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소담한 해방촌 문학 사랑방
해방촌오거리 거미줄처럼 퍼져나가는 길들을 헤집고, 경사가 주는 중력을 튼튼한 두 다리로 이겨내고 들어선 골목 한편에는 이름처럼 고요한 서점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유리로 된 서점 현관문에는 서점의 이름과 함께 '해방촌 문학 서점'이라는 구호가 오는 이들을 맞이한다.
고요서사는 2015년 10월 이곳 조용한 골목에 '문학중심서점'을 표방하며 문을 열었다. 독서가 선사하는 '내면의 고요'에서 '고요'를. 박인환 시인이 운영했던 서점 이름 마리서사'에서 '서사'를 따와 지은 이름이다.
독특하게도 이 서점의 주인장인 차경희씨의 명함에는 '서점 편집자'라는 직책이 박혀 있다. '사장'이나 '대표' 같은 거창한 권위 대신, 책이라는 중심축 안에서 그녀와 책의 관계를 짚어볼 수 있는 명칭이다. 서점을 열기 전 그녀는 만 8년 동안 출판 편집자로 살아왔다. 세 번째 직장이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일 자체에 염증을 느끼던 때에 그녀는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곳곳에 자리 잡은 수많은 동네책방들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책을 알리는 또 하나의 창구로서 서점을 열기로 결심한다.
문학전문 서점을 표방하는 만큼 고요서사의 서가는 대부분 소설책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소설가들이 쓴 에세이, 사회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인문사회 도서들과 독립출판물도 더불어 비치하고 있다.
고요서사는 단순히 책을 파는 것만이 아니라 책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도 한다. 일방적으로 주인장이 기획하고 누군가가 따라오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그때그때 맘 맞는 서점 고객들과 벌이는 '정모' 같은 성격의 모임이 열린다. 얼마 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아 한강의 <소년이 온다> 릴레이 낭독 모임을 열기도 했다. 운영자를 포함해 2인 이상만 참석하면 모임이 진행됐다. 본인의 작품을 어디선가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단 사실에 감명받은 한강 작가가 직접 서점을 방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외에 '북스앤코르크'라고 하는 와인 독서모임이 정기 프로그램의 모습을 하고 있다. 미리 책을 읽고 와서 준비하기보다는, 책과 그 책에 어울리는 와인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모임이다.
서울 용산구 용산동2가 20-9번지 1층
낮 12시 ~ 오후 8시, 화요일 휴무
전화번호 010-7262-4226
▼ 고요서사 자세히 보기
해방촌 오거리의 조용한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고요서사가 나타난다. 전면 유리창에 배치된 책들은 과거 동네서점의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주인장 차경희씨의 취향이 반영된 서가다. 75%는 소설책으로, 나머지는 소설가들이 쓴 에세이집, 독립출판물, 인문사회 도서들로 서가를 채우고 있다. 분기별로 고요서사가 추천하는 작가를 선정해 특별 서가를 꾸리기도 한다. 첫 번째 주자인 줌파 라히리에 이어 제임스 설터가 현재의 '고요서사 추천 작가'다.
서점 구석구석에는 주인장이 감명 깊게 읽은 책 속 한 줄 문장을 뽑을 수 있는 기계를 비롯해 책에 관련된 작고 소소한 즐거움들이 서점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 고요서사 서점편집자 차경희가 추천하는 책들
<고맙습니다> (올리버 색스/ 알마/ 2016년)
추천의 말 : "적은 글이나 콘텐츠로 얄팍하게 채워진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이 얇고 가벼운 책의 가치는 놀랍도록 깊고, 우아하다 생각합니다. 신경과 전문의로서의 경험과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대중에게 친숙한 글쓰기로 유명한 올리버 색스가 죽음을 앞두고 써내려간 이 글들에서는 죽음의 냄새보다는 오히려 삶의 생생함이 느껴집니다. 지금의 삶이 좋건 나쁘건, 누구나 한 번쯤 펼쳐 읽고 책장에 꽂아두었다 다시 삶이 좋건 나쁘건 할 때 꺼내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헨젤과 그레텔의 섬> (미즈노 루리코/ 읻다/ 2016년)
추천의 말 : "미즈노 루리코의 국내 첫 번역작입니다. 시인은 이 책에 대해 ‘태평양전쟁 후, 스무 살에 세상을 뜬 오빠와 그 여동생인 자신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고 말합니다. 그림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을 배경으로 하는 산문시 연작도 그러하고, 동화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시들이 가득합니다. 낯설면서도 기묘한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2016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금희 외/ 문학동네/ 2016년)
추천의 말 : "지금 시대의 한국문학이 어떤지 궁금하다면 매년 챙겨 읽을 만한 소설집입니다. 등단 10년 이하의 젊은 작가들이 쓴 단편 일곱 편이 알차게 들어 있습니다. 초판 한정으로 매겨진 5500원이라는 가격에 감사하며 좋은 소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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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DB 2016. 7. 5