내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주변 상황에 대한 인식이 한 박자 늦고 대화 도중 단어를 놓치거나 의미 파악에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단지 몸이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넘겼다. 당장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정신의 활동도 침체되는 게 당연한 거겠지, 이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제의 첫 수업에서 교수님의 목소리가 아득하게만 들리고 주변의 모든 것이 느려진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나 혼자 투명한 방음벽에 둘러쌓여 있는 것 같았다. 책의 내용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인데 문자를 읽을 수는 있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머리에 입력할 수 없었다. 그때서야 나는 단순히 컨디션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에 명백한 문제가 생겼음을 인식했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외계인이 된 느낌을 토로하고 나서 이상심리학 전공 서적을 꺼냈다. 흐릿한 기억들을 어떻게든 불러내기 위해 애쓰며 책을 뒤적거리다 어느 한 곳에서 멈췄다.
양극성 장애. 그때서야 나는 머릿속 퍼즐이 하나 둘 맞춰지는 듯 했다. 과도한 소비, 며칠 씩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함을 몰랐던 순간들, 갑작스런 휴학 결정을 비롯한 충동적인 행동, 이전과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늘어난 음주량과 흡연량, 나조차도 따라잡기 벅찼던 사고의 질주, 내향인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사교 활동,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하는 감정의 변화... 이 모든 정황이 명백한 조증의 증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게다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무기력함과 느린 사고, 인지적인 측면의 문제들은 우울증의 증상과 일치했다. 이제 문제가 무엇인지 알았으니 이에 맞는 해결 방법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